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의 역사

 

 

 

 

종묘의 역사

 

묘는 조선왕조 역대 왕과 왕비 및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유교사당으로서

가장 정제되고 장엄한 건축물 중의 하나입니다.

종묘는 태조 3년(1394) 10월 조선 왕조가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그해 12월에 착공하여 이듬해 9월에 완공하였으며, 곧이어 개성으로부터 태조의

4대조인 목조, 익조, 도조, 환조의 신주를 모셨습니다.

 

56,503평의 경내에는 종묘정전을 비롯하여 별묘인 영녕전과 전사청, 재실, 향대청 및

공신당, 칠사당 등의 건물이 있습니다.

정전은 처음에 태실 7칸, 좌우에 딸린 방이 2칸이었으나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불타버려 광해군 즉위년(1608)에 다시 고쳐 짓고,

그 후 영조 와 헌종때 증축하여 현재 태실 19칸으로 되어있습니다

 

영녕전은 세종 3년(1421)에 창건하여 처음에는 태실 4칸, 동서에 곁방 각 1칸씩으로

6칸의 규모이었는데, 임진왜란 때 불타버려 광해군 즉위년에 10칸의 규모로 지었으며

그 후 계속 증축하여 현재 16칸으로 되어 있습니다.

 

현재 정전에는 19실에 49위, 영녕전에는 16실에 34위의 신위가 모셔져 있고,

정전 뜰앞에 있는 공신당에는 조선시대 공신 83위가 모셔져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정전에서 매년 춘하추동과 섣달에 대제를 지냈고, 영녕전에는

매년 춘추와 섣달에 제향일을 따로 정하여 제례를 지냈으나 현재는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에서 매년 5월 첫째 일요일을 정하여 종묘제례라는 제향의식을

거행하고 있으며 제사드릴때 연주하는 기악과 노래와 무용을 포함하는

종묘제례악이 거행되고 있습니다.

 

종묘의 주전인 정전은 건평이 1,270㎡로서 동 시대의 단일 목조 건축물로는 세계에서도

그 규모가 가장 큰 건축물로 추정되며, 종묘의 건축 양식은 궁전이나 불사의 건축이

화려하고 장식적인데 반하여 유교의 검소한 기품에 따라 건립된 특수목적용 건축물입니다.

 

종묘는 한국의 일반 건축물과 같이 개별적으로 비대칭구조를 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대칭을 이루고 있으며 의례공간의 위계질서를 반영하여 정전과 영녕전의 기단과 처마,

지붕의 높이, 기둥의 굵기를 그 위계에 따라 달리 하였습니다.

 

 

 


 

 

 

종묘의 제도, 문화적 가치

 

 

 

 

 

종묘의 제도

 

중국 주나라에서 시작된 종묘제도는 7대까지 모시는 제도로 시작되어 명나라 때에

와서 9묘 제도로 확대 되었는데 중국의 태묘에서는 태실이 9실에 불과하나

한국의 종묘만은 태실이 19칸인 매우 독특한 제도를 가지고 있으며,

정면이 매우 길고 수평성이 강조된 독특한 형식의 건물모습은 종묘제도의

발생지인 중국과도 다른 건축양식으로 서양건축에서는 전혀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세계적으로 희귀한 건축유형입니다.

 

종묘제례는 종묘인 의례공간과 함께 의례절차, 의례음식과 제기,

악기와 의장물, 의례음악과 의례무용 등이 조화되어 있으며,

1462년에 정형화된 형태를 500년이상 거의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종합적 의례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에 나타난 의례 절차, 음악, 무용 등은 중국의 고대문명을

바탕으로 형성된 하, 은, 주 시대의 의례문화에 기원을 두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양의 고대문화의 특징과 의의를 거의 그대로 보존하고 있기 때문에

동양 고대문화를 연구하기 위한 귀중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는 문화유산 중의 하나입니다.

 

종묘의 문화적 가치

 

종묘는 조선시대의 전통건물로서 일반건축이 아닌 신전건축임에도 불구하고

건축의 보편적 가치를 지니고 있어 많은 현대 건축가들의 연구대상이 되고 있으며

종묘의 뛰어난 건축적 가치는 동양의 파르테논이라 칭하여지고 있을 만큼 건축사적 가치가 큽니다.

 

종묘는 사적 제125호로 지정 보존되고 있으며 소장 문화재로 정전(국보 제227호),

영녕전(보물 제821호), 종묘제례악(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중요무형문화재 제56호)가 있으며,1995년 12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국가의 정신 지주 종묘사직

 

 

 

 

종묘사직

 

불교국가였던 고려와는 달리 조선은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내세웠습니다.

유교에서는 효(孝)를 중시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을 으뜸으로 여겼습니다.

왕은 효를 실천하고 선왕께 제사를 지냄으로 백성에게 모범을 보였습니다.

사직이란 토지신과 곡물신을 이르는 말로, 땅과 곡식이 없이는 살 수 없으므로

사직단을 지어 왕이 백성을 위하여 제사를 지낸 것입니다.

 

종묘의 수난

 

조선시대 민족의 수난과 함께 우리 민족의 정신적 자주가 되었던 종묘 역시 수난을 겪었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다른 궁과 함께 불에 탔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1608년 복구된 이후로 여러차례 증·개축된 끝에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신주

 

돌아가신 분의 이름을 적어 놓은 작은 나무패를 말하는 것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이 신주에 돌아가신 분들의 혼이 깃들어 있으며

조상의 혼이 쉬는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손은 신주를 모시고 해마다 제사를 지냈으며 전쟁이나 화재 등

재난이 일어나면 제일 먼저 구하는 것이 신주였습니다.

신주에 모신 돌아가신 분의 혼은 제사 상을 차릴 때 향을 피우면 현세로 잠시 온다고 생각했습니다.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

 

 

 

 

종묘제례

 

우리나라는 예를 중시하는 '동방예의지국'입니다. 예를 지키는 것 중

가장 으뜸이 되는 것이 바로 제사입니다.

제사는 효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해마다 5월 첫째 주 일요일이 되면 종묘제례 행사가 열립니다.

종묘제례는 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된 문화재입니다.

 

 

 

 

종묘제례는 신을 맞이하기 위하여 향을 피우고 따에 술을 부으며 조상께

흰 모시를 바치는 영신례와 헌폐례, 그리고 신이 찾아와 즐기는 과정인 제상을

차리고 술잔을 올리고 축문을 읽는 진찬례, 초헌례, 아헌례, 종헌례,

그리고 후손이 복을 받기 위해 제상에 올린 음식을 먹는 음복례의 순으로 진행됩니다.

마지막으로 신을 보내는 철변두와 망료례를 지냅니다.

 

 

 

 

종묘제례악

 

      조선의 역대 군왕의 신주를 모시는 종묘와 영녕전의 제향에 쓰이던 음악을 종묘제례악이라 합니다.

      종묘제례에는 엄격한 절차와 함께 각 단계에 맞추어 어울리는 악과 춤이 있었습니다.

 

 

 

 

 

      종묘제례악은 기악, 노래, 춤으로 구성되는데 세종때 처음 짓고 세조때

      다듬은 보태평과 정대업 22곡을 연주하고 그 동작이 단순하면서도 장엄한 것이

 

      특징인 일무 등의 춤을 춥니다. 

      신라향가나 고려가요가 오늘날 가사만 전하여 지는데 비하여 종묘제례악은

      500년 전의 선율을 오늘날까지 그대로 전하고 있어 그 의의가 매우 큽니다

종묘제례악은 그 음악성이 매우 뛰어나고 장엄하여 역사적으로 큰 가치를 지닙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64년 중요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2001년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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