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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궁궐중 유일하게 세계의 문화유산으로 지정되다. 창덕궁, 궁궐중 유일하게 세계의 문화유산으로 지정되다. 조선의 3대 임금인 태종은 북악산 응봉의 산자락에 경복궁의 이궁인 '창덕궁'을 세웠습니다. 경복궁의 동쪽에 위치하여 창경궁과 함께 동궐이라고 불리죠. 법궁인 경복궁이 있는데 태종이 궁궐을 또 세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태종은 경복궁의 형세가 좋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실질적인 이유는 두 번에 걸친 왕자의 난으로 실권을 잡은 이방원은 경복궁에 기거하는 것을 꺼려했던 것입니다. 경복은 정도전이 왕이 일하기에 편리하게 설계를 했다면 창덕궁은 왕의 의도에 따라 설계해서 쉴 수 있는 후원을 아주 넓게 만들었습니다. 왕권이 강했던 세조도 후원을 2배 넓게 확장했습니다. 그래서 조선 전기의 왕들은 경복궁보다 창덕궁에 머물었습니다. 창덕궁이 세워짐으로써 조선은 정.. 더보기
경복궁 건청궁, 슬픈 역사의 현장 건청궁, 슬픈 역사의 현장 건청궁은 명성황후가 시해 당한 슬픈 역사의 현장이에요. 건청궁을 들어설때면 가슴 한켠이 찌릿하게 아려오는 것은 아마도 이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건청궁은 사랑채, 안채, 행랑채를 갖춘 구조로 사대부의 집과 흡사한 느낌이에요. 화려하지도 않은데다가 궁이라고 말하기에는 작다는 생각도 듭니다. 건청궁은 역대 임금들의 초상화를 봉안한다는 명분 아래 흥선대원군의 지시로 고종 10년에 지어진 궁이에요.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 서쪽에 태조의 어진을 봉안하기 위해 태원전을 지은 것으로 보아 새로운 어진 봉안 시설이 필요했던 것 같지는 않아요. 아마도 임시거처나 휴식공간으로 삼았을 개연성이 높습니다. 건청궁은 임금의 침전이나 편전과는 멀리 떨어져 있어 한가로이 쉴 수 있기로는 안성맞춤이었.. 더보기
경복궁 향원정, 왕족의 사적인 휴식 공간 경복궁 향원정, 왕족의 사적인 휴식 공간 경회루가 사신을 접대하거나 국가적 경사를 맞아 잔치를 베푸는 공간이라면 향원정은 왕족의 사적인 휴식공간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경회루가 웅장하고 남성적인 힘이 느껴진다면 향원정은 아름답고 섬세한 여성미가 느껴지지요? 향원정의 모태는 취로정이에요. 세조는 취로정을 짓고 후원에 개간한 논농사를 둘러본 뒤 이곳에 들러 휴식을 하면서 백성들의 힘든 생활을 잊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지금의 연못과 정자는 고종 10년 건청궁을 지을 무렵 다시 조성한 것입니다. 향원정은 주돈이의 가운데 '향원익청'에서 빌려온 겁니다. 현존 건물로는 유일하게 6각형의 중층 정자입니다. 취향교, 연꽃 향기를 머금다. 장안당쪽에서 섬안의 정자쪽으로 길게 뻗은 다리는 취향교입니다. 연꽃 향기에 흠뻑 .. 더보기
경복궁 자경전, 십장생 굴뚝, 자경전 꽃담 자경전 자경전은 흥선대원군이 자신의 둘째 아들을 양자로 삼아 옥새를 건네준 신정대비에게 헌정한 전각입니다. 자경은 '어머니께서 복을 누린다'라는 뜻이에요. 총 44칸의 규모로 주변에 많은 담장과 문이 있었지만 대부분 없어져 지금은 볼 수 없는 것이 아쉽습니다. 자경전은 경복궁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대비전이에요. 뒤뜰은 교태전 후원과는 다르게 화계 대신 담장을 둘러 그곳에 십장생도를 새겼습니다. 대비의 만수무강과 왕실의 번영을 담은 것입니다. 흥선대원군은 여름에 신정대비가 시원하게 지낼 수 있도록 청연루를 자경전 동쪽에 ㄱ자 형태로 돌출시켜 지었습니다. 겨울철에는 따뜻하게 지낼 수 있도록 본채의 서쪽에는 ㄴ자 형태로 복안당을 덧대었습니다. 흥선대원군의 세심한 배려가 느껴집니다. 복안당은 앞면 6칸, 옆면 2.. 더보기
경복궁 교태전의 후원, 아미산 경복궁 교태전의 후원, 아미산 교태전 후원의 아미산은 경회루 연못을 팔 때 나온 흙을 쌓아 만든 인공산입니다. 자연을 축소해 화계(계단식으로 꾸민 화원)로 후원을 가꾸었습니다. 중국의 가장 아름답고 신비한 산의 이름을 빌린 것입니다. 아미산 굴뚝은 하늘로 가는 통로라는 관념으로 옥황상제가 살았다는 옥루 기둥의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몸체는 육모로 육합을 상징합니다. 육합은 하늘과 땅, 동서남북을 가리키므로 '온 세상'을 의미합니다. 몸체의 여섯 면은 벽사(귀신을 물리침)와 장수를 비는 여러가지 동.식물의 형상으로 빚어서 벽돌로 구워 네 겹으로 끼워 넣은 것입니다. 굴뚝의 위쪽을 보세요. 맨 위의 당초문은 오랜 생명력을 상징합니다. 그 다음 칸에 있는 학, 나티, 봉황, 박쥐는 고고함, 행복, 장생, 벽.. 더보기
경복궁 교태전, 왕비의 생활 공간 경복궁 교태전, 왕비의 생활 공간 교태전은 궁궐에서 가장 깊숙하고 중심이 되는 위치에 있어서 가운데 중(中) 을 써서 중궁전 이라고도 합니다. 왕위를 계승할 왕자가 잉태되는 산실이기에 교태나 양의 등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교태전을 들어서기 전 양의문을 지나야 합니다. 양의란 양과 음, 하늘과 땅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양의문 밖의 강녕전은 남성의 공간이나 양의문을 들어서면 교태전, 곧 여성의 공간으로 바뀝니다. 골판문으로 가운데 칸은 여섯 짝, 좌우협칸은 네 짝 씩 달아 병풍처럼 접을 수도 있습니다. 이 문의 걸쇠는 교태전 쪽에 있지요. 합궁하기 위해 오시는 임금도 중궁에서 걸쇠를 풀어줘야 들어설 수 있습니다. 양의문 좌우에는 화방벽 밖으로 돌출된 강녕전 굴뚝이 붙어있습니다. 이 굴뚝은 꽃담처럼 밝.. 더보기
[경복궁] 강녕전, 왕의 생활공간 [경복궁] 강녕전, 왕의 생활공간 왕의 생활 공간이었던 강녕전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좀처럼 휴가도 없었고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정무를 보느라 바빴던 임금은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혼자 있을 때 무엇을 했을까요? 향오문은 정무를 마친 임금이 사정전에서 나와 내전, 곧 강녕전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내전이 시작되는 문이 향오문입니다. 향오는 '5를 향해 들어가는 문' 입니다. 여기서 '오' 를 가리키는 것은 오복입니다. 오복이란 수, 부, 강녕, 유호덕 (덕을 베품), 고종명(편안한 죽음) 입니다. 강녕은 오복의 세 번째 덕목인 몸이 건강하고 마음이 편안한 상태를 이루는 것입니다. 강녕은 오복의 중심이자 모든 복을 아우릅니다. 이렇게 뜻을 하나 하나 알고 지나가니, 평소에는 그저 많은 문 중의 하나였던 .. 더보기
경회루, 흥청망청의 발원지 경회루, 흥청망청의 발원지 세종의 뒤를 이은 병약한 문종이 단명을 하자 수양대군은 1453년 10월 10일 불시에 김종서의 집을 습격하여 그와 그의 아들 둘을 죽였습니다. 이어 단종의 명이라고 속여 중신들을 모이게 한 후 궐문 안에서 입궐하는 중신들을 차례대로 죽였지요. 수양대군은 정변으로 반대파를 숙청하고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이 정변을 계유정난 이라고 합니다. 보통, 계유년에 일어난 란 이라는 뜻으로 잘못알고 있지요. '계유년의 어려움을 안정시켰다' 라는 뜻입니다. 세조 측의 입장에서 이름을 붙인 것 같습니다. 그 후 2년 뒤 단종은 상왕으로 물러나고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옥새를 넘기게 됩니다. 그 곳이 바로 경회루 입니다. 잠시, 그 날로 돌아가 생각해 볼까요? 어린 단종은 숙부인, 수양대군이 무서웠..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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