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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열단, 김원봉을 단장으로 한 무장독립운동단체, 공약10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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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열단, 김원봉을 단장으로 한 무장독립운동단체, 공약10조

 

의열단(義烈團)은 약산 김원봉을 단장으로 하는 아나키스트 성격의 무장독립운동단체로 1919년 11월 7일 설립됐다. 이들은 프랑스 조계지역(외국인 치외법권지역)인 중국 상하이에서 폭력항쟁으로 일본제국의 대한제국에 대한 식민통치에 대항하는 독립운동을 했다. 이들이 상하이에서 활동한 이유는 프랑스와 일본의 대립으로 인해, 프랑스 경찰이 조선인 독립운동가들을 보호했기 때문이다.

의열단은 비폭력투쟁인 3.1운동이 일본의 폭력으로 실패한 것을 보았으므로 광복을 위해 폭력만을 수단으로, 암살만을 정의로 삼아 5개소의 적 기관 파괴와 7악의 제거를 위해 파괴활동을 벌였다. 이때 5개소의 적 기관은 조선총독부·동양척식주식회사·매일신보사·경찰서·기타 중요 기관이며, 7악은 총독부 고문·군 수뇌·타이완 총독·친일파 거물·밀정·반민족적 토호·열신(劣神)이다. 말하자면 의열단에서는 폭력투쟁으로 일본의 지배, 착취, 친일파들의 일본과의 결탁에 맞선 것이다.

창립단원

김원봉, 윤세주, 이성우, 곽경, 강세우, 이종암, 한봉근, 한봉인, 김상윤, 신철휴, 배동선, 서상락, 권준, 이수택, 이낙준1923년 상해 일본 총영사가 일본 외무대신에게 보낸 보고서에 의하면, 당시 의열단 단원이 천여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1926년 이후 많은 수의 의열단원들은 중국 국민당정부의 북벌을 위한 학교였던 황포군관학교에 입학하여 군사정치교육을 받았다. 이후 이들은 의열단을 조선민족혁명당으로 개편하였다. 그러나 조선민족혁명당이 각 파벌의 권력투쟁으로 인하여 이루어지지 않아 의열단은 조선민족독립당으로 새출발을 하고 11명의 위원을 선출했다.

공약10조

1. 천하에 정의로운 일을 맹렬히 실행하기로 한다.

2. 조선의 독립과 세계의 평등을 위하여 몸과 목숨을 희생하기로 한다.

3. 충의(忠義)의 기백과 희생의 정신이 확고한 자라야 단원으로 한다.

4. 단의 뜻을 우선하고 단원의 뜻을 실행하는데 속히 한다.

5. 의백(義伯,올바른 성품을 가진 지도자) 한 사람을 선출하여 단체를 대표하게 한다.

6. 언제 어디서든지 매월 일차씩 상황을 보고한다.

7. 언제 어디서든지 모이도록 요청하면 꼭 응한다.

8. 죽지않고 살아있어 단의 뜻을 이루도록 한다.

9. 한 사람은 다수를 위하여, 다수는 한 사람을 위하여 헌신한다.

10. 단의 뜻에 배반한 자는 척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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