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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민특위

박흥식, 미군정청이 일반 시민에게 배급할 화신의 포목과 잡화를 불법으로 매매하여 폭리를 취하다. 박흥식, 미군정청이 일반 시민에게 배급할 화신의 포목과 잡화를 불법으로 매매하여 폭리를 취하다. 박흥식(朴興植, 1903년 8월 6일 ~ 1994년 5월 10일)은 일제 강점기의 대표적인 기업인이다. 광복 이후에는 사업에서 손을 떼었지만 1950년부터 1980년까지 30년동안은 다시 기업인으로 활동하였다. 화신백화점 사장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제1공화국에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조직되었을 때 첫 번째로 체포된 인물이기도 하다. 생애 초기 평안남도 용강군(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남포특별시 룡강군) 출신이다. 소학교를 졸업하고 십대 중반의 나이에 인근의 진남포에서 미곡상을 시작한 뒤 인쇄업, 지물업 등으로 사업이 계속 번창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1926년 경성부로 올라와 선일지물주식회사를 설립한 뒤 .. 더보기
노덕술, 반민특위에 의해 체포되었지만 6.6반민특위습격사건으로 풀려나다. 노덕술, 반민특위에 의해 체포되었지만 6.6반민특위습격사건으로 풀려나다. 노덕술(盧德述, 일본명: 松浦 鴻 (まつうら ひろ) 마쓰우라 히로, 1899년 6월 1일 ~ 1968년 4월 1일)은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경찰이다. 그의 본적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궁정동이다. 일제 강점기 당시 고등계 형사 겸 친일 경찰이었으며 광복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부터 친일파 경찰에서 수도경찰청 간부로 활약하여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반공 투사"라고 극찬을 받기도 하였다. 1949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체포된 바가 있었으나 반민특위 해체로 풀려나 경찰직 복귀 이후에도 대한민국 경찰직에서 고위간부로 지내는 등의 호사를 누렸다. 일제강점기 1899년 6월 1일 경상남도 울산군 장생포에서 태어났다. 일설에는 경기도 개.. 더보기
반민특위 활동과 와해 및 정부요인 암살 음모 사건 반민특위 활동과 와해 및 정부요인 암살 음모 사건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反民族行爲特別調査委員會), 약칭 반민특위(反民特委)는 일제 강점기 시대에 일본제국과 적극적으로 협조하여 악질적으로 반민족적 행위를 한 자를 조사하기 위하여 제헌국회에서 설치한 특별위원회이다. 제헌국회에서는 1948년 9월 7일 국권강탈에 적극 협력한 자, 일제치하의 독립운동가나 그 가족을 악의로 살상·박해한 자 등을 처벌하는 목적으로 반민족행위처벌법을 통과시켰다. 반민특위는 그 산하에 배치되어 있는 특별경찰대를 활용, 일제시대의 악질기업가였던 박흥식, 일제를 옹호하여 조국의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내몰았던 최남선·이광수 등을 검거하여 재판에 회부하는 등 민족정기를 흐리게 했던 많은 친일매국분자들을 색출하였다. 그러나 이승만은 자신의 권.. 더보기
국회 프락치 사건, 첩보 공작을 한 혐의로 김약수 등 13명 의원이 체포되다. 국회 프락치 사건, 첩보 공작을 한 혐의로 김약수 등 13명 의원이 체포되다. 국회 프락치 사건은 1949년 6월, 이른바 '남로당 프락치(공작원)'로 제헌국회에 침투, 첩보공작을 한 혐의로 김약수 등 13명의 의원이 체포된 사건을 말한다. 당시 국회 부의장이던 김약수를 비롯하여 노일환, 이문원 등 진보적 소장파 의원들이 외국군(미국, 소련)의 완전철수, 남북정당, 사회단체 대표로 구성된 남북정치회의 개최를 주요내용으로 하는 '평화통일방안 7원칙'을 제시하자, 평화통일, 자주통일을 불온시하고 북진통일만을 주장했던 제1공화국 정부는 이들이 남로당 공작원과 접촉, 정국을 혼란시키려 했다는 혐의로 김약수 등 13명을 검거했다. 사건은 철저한 보안이 유지된 가운데 조사되었으며, 7개월 후인 11월 17일 첫 공..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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