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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이토 히로부미,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과 대한제국의 식민지화를 주도한 인물 이토 히로부미,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과 대한제국의 식민지화를 주도한 인물 이토 히로부미(일본어: 伊藤博文 (いとう ひろぶみ), 문화어: 이또 히로부미, 1841년 10월 16일 ~ 1909년 10월 26일)는 에도 시대 후기의 무사(조슈 번사)이자 일본 제국의 헌법학자, 정치가이다. 일본 제국의 초대 내각총리대신이며 조선통감부의 통감을 역임했다. 메이지 유신 이후에 정부의 요직을 거쳤으며, 일본 제국 헌법의 기초를 마련하고, 초대·제5대·제7대·제10대 일본 제국 내각 총리대신을 역임했다. 또한 초대·제3대·제8대·제10대 추밀원 의장, 조선통감부 초대 통감, 귀족원 의장, 관선 효고 현 지사 등을 지냈다. 입헌정우회를 결성해 원로로 활동했다. 대훈위 종일위(從一位)를 받고, 작위는 백작이며, 사후 공.. 더보기
기유각서, 대한제국 사법 및 교도행정 위탁에 관한 각서 기유각서, 대한제국 사법 및 교도행정 위탁에 관한 각서 기유각서(己酉覺書)는 융희 2년(1909년) 7월 12일, 대한제국과 일본 제국 사이에 체결된 조약이다. 기유각서의 공식 명칭은 대한제국 사법 및 교도행정 위탁에 관한 각서로서, 공식 명칭 그대로 대한제국의 사법권과 교도행정에 관한 업무를 일본에게 넘겨준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조약이다. 이 조약 사건으로 말미암아 대한제국 순종 황제의 실권이 대한제국 조선 주재 일본 통감부 통감 소네 아라스케(曾禰荒助)에 의해 전격 박탈되었다. 임진왜란의 사후 처리를 위해 조선과 일본의 에도 막부(江戶幕府)가 1609년에 체결한 기유약조와는 다른 조약이다. 체결 이 조약은 대한제국의 사법권과 감옥 사무를 일본 제국에 넘겨준 것으로서 대한제국의 사법부와 재판소 및 형무.. 더보기
만민공동회, 박성춘, 시민들의 주장과 힘을 보여준 대중운동 만민공동회, 박성춘, 시민들의 주장과 힘을 보여준 대중운동 만민공동회(萬民共同會) 또는 관민공동회(官民共同會)는 조선말, 대한제국의 대토론회, 시민운동이자 시민사회단체로 독립협회에서 처음 주관하였다가 1898년 4월을 기점으로 독립협회의 영향력에서 독자적인 민중대회, 단체로 성장했다. 1897년(광무 1년) 초 독립협회의 서재필, 윤치호, 이상재 등에 의해 처음 시작되었다. 만민공동회는 독립협회 주최하에 민중대회로 처음 개최되었으며, 한성부의 시민, 소상인, 일부 지식인층이 참여했다. 이후 1897년 10월 박정양을 비롯한 정부의 개혁적 관료들과 독립협회가 함께 주관하면서 범국민적인 대회, 단체로 성장했다. 정부 측의 박정양, 이상재, 독립협회 측의 서재필, 윤치호 등이 이를 지도하였다. 만민공동회는 처.. 더보기
을사오적, 을사조약 체결을 찬성했던 학부대신 을사오적, 을사조약 체결을 찬성했던 학부대신 을사오적(乙巳五賊)은 1905년 대한제국에서 을사조약의 체결을 찬성했던 학부대신 이완용, 군부대신 이근택, 내부대신 이지 용, 외부대신 박제순, 농상공부대신 권중현의 다섯 사람을 말한다. 당시 대신 중 수상격인 참정대신 한규설(韓圭卨)과 탁지부대신 민영기, 법부대신 이하영은 조약에 반대했고, 궁내부대신 이재 극은 조약 체결과 직접 관계가 없었다. 조약이 체결되자 이에 반대했던 한규설은 일본의 강압으로 물러가고, 조약에 조인한 외부대신 박제순이 참정대신이 되었다. 이하영은 초기의 반대 의견을 곧 뒤집은 뒤 조약 체결 과정에서 박제순보다 더 맹렬한 활약을 하였으나 처음에 반대한 사실 때문에 을사오적에서는 빠졌다. 을사오적은 매국노의 대명사로 이후 숱한 암살 위협에.. 더보기
을사조약, 일본에게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당하다. 을사조약, 일본에게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당하다. 을사조약(乙巳條約) 또는 제2차 한일협약(第二次韓日協約)은 1905년 11월 17일 대한제국의 외부대신 박제순과 일본 제국 의 주한 공사 하야시 곤스케에 의해 체결된 불평등 조약이다. 체결 당시 정식 명칭은 ‘한일협상조약’이며, 을사년에 체결되었기 때문에 을사협약, 을사5조약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하는 조약의 내용과 강압에 의해 체결된 조약의 성격을 들어 을사늑약(乙巳 勒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보통 제2차 일한협약(第二次日韓協約, 일본어: 第二次日韓協約) 또는 을사협약(乙巳協約)이라고 부른다. 1965년에 대한민국 정부와 일본 정부는 한일국교를 정상화하는 한일기본조약의 제2조를 통해 이 조약이 무.. 더보기
고종, 홍릉 황제릉의 양식 고종, 홍릉 황제릉의 양식 능의 구성 홍릉은 조선시대 말기에 조성된 능역으로,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기 때문에 황제릉의 양식을 따라 명나라 태조의 효릉을 본떠 조영하였다. 능침의 삼계를 없애고 석물을 배전의 앞으로 배치하고, 정자각 대신 일자형 건물의 배전을 세웠다. 능침 주위에 배치되었던 석수들은 배전 앞, 참도의 좌우에 그 종류를 더하여 나란히 세워져 있다. 능침은 병풍석으로 하고 난간석을 둘렀으며 능침을 수호하는 석양과 석호는 세우지 않고 혼유석1좌, 그 양 옆으로 망주석 1쌍을 세우고 그 앞으로 사각장명등을 설치하였다. 석물의 배치는 홍전문과 배전 사이에 문석인, 무석인, 기린, 코끼리, 사자, 해태, 낙타, 말의 순으로 대칭 되어 있다. 참도는 어도와 신도의 두 단으로 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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