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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도

장세동,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라는 운동권의 비판과 함께 한편으론 신군부 최고의 충신이라는 평도 있다. 장세동,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라는 운동권의 비판과 함께 한편으론 신군부 최고의 충신이라는 평도 있다. 장세동(張世東, 1936년 9월 27일 ~ )은 대한민국의 군인, 정치가이다. 본관은 인동(仁同)이고 전라남도 고흥 출생이다. 호는 남촌(南村)이다.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를 16기로 졸업하여 군인이 되었고 1960년대 중반 베트남 전쟁 당시 중대장과 감찰관으로 다녀왔으며 공수특전여단, 대통령 경호실, 특수전사령부 등에서 근무하였다. 그뒤 특전사령부 작전참모로 재직 중 12.12 사태 및 5·17 비상계엄에 개입하였다. 이후 3공수여단장을 거쳐 제5공화국 출범 이후에는 1980년부터 1985년까지 대통령 경호실장을 거쳐 국가안전기획부장으로 재직하였다. 5공청산 때 모든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고 자처하였고.. 더보기
최세창 5.18광주 민주화 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실탄 배부와 사용을 지시하다. 최세창 5.18광주 민주화 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실탄 배부와 사용을 지시하다. 최세창(崔世昌, 1934년 4월 17일 ~ )은 대한민국의 군인, 정치가이다. 본관은 경주(慶州), 아호(雅號)는 유광(維光)이다. 1953년 서울 경동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1957년에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1977년 육군 특전사령부 제3공수특전여단장으로 보임되었고 1979년에 일어난 12·12 군사 반란 당시 하나의 핵심 인물 가운데 한 사람으로 제3공수특전여단을 지휘했다. 1980년 5월 20일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파견된 제3공수특전여단에 실탄 배부와 실탄 사용을 지시했으며 나중에 사단장, 육군 제1군단장, 육군참모차장, 육군 제3야전군사령관, 합동참모의장, 대한광업진흥공사 사장, .. 더보기
3·1운동 민족대표 33인 3·1운동 민족대표 33인 민족대표 33인(民族代表三十三人)은 1919년 3·1 운동 때 발표된 기미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명을 가리킨다. 종교별로 나누어 대표를 선정하여 천도교, 기독교, 불교에서 각 15명, 16명, 2명씩 참가했다. 이 가운데 1919년 3월 1일에 약속 장소인 태화관에 나오지 않은 사람은 길선주, 유여대, 김병조, 정춘수이다. 상하이로 망명해 체포를 피한 김병조와 나중에 무죄 판결을 받은 길선주, 그리고 체포 직후 구금 중에 사망한 양한묵을 제 외하고는 모두 이 사건으로 징역 1년 6개월에서 3년형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들중 손병희등은 복역 중 병사하였다. 민족대표 33인 중 일부는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포함되어..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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