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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부용정, 부용지의 역사 문화 환경 창덕궁 부용정, 부용지의 역사 문화 환경 창덕궁 부용정(昌德宮 芙蓉亭)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와룡동, 창덕궁(사적 제122호)에 있는 조선시대의 건축물이다. 2012년 3월 2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763호로 지정되었다. 입지 현황 및 역사 문화 환경 창덕궁에서 후원으로 가는 길은 현재는 내의원으로 불리는 건물군을 왼쪽으로 끼고 담으로 좌우를 막은 통로를 이용하게 된다. 이 통로는 약간 오르막길로 되어 있으며 길은 좌측으로 꺾이면서 내리막길로 변하는데 그 지점에서 부용지 일대의 모습이 내려다 보인다. 3면이 경사지이며 경사가 모이는 한가운데에 방형(方形)의 연못인 부용지가 있다. '부용(芙蓉)'은 '연꽃'을 뜻하는데,창덕궁 후원의 대표적인 방지(方池)이다. 동서 길이가 34.5m, 남북 길이가 29.4m에.. 더보기
창덕궁, 희정당, 한식과 서양식이 어우러진 건물 창덕궁, 희정당, 한식과 서양식이 어우러진 건물 희정당은 본래 침전으로 사용하다가, 조선 후기부터 임금님의 집무실로 사용하였다. 건물을 지은 시기는 확실하지 않으나, 조선 연산군 2년(1496)에 수문당이라는 건물이 소실되어 이를 다시 지으면서 이름을 희정당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 후 몇 차례의 화재로 다시 지었는데 지금 있는 건물은 일제강점기인 1917년에 불에 탄 것을 경복궁의 침전인 강녕전을 헐어다 1920년에 지은 것이다. 규모는 앞면 11칸·옆면 4칸으로 한식건물에 서양식 실내장식을 하고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앞면 9칸·옆면 3칸을 거실로 하고 주위는 복도로 사용하였다. 앞면 9칸 중 3칸은 응접실이며 서쪽은 회의실로 꾸미고, 동쪽은 여러 .. 더보기
창덕궁, 선정전, 정치와 교육을 널리 펼치다. 창덕궁, 선정전, 정치와 교육을 널리 펼치다. ‘선정(宣政)’이란 ’정치와 교육을 널리 펼친다‘는 뜻이며, 선정전(宣政殿)은 임금의 공식 집무실 인 편전(便殿)이다. 편전이란 임금과 신하가 정치를 논하고, 유교경전과 역사를 공부하는 곳을 말하며. 이곳에서 임금과 신하들이 정치를 논하는 것을 ‘상참(常參)’이라고 한다. 상참에 참여할 수 있는 신하는 3품의 당상관 이상 이다. 이처럼 그 용도가 매우 중요해서인지 다른 전각들과 달리 지붕도 청색 유리기와로 덮은 청기와 인데 이 기법은 중국에서 도입한 것으로 ‘회회청(回回靑)’이라는 비싼 안료를 외국에서 수입하 여 청기와를 구웠다고 하며, 선정전은 현재 궁궐에 남아 있는 유일한 청기와집이다. 지금의 선정전(宣政殿)은 인조 25년(1647)에 광해군이 인왕산 아.. 더보기
창덕궁 낙선재, 단청을 하지 않고 사대부 주택형식을 갖추다. 창덕궁 낙선재, 단청을 하지 않고 사대부 주택형식을 갖추다. 낙선재는 창덕궁과 창경궁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맨 좌측에 낙선재가 크게 자리 잡고 그 우측으로 석복헌과 수강재가 연이어져 있으며, 이들 뒤편에는 화초·석물·꽃담 굴뚝 등으로 가꾸어진 아름다운 화계와 그 위의 꽃담 너머로는 상량정·한정당·취운정이 위치해 있다. 원래 왕의 연침공간 조성을 목적으로 낙선재가 지어지고 이듬해에 빈의 처소를 위하여 석복헌을 짓고 수강재를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궁궐 안에 사대부주택형식으로 지은 건물로는 낙선재와 연경당뿐이다. 낙선재는 헌종 13년(1847)에 왕이 왕비와 대왕대비를 위해 마련하여 조선 왕실의 권위를 확립하고 자신의 개혁의지를 실천하기 위한 장소로 사용했다. 1884년 갑신정변 직후 고종의 집무소.. 더보기
창덕궁의 정전, 인정전 자연속에 어우러지다. 인정전 인정전은 창덕궁의 정전이에요. 조선시대의 궁궐은 정전까지 3개의 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창덕궁은 돈화문과 진선문 인정문을 거쳐야 정전인 인정전에 들어오게 됩니다. 인정전에서는 조회와 왕의 즉위식, 외국 사신 접견, 책봉식 등 국가의 큰 행사를 치렀습니다. 인정전의 넓은 마당을 조정이라고 합니다. 가운데 3개로 난 길은 가운데 어도, 오른쪽이 문관, 왼쪽이 무관들이 지나다니는 길입니다. 양쪽으로 품계석이 늘어서 있습니다.문무백관이 자신의 지위에 따라 서 있는 곳입니다. 조선의 품계는 정1품부터 종9품까지로 문무양반제로 18품계입니다. 품계석을 보면 정-종-정-종 나오다 정4품 부터는 정만 있습니다. 종4품은 정 옆에 섰습니다. 정3품 이상을 당상관이라하고 이하를 당하관이라고 합니다. 어전회의에는 당.. 더보기
창덕궁 금천교, 진선문, 인정전, 인정문 주변의 궐내각사 창덕궁 금천교 금천교는 1411년 (태종11년)에 만들어진 돌다리입니다. 조선의 궁궐에는 들어가는 입구에 풍수지리상 길한 명당수를 흐르게 하고 궁궐 안과 밖을 구분하기 위해 돌다리를 놓습니다. 경복궁에는 영제교가 있고 창덕궁에는 금천교가 있습니다. 다리 아래에는 남쪽의 해태상, 북쪽에는 거북상을 배치하여 궁궐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삼았어요. 다리 중간에는 잡귀를 쫓는 귀면이 조각되어 있고 돌출부에는 천록이 있어 들어오는 사람의 마음을 착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진선문 진선문은 남북축의 돈화문이나 인정문과 다르게 동서축으로 세워져 있어 돈화문에서 북쪽을 가다가 동쪽으로 꺽어서 금천교와 진선문을 지나 다시 북쪽으로 꺽여 인정문에 들어가게 됩니다. 태종대와 영조대에 진선문에 북을 설치하여 억울한 일이 있는 백성이.. 더보기
혼자이어도 좋고, 벗과 함께여도 좋은 곳. 혼자이어도 좋고, 벗과 함께여도 좋은 곳. 제가 궁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년 전 부터였습니다. 먼곳으로 여행 다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마음이 답답할 때면 고궁에 가서 앉아 있다 오곤 합니다. 주말에 가면 사람들이 많아 주로 평일에 자주 갑니다. 평일에는 그 큰 고궁에 사람들이 드문 드문 있어 조용합니다. 그래서 산책하기에는 그만입니다. 특히, 창덕궁의 후원을 산책하고 있자면 고개를 한껏 뒤로 젖히고 하늘을 보게 됩니다. 높게 뻗은 회화나무 사이로 반짝이는 햇빛과 바람 따라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는 어느 음악과 시보다도 제 마음을 찬란하게 합니다. 그래서 어지러울 때까지 올려다 봅니다. 그럴땐 혼자이어도 좋고 옆에 말없이 같이 하늘을 바라봐 주는 벗이 있어도 좋습니다. 경복궁에 가면 향원정에.. 더보기
창덕궁 돈화문, 궐내각사,규장각,옥당 창덕궁 돈화문 돈화문은 태종12년에 처음 지어졌는데 임진왜란 때 불타 광해군 원년에 다시 지은 것으로 현재 남아있는 궁궐 정문으로는 가장 오래 되었습니다. 돈화는 [중용]의 '대덕돈화'에서 가져온 것으로 '큰 덕은 백성들을 가르치어 감화시킴을 도탑게 한다' 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돈화문은 처음에는 그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어요. 문종 때 돈화문을 고치라는 왕명이 있었고 연산군 때 크고 높게 고치라는 왕명이 있었습니다. 창덕궁이 차츰 이궁에서 본궁의 구실을 하게 되자 정문을 보다 크고 위엄있게 만들 필요가 있었을 거라는 풀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궁궐의 정문이 3칸인데 비해 돈화문은 5칸이고 이층으로 크고 높게 지어졌습니다. 경복궁과 창경궁의 정문이 정전과 일직선상에 있는 것과는 달리 창덕궁의 돈화문..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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