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궁보기

경복궁 수정전

반응형

경복궁 수정전


 

 

 

 

 

학문의 연구기관이자 세종대왕의 자문기관이었던 집현전은 지금의 수정전 자리에 있었습니다.

수정전은 고종 때 경복궁을 다시 지으면서 세운 건물입니다.

 

비록 사진이지만 눈을 가까이 하시고 한 번 세어 보세요.

수정전은 5단 월대위에 규모가 앞면 10칸, 옆면 4칸으로 총 40칸으로

경복궁 전각중 칸수가 가장 많습니다.

수정전의 월대는 임금의 출입이 빈번하여 관청으로서는 드물게 정면에 월대를 두었어요.

월대 앞면의 서쪽 계단 옆에는 보루각 표지석이 있습니다.

보루각은 자격루를 설치하고 표준시를 알리던 기관입니다.

자격루는 1434년 (세종16년) 장영실과 김빈이 2년여의 노력 끝에 완성한 물시계입니다.

 

 

 

 

 

 

자격루의 자동시보 장치가 시각을 알리면 이 신호를 받아 근정문, 광화문, 종루,

도성의 사대문에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궁문과 도성 문이 열리고 닫혔습니다.

자격루는 제작 된지 21년 만인 단종 3년에 시보장치가 고장이 나서 사용이 중지되었다고 합니다.

 

 

 

                                                           <집현전 학사도>

 

 

 

집현전은 설치 동기가 학자의 양성에 있었고, 세종도 그와 같은 원칙으로 육성했기에

학구적인 특성을 띠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세종대에는 일단 집현전 학사에 임명되면

다른 관직으로 옮기지 않고 그 안에서 차례로 승진해 직제학 또는 부제학에까지 이르렀고,

그 뒤에 육조나 승정원 등으로 진출하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이처럼 오랜 기간 동안의 연구직인 학사들의 연구에 편의를 주기 위해 많은 도서를 구입하거나

      인쇄해 집현전에 모아 보관하였고 휴가를 주어 산사(山寺)에서 마음대로 독서하고 연구하게 하였습니다.

세종은 그 밖에 여러가지 특권을 주어 학사들이 불편하거나 부족함이 없도록 하였습니다.

그 결과 장영실과 같은 우수한 학자들이 집현전을 통해 많이 배출되었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