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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녀

공신부인 한씨, 한확의 누이, 명나라에 바친 공녀로 선덕제의 후궁이 되다. 공신부인 한씨, 한확의 누이, 명나라에 바친 공녀로 선덕제의 후궁이 되다. 공신부인 한씨(恭愼夫人 韓氏, 1410년 음력 4월 9일 ~ 1483년 음력 5월 18일)는 조선 출신의 명나라 후궁이다. 조선에서 명나라에 바친 공녀로, 선덕제의 후궁이 되었다. 한확의 누이이며 소혜왕후의 고모이다. 이름은 계란(桂蘭)이다. 생애 1410년(태종 10년) 음력 4월 9일 청주 한씨 한영정(韓永矴)과 그 부인 김씨의 3남 2녀 중 차녀로 태어났다. 공신부인의 어머니 김씨는 좌명공신(佐命功臣) 승녕부사(承寧府事)를 지내고 양소공(襄昭公)의 시호를 받은 의성 김씨 김영렬(金英烈)의 딸이다. 한편 한확은 공신부인의 오빠이며, 한확의 딸로 의경세자(덕종)의 부인이자 성종의 모후인 소혜왕후는 공신부인의 친조카이다. 또 공신.. 더보기
공녀, 원말의 기황후, 조선의 여비 한씨, 공신부인 한씨 공녀, 원말의 기황후, 조선의 여비 한씨, 공신부인 한씨 공녀(貢女)는 약소국이 강대국에 조공의 하나로 여자를 바치는 것을 의미한다. 몽골이 제1차 침입 직후인 1232년(고종 19)에 왕족과 대관(大官)의 동남·동녀 각 500명 및 공장(工匠)·자수부인(刺繡婦人)을 바치라고 요구한 것이 그 시초이다. 원나라에서 공녀 문제로 사신이 다녀간 것은 1355년(공민왕 4)까지 50여 차례에 달하고, 공납한 처녀는 150명이 넘는다. 이들은 대부분 원나라 궁중에서 급사(給事)나 시녀가 되었다. 공녀 중에는 중국이나 몽골의 황제의 눈에 띄어 후궁이 되거나 비빈으로 간택되는 경우도 있었다. 고려 출신 세조(世祖) 쿠빌라이(忽必烈)의 총애를 받은 이씨(李氏), 인종(仁宗)때에 영비(英妃) 달마홀도(達麻忽都), 원말의.. 더보기
기황후, 원나라 공녀로 원 혜종의 총애를 얻어 귀빈으로 책봉되다. 기황후(奇皇后, 1315년 - 1369년)는 원나라 혜종의 황후이다. 몽골명은 솔롱고 올제이 후투그이며, 시호는 보현숙성황후(普顯淑聖皇后)이다. 고려 출신의 여자로, 고려후기의 무신 기홍영의 증손녀이자 고려 고종의 사위인 기온의 종손녀였다. 원나라에 바쳐지는 공녀 중의 한사람이었다고 추정된다. 고려 출신 환관 고용보(高龍普)의 주선으로 황궁의 궁녀가 되었다가 원 혜종의 총애를 얻어 귀빈으로 책봉되고, 훗날 혜종의 뒤를 이어 황제로 등극하는 아들 아유르시리다르를 낳았다. 정적관계였던 제1 황후 다나슈리가 역모죄로 사사되자 외국인은 정궁으로 삼을 수 없다는 재상 메르키트 바얀의 반대를 견뎌내고 제2 황후가 되었고, 1365년에 제1황후인 옹기라트 출신의 바얀 후투그 사망하자 정궁황후로 등극하였다. 이후 아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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