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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영릉 효종의 능 사회의 혼란을 바로잡기 위하여 대동법을 실시하고 상평통보를 주조하다. 영릉 효종의 능 사회의 혼란을 바로잡기 위하여 대동법을 실시하고 상평통보를 주조하다. 능호 : 영릉 위치 :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 영릉로 269-50 지정번호 : 사적 제195호 조성시기 : 1673년(현종 14) 능의 구성 영릉은 조선 제17대 임금 효종과 비 인선왕후의 쌍릉이다. 왕릉과 왕비릉이 한 언덕에 같이 있는 경우 대개는 봉분을 나란히 두는 쌍릉의 형식을 택하는데, 영릉은 특이하게도 왕릉과 왕비릉이 상하로 조영되어 있다. 이는 풍수지리적 이유에서 비롯된 것으로 왕릉과 왕비릉을 좌우로 나란히 놓을 경우 생기가 왕성한 정혈을 비켜가야 하기 때문에 좌우 쌍릉을 쓰지 않고 상하혈 자리에 왕릉과 왕비릉을 조성한 것이다. 이러한 배치를 동원상하릉이라고 하는데 동원상하릉 중에서는 영릉이 조선 최초이다. 왕.. 더보기
영친왕, 의민태자, 조국 광복을 위해 노력하지 않다. 영친왕, 의민태자, 조국 광복을 위해 노력하지 않다. 의민태자(懿愍太子, 1897년 10월 20일 ~ 1970년 5월 1일)는 대한제국의 황태자이자 일본 제국의 군인이다. 성과 휘는 이은(李垠), 아명은 유길(酉吉), 자는 광천(光天), 아호는 명휘(明暉), 명신재(明新齋)이며, 본관은 전주이다. 사후에 전주이씨대동종약원에서 문인무장지효명휘의민황태자(文仁武莊至孝明暉懿愍皇太子)라는 시호를 올렸으나 정식 시호가 아닌 사시이다. 황태자로 책봉되기 이전의 작호인 영친왕(英親王)으로도 알려져 있다. 조선의 제26대 왕이자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 고종의 일곱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순헌황귀비 엄씨이다. 순종과 의친왕, 덕혜옹주와는 이복 형제이다. 1897년에 경운궁 숙옹재에서 태어나 의친왕을 제치고 병약하여 아들이 없.. 더보기
이방자, 의민태자비, 사회봉사로 장애인의 어머니로 존경받다. 이방자, 의민태자비, 사회봉사로 장애인의 어머니로 존경받다. 이방자(李方子, 1901년 11월 4일 ~ 1989년 4월 30일)는 일본 제국의 황족이자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 의민태자 은(懿愍太子 垠)의 비이다. 전주이씨대동종약원에서 올린 사시(私諡)는 현덕정목온정자행황태자비(顯德貞穆溫靖慈行皇太子妃)이다. 세례명은 마리아. 결혼 전의 이름은 나시모토노미야 마사코(일본어: 梨本宮 方子 ()). 이은과 결혼 1901년 11월 4일, 메이지 천황의 조카이자 황족인 나시모토노미야 모리마사 왕(梨本宮 守正)와 그의 부인 이쓰코(伊都子)의 장녀 마사코(方子)로서 도쿄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 구니노미야 아사히코 친왕은 닌코 천황의 조카이자, 메이지 천황의 사촌이었다. 또한 배다른 삼촌 히가시쿠니노미야 나루히코 왕(.. 더보기
창덕궁, 희정당, 한식과 서양식이 어우러진 건물 창덕궁, 희정당, 한식과 서양식이 어우러진 건물 희정당은 본래 침전으로 사용하다가, 조선 후기부터 임금님의 집무실로 사용하였다. 건물을 지은 시기는 확실하지 않으나, 조선 연산군 2년(1496)에 수문당이라는 건물이 소실되어 이를 다시 지으면서 이름을 희정당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 후 몇 차례의 화재로 다시 지었는데 지금 있는 건물은 일제강점기인 1917년에 불에 탄 것을 경복궁의 침전인 강녕전을 헐어다 1920년에 지은 것이다. 규모는 앞면 11칸·옆면 4칸으로 한식건물에 서양식 실내장식을 하고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앞면 9칸·옆면 3칸을 거실로 하고 주위는 복도로 사용하였다. 앞면 9칸 중 3칸은 응접실이며 서쪽은 회의실로 꾸미고, 동쪽은 여러 .. 더보기
창덕궁, 선정전, 정치와 교육을 널리 펼치다. 창덕궁, 선정전, 정치와 교육을 널리 펼치다. ‘선정(宣政)’이란 ’정치와 교육을 널리 펼친다‘는 뜻이며, 선정전(宣政殿)은 임금의 공식 집무실 인 편전(便殿)이다. 편전이란 임금과 신하가 정치를 논하고, 유교경전과 역사를 공부하는 곳을 말하며. 이곳에서 임금과 신하들이 정치를 논하는 것을 ‘상참(常參)’이라고 한다. 상참에 참여할 수 있는 신하는 3품의 당상관 이상 이다. 이처럼 그 용도가 매우 중요해서인지 다른 전각들과 달리 지붕도 청색 유리기와로 덮은 청기와 인데 이 기법은 중국에서 도입한 것으로 ‘회회청(回回靑)’이라는 비싼 안료를 외국에서 수입하 여 청기와를 구웠다고 하며, 선정전은 현재 궁궐에 남아 있는 유일한 청기와집이다. 지금의 선정전(宣政殿)은 인조 25년(1647)에 광해군이 인왕산 아.. 더보기
창덕궁 낙선재, 단청을 하지 않고 사대부 주택형식을 갖추다. 창덕궁 낙선재, 단청을 하지 않고 사대부 주택형식을 갖추다. 낙선재는 창덕궁과 창경궁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맨 좌측에 낙선재가 크게 자리 잡고 그 우측으로 석복헌과 수강재가 연이어져 있으며, 이들 뒤편에는 화초·석물·꽃담 굴뚝 등으로 가꾸어진 아름다운 화계와 그 위의 꽃담 너머로는 상량정·한정당·취운정이 위치해 있다. 원래 왕의 연침공간 조성을 목적으로 낙선재가 지어지고 이듬해에 빈의 처소를 위하여 석복헌을 짓고 수강재를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궁궐 안에 사대부주택형식으로 지은 건물로는 낙선재와 연경당뿐이다. 낙선재는 헌종 13년(1847)에 왕이 왕비와 대왕대비를 위해 마련하여 조선 왕실의 권위를 확립하고 자신의 개혁의지를 실천하기 위한 장소로 사용했다. 1884년 갑신정변 직후 고종의 집무소.. 더보기
창덕궁의 정전, 인정전 자연속에 어우러지다. 인정전 인정전은 창덕궁의 정전이에요. 조선시대의 궁궐은 정전까지 3개의 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창덕궁은 돈화문과 진선문 인정문을 거쳐야 정전인 인정전에 들어오게 됩니다. 인정전에서는 조회와 왕의 즉위식, 외국 사신 접견, 책봉식 등 국가의 큰 행사를 치렀습니다. 인정전의 넓은 마당을 조정이라고 합니다. 가운데 3개로 난 길은 가운데 어도, 오른쪽이 문관, 왼쪽이 무관들이 지나다니는 길입니다. 양쪽으로 품계석이 늘어서 있습니다.문무백관이 자신의 지위에 따라 서 있는 곳입니다. 조선의 품계는 정1품부터 종9품까지로 문무양반제로 18품계입니다. 품계석을 보면 정-종-정-종 나오다 정4품 부터는 정만 있습니다. 종4품은 정 옆에 섰습니다. 정3품 이상을 당상관이라하고 이하를 당하관이라고 합니다. 어전회의에는 당.. 더보기
혼자이어도 좋고, 벗과 함께여도 좋은 곳. 혼자이어도 좋고, 벗과 함께여도 좋은 곳. 제가 궁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년 전 부터였습니다. 먼곳으로 여행 다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마음이 답답할 때면 고궁에 가서 앉아 있다 오곤 합니다. 주말에 가면 사람들이 많아 주로 평일에 자주 갑니다. 평일에는 그 큰 고궁에 사람들이 드문 드문 있어 조용합니다. 그래서 산책하기에는 그만입니다. 특히, 창덕궁의 후원을 산책하고 있자면 고개를 한껏 뒤로 젖히고 하늘을 보게 됩니다. 높게 뻗은 회화나무 사이로 반짝이는 햇빛과 바람 따라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는 어느 음악과 시보다도 제 마음을 찬란하게 합니다. 그래서 어지러울 때까지 올려다 봅니다. 그럴땐 혼자이어도 좋고 옆에 말없이 같이 하늘을 바라봐 주는 벗이 있어도 좋습니다. 경복궁에 가면 향원정에..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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