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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보기

왕의 죽음, 왕의 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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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죽음


 

 

 

 

 

호화로운 생활과 비례하지 않았던 왕의 건강

 

519년의 긴 세월을 이어온 조선 왕실에는 모두 27명의 왕이 존재하였습니다.

왕들은 장엄한 궁궐에서 화려한 의복을 입고, 전국 각지에서 진상한 최고급 식재료를 이용하여

린 수라상을 받았으며, 아름다운 궁녀들을 곁에 두고 지냈습니다. 조선의 내로라하는 명의들은

궁궐에서 늘 왕의 건강을 살폈습니다. 그러나 왕들은 이러한 호화로운 환경에서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그다지 건강하지 못하였습니다.
조선 왕들의 평균 수명은 44세로 주로 눈병, 종기, 중풍 등의 병을 겪다가 승하하였습니다.

 

                             
                           기(萬機)를 처리해야 하는 왕의 작업
 

일단 왕위에 오르면 그 뒤로는 정신 없이 바쁜 왕의 일과가 시작됩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처리해야 할 업무가 산처럼 많기 때문에 왕이 집무하는 일들을

만 가지 일이라는 뜻의 “만기(萬機)”라고 하였습니다. 게다가 왕의 집무는 철저히 정신노동이었습니다.

주로 앉아서 신료들을 접견하고 공문서를 읽었으며, 자리를 이동할 때에는 가마를 이용하였습니다.

격구나 활쏘기 등의 간단한 활동을 제외하고는 운동할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따라서 혈액 순환이 원활히 되기가 어려웠고, 당뇨와 고혈압에 쉽게 걸렸습니다.

눈병이나 종기가 나면 쉽게 낫지 않았으며, 이는 결국 왕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세종과 숙종이 당뇨병으로, 태조, 정종, 태종이 중풍으로 인한 뇌출혈로,

문종, 성종, 효종, 정조, 순조가 종기로 세상과 작별하였습니다.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한 정치사의 희생양
 

그런가 하면 질병과는 상관없이 정치사의 희생양으로 운명을 달리한 왕도 있습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듯이 6대 임금 단종은 삼촌인 수양대군에게 정권을 빼앗기고 영월로 유배당했습니다.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있어 감옥이나 다름없는 영월의 청령포에서 유배생활을 하다가,

결국 17세의 어린 나이에 사약을 받고 승하하였습니다.이로서 단종은 조선 27대 왕 중 가장 어린 나이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단종과는 다른 경우이나 연산군과 광해군도 반정에 의해 폐위되고 유배지에서 생을 마쳤습니다.

 

 

 

왕의 묘호


 

 

 

 

 

 

     왕 이름

 

            왕이란 군주제가 시행되던 시기의 절대 권력자로서 동서를 막론하고 

매우 특별한 존재로 인식되었습니다. 왕의 이름은 많게는 여섯 개까지 있었습니다.

 

 

태어나면서 붙여지는 이름

 

일반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왕도 태어나면서 이름이 붙여집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이방원, 이산, 이척 등이 왕의 이름입니다.

조선 27명의 왕의 이름을 보면, 태조, 정종, 태종, 단종을 제외하고는

모두 외자를 쓰고 있는데, 여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임금의 이름은 누구도 함부로 부를 수 없으며, 다른 용도라고 하더라도

왕의 이름에 쓰인 문자를 문서에 쓸 수 없도록 정해져 있었습니다.

따라서 왕이 될 가능성이 있는 왕자의 이름은 실생활에서 잘 쓰이지

않는 하나의 한자만을 써서 만든 것입니다.

 

관례때 받는 이름과 성향을 나타내는 이름, 자(子)와 호(號)

 

조선시대에는 일반적으로 성인이 되어 관례를 치르면 원래의 이름 외에

성인으로서의 이름을 다시 부여받게 됩니다. 이를 ‘자’라고 합니다.

이는 원래의 이름을 공경하여 마구 부르기 꺼려하는데서 비롯된

복명속(復命俗 : 두 가지 이상의 이름을 갖는 풍속)을 따른 것입니다.

한편 자신이 스스로를 표시하기 위해 붙이거나 스승 또는 친구들이 붙여주는

이름인 호(號)가 있습니다. 정조는 자신의 호인 홍재(弘齋)를 써서

『홍재전서(弘齋全書)』라는 문집을 발간하기도 하였습니다.

 

 

공덕을 기리는 이름, 시호(諡號)

 

왕이 승하하면 신하들은 왕의 일생과 업적을 평가하여 그에 알맞은 이름을 지어 올립닏다.

이를 시호라고 합니다. 신료들이 지은 시호는 중국의 황제에게 보내 최종 결정을 하게 하였습니다.

왕이 승하한 후 중국에서 시호를 결정해줄 때까지는 대행대왕(大行大王)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다가 결정이 되면 승하한 왕을 중국에서 결정한 시호로 호칭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세종의 시호는 장헌(莊憲)이고, 성종의 시호는 강정(康靖)입니다.

 

종묘에서 부르는 이름, 묘호(廟號)

 

왕이 승하한 지 3년이 지나면, 왕의 신위를 종묘로 모셔오는데,

이 때 ‘종묘에서 부르는 호칭’이라는 의미의 묘호가 정해집니다.

태종, 세종, 숙종, 영조 등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왕의 이름이 바로 묘호입니다.

묘호 역시 시호와 마찬가지로 왕의 일생을 평가하여 결정하게 됩니다.
묘호는 시호와 다르게 조(祖) 혹은 종(宗)을 붙여 짓는데, 보통 조는 공이 탁월한 왕에게,

종은 덕이 출중한 왕에게 붙이는 것이 관례입니다. 태조, 세조, 인조, 영조, 정조 나라를 세웠거나,

반정을 일으켜 왕위에 올랐거나, 혹은 개혁의 칼을 크게 휘두른 왕들은 조가 붙은 것이 그 예입니다.

 

왕의 이름을 남기고 영혼을 쉬게 한 곳, 종묘

 

왕이 세상을 떠나면, 수개월에 걸친 장례 절차가 거행되며, 시신을 능에 안치하고 나서도 오랜 시
간 동안 애도의 예를 갖추었습니다. 삼년상을 끝내면 왕의 신주가 종묘에 들어가게 됩니다.

조상의 혼을 정신적 지주로 여기는 전통 유교 사회에서, 역대 왕의 신위를 봉안한 종묘는 국가나
조정 그 자체를 의미할 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습니다. 조선 왕조의 근간을 확립하는데 절대적
으로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곳으로서, 현재에 와서는 그 의미와 상징성 뿐만 아니라 독자적 건축
양식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1394년(태조3) 10월 조선 왕조가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다음 해에 완성되었으며, 세월이 흐름에
따라 수 차례 증축하여 정전과 영녕전에 왕과 왕비 도합 83 위의 신위를 모시고 있습니다. 현재 서울
시 종로구 훈정동에 자리 잡고 있으며, 199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습니다.

 

 

 

 

 

출처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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