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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정원일기

일성록, 국왕의 일기 일성록, 국왕의 일기 이 책은 1760년(영조 36)에서 1910년(융희 4)까지 151년 동안의 국정 운영 내용을 매일매일 일기체로 정리한 국왕의 일기(*국왕을 3인칭인 ‘상(上)’이 아닌 1인칭 용어인 ‘여(予: 나)’로 표기)이다. 임금의 입장에서 펴낸 일기의 형식을 갖추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정부의 공식적인 기록물이다. 필사본으로 한 질만 편찬된 유일본이며 총 2,329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모두 전하고 있으나 21개월분이 빠져있다. [일성록]의 모태가 된 것은 정조가 세손 시절부터 쓴 존현각일기(尊賢閣日記)이다. 정조는 [논어(論語)]에서 증자(曾子)가 말한 ‘오일삼성오신(吾日三省吾身: 나는 날마다 세 가지 기준을 가지고 스스로에 대해 반성한다)’에 깊은 감명을 받아 일찍부터 자신을 반성하는 자료.. 더보기
승정원일기 승정원 일기 - 국가기록 관리체계의 모범, 2001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 는 국정 전반에 걸친 매일매일의 일기를 날짜 순으로 총 망라해 기록한 것입니다. 따라서 가장 자세하고도 기본적인 사료가 됩니다. 조선시대 당시에도 정책에 참고할 일이 있으면 반드시 에서 전례를 찾았습니다. 국왕의 비서실 승정원 조선 태조 원년(1392) 7월에 반포된 관제에 의하면 원래 왕명출납의 일은 고려의 제도를 이어받아 중추원의 중요 업무 중 하나였는데 이때 그 속아문으로 승지방을 설치하였습니다. 승지방은 왕명출납의 실무를 맡았고 그 장관으로 도승지를 두어 정3품으로 하였습니다. 물론 이때의 관제에 의하면 중추원은 왕명출납 이외에 군기도 관장하는 강력한 기구였습니다. 그러나 왕자의 난 이후 태종이 정권을 장악하자 사병을 폐지.. 더보기
경복궁 건청궁, 슬픈 역사의 현장 건청궁, 슬픈 역사의 현장 건청궁은 명성황후가 시해 당한 슬픈 역사의 현장이에요. 건청궁을 들어설때면 가슴 한켠이 찌릿하게 아려오는 것은 아마도 이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건청궁은 사랑채, 안채, 행랑채를 갖춘 구조로 사대부의 집과 흡사한 느낌이에요. 화려하지도 않은데다가 궁이라고 말하기에는 작다는 생각도 듭니다. 건청궁은 역대 임금들의 초상화를 봉안한다는 명분 아래 흥선대원군의 지시로 고종 10년에 지어진 궁이에요.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 서쪽에 태조의 어진을 봉안하기 위해 태원전을 지은 것으로 보아 새로운 어진 봉안 시설이 필요했던 것 같지는 않아요. 아마도 임시거처나 휴식공간으로 삼았을 개연성이 높습니다. 건청궁은 임금의 침전이나 편전과는 멀리 떨어져 있어 한가로이 쉴 수 있기로는 안성맞춤이었..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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