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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석

신덕왕후, 조선의 첫 왕비, 뛰어난 지략으로 조선 건국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다. 신덕왕후, 조선의 첫 왕비, 뛰어난 지략으로 조선 건국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다. 신덕왕후 강씨(神德王后 康氏, 1356년 7월 12일(음력 6월 14일) ~ 1396년 9월 15일(음력 8월 13일))는 조선 태조(太祖)의 계비이다. 별호는 현비(顯妃), 시호는 순원현경신덕왕후(順元顯敬神德王后)이다. 상산부원군 강윤성(象山府院君 康允成)과 진산부부인 강씨(晉山府夫人 姜氏)의 딸로 본관은 곡산(谷山)이다. 조선 태조의 정치적 조언자였으며, 그의 뛰어난 지략은 조선 건국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출생과 가계 신덕왕후는 황해도 곡산에서 고려 충혜왕 때 세도를 떨친 권문세가의 규수로 태어났다. 신덕왕후의 조상은 호경과 강충으로 이들은 고려 태조 왕건의 외가 쪽 선조였다. 강충의 셋째 아들 강보전의 후손으로 그.. 더보기
이방번, 무안대군, 태조 이성계의 일곱째 왕자 이방번, 무안대군, 태조 이성계의 일곱째 왕자 무안대군 이방번(撫安大君 李芳蕃, 1381년 ~ 1398년 10월 6일(음력 8월 26일))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일곱째 왕자이다. 그는 이미 아버지 태조의 마음에 세자 후보로 지목되고 있었으나, 중신들의 추천으로 인하여 동복 동생 방석에게로 세자 자리가 돌아갔다. 제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李芳遠, 배다른 형), 조준(趙浚) 등에게 암살되었다. 시호는 장혜공(章惠公), 공순군(恭順君)이다. 사후 숙종 때 가서 대군의 작위에 추봉되었다. 그의 정실 부인은 고려 공양왕의 조카딸이었다. 생애 이방번은 태조 이성계의 일곱째 왕자로 신덕왕후 강씨(神德王后 康氏) 소생으로 출생했으며, 어린 나이에 귀의군(정양군) 왕우의 딸과 결혼에 이어 처숙부 고려 공양왕(高麗 恭.. 더보기
이방석, 의안대군, 1차 왕자의 난으로 폐위되고 17세로 암살되다. 이방석, 의안대군, 1차 왕자의 난으로 폐위되고 17세로 암살되다. 의안대군(宜安大君, 1382년 ~ 1398년 10월 6일(음력 8월 26일)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8왕자이다 그의 시호는 소도(昭悼)이며, 본명은 이방석(李芳碩)이다. 그는 태조의 왕비(제2비)인 신덕왕후 강씨의 소생이다. 조선 최초로 세자에 책봉되었으나, 제1차 왕자의 난으로 인하여 폐위되고 향년 17세로 암살되었다. 세자 책봉 태조 1년(1392) 9월 7일(음력 8월 20일) 세자로 책봉되었다. 짧은 세자 기간 중 부인 현빈 류씨(賢嬪 柳氏)와 내시 이만(李萬)의 간통 사건이 있었으며 이로 인해 류씨와 이만은 처벌받고, 세자는 현빈 심씨(賢嬪 沈氏)를 새 부인으로 맞게 되었다. 태조 5년(1396) 9월 15일(음력 8월 13일)에.. 더보기
태종, 헌릉 조선시대 쌍릉의 대표적인 능제 태종, 헌릉 조선시대 쌍릉의 대표적인 능제 능의 구성 헌릉은 3대 태종과 원비 원경왕후의 봉릉이 같은 언덕에 조영된 쌍릉 형식으로, 조선시대 쌍릉의 대표적인 능제이다. 병풍석의 규모와 확트인 전경, 정자각 중심의 제향공간과 능침공간 사이의 높이 차이 등 초기 조선 왕릉의 위엄성을 잘 드러내주는 요소를 갖추고 있다. 헌릉의 능 앞 석물들은 망주석, 혼유석, 장명등은 1쌍이고 양석, 호석은 각각 4쌍, 문무인석과 마석은 각각 2쌍씩 배치되었는데, 이는 고려 왕조의 현릉(玄陵)과 정릉(正陵) 제도를 기본으로 한 것이며 조선시대에서는 가장 웅장한 배치 방법이다. 헌릉이 지닌 조선 초기 왕릉으로서의 특성을 두 가지 꼽자면 소전대와 상석 아래 놓인 고석의 개수를 들 수 있다. 정자각 북서측에 있는 소전대라고 하는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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