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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으로 지킨 성, 송상현과 동래성 전투

아쫑 2025. 4. 29. 14:10

조선을 뒤흔든 전운, 임진왜란의 시작

1592년 4월 13일, 조선 땅에 거대한 불길이 치솟았다.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을 거쳐 명나라로 진출하겠다는 야욕을 품고 15만에 달하는 대군을 조선에 들이밀었다. 이 전쟁은 후에 ‘임진왜란’이라 불리게 되었고, 그 첫 번째 희생지가 바로 부산이었다.

왜군은 바다를 건너와 가장 먼저 부산진성을 공격해 무너뜨렸다. 그리고 그 다음 목표는 경상도의 중심, 조선 남부 방어선의 핵심인 동래성이었다. 동래성을 지키고 있었던 이는 경상도 동래부사 송상현이었다.

 

강직한 선비, 송상현의 생애

송상현은 1551년 경상도 밀양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총명하고 성실하여 부모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으며, 유학에 깊이 매진하였다. 과거에 급제한 뒤 성균관 학유, 홍문관 교리 등 중앙의 관직을 역임하며 청렴하고 강직한 성품으로 명성을 쌓았다.

그는 말년의 평탄한 벼슬길을 마다하지 않고 지방관직을 자청하였고, 동래부사로 부임한 뒤에도 탐관오리를 멀리하고 백성의 생업과 안정을 우선으로 삼았다. 하지만 그의 충정은 조선이 가장 어두운 시기를 맞이했을 때 진가를 드러내게 된다.

 

항복 권유를 거절한 사나이

왜군이 동래성 앞에 당도했을 때, 송상현에게 먼저 도착한 것은 ‘무력’이 아닌 ‘협박’이었다. 왜군은 성을 비우고 항복하라는 통첩을 보냈고, 이에 송상현은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그 유명한 문답이 전해진다.

“울지 마라, 죽으면 죽으리라.”

 

그의 짧은 말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겠다는 결의였고, 또한 조선의 신하로서 끝까지 성을 지키겠다는 의지였다. 그는 즉시 동래성의 방비를 강화하고, 병사들과 백성들에게 ‘죽음을 각오한 결전’을 준비하라고 명령했다.

 

압도적 전력 차, 그리고 치열한 최후

동래성은 결코 큰 성이 아니었다. 군사력도 미약했으며, 포르투갈제 조총으로 무장한 왜군에 비해 조선의 병력은 절대적으로 열세였다. 하지만 성 안 사람들의 결의는 강철 같았다. 노인도, 여성도 화살과 돌을 들고 왜군에 맞서 싸웠다.

전투는 하루에 걸쳐 치열하게 벌어졌고, 마침내 성은 함락되었다. 송상현은 포로로 붙잡혔고, 왜군은 마지막으로 그에게 무릎을 꿇으라고 강요했다. 그러나 그는 끝내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결국 그는 참수되었고, 그의 목은 창에 꽂혀 성문 위에 내걸렸다.

목숨으로 지킨 충절의 상징

송상현은 죽는 순간까지도 조선의 신하로서의 절개를 지켰다. 그의 시신은 동래 백성들에 의해 수습되어 오늘날까지도 동래읍성 인근에 묘역이 남아 있다. 후세 사람들은 그를 ‘죽음을 무릅쓴 충신’이라 칭했고, 정조 임금은 송상현에게 ‘충장공’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그의 죽음은 단순한 패장이 아닌, 조국을 위해 스스로 죽음을 택한 의로운 인물로서의 상징이었다. 이후 동래성에서 벌어진 장렬한 저항은 조선 전역의 분노와 항전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명나라에서도 조선의 의로운 관리로 송상현을 기억하고 조문을 보냈다고 한다.

오늘날에 남은 울림

부산광역시 동래구에는 오늘날까지도 동래읍성이 복원되어 있고, 송상현을 기리는 동상과 기념관이 세워져 있다. 매년 열리는 ‘동래성 전투 재현 행사’에서는 송상현과 백성들의 저항이 생생하게 재현되며, 시민들은 그들의 충절을 되새긴다.

송상현의 짧고 뜨거웠던 생애는 ‘한 성(城)을 지킨 자’가 아니라 ‘한 나라의 혼을 지킨 자’로서 기억된다. 역사에서의 승패는 중요하지 않다. 그가 보여준 태도와 정신은, 어떤 기록보다 강하게 오늘날의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진정 나라를 지키는 것이 무엇인가.
목숨으로 그 자리를 지킨 이에게 우리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

 

🗓️ 송상현과 동래성 전투 연표

연도사건
1551년 송상현 경상도 밀양에서 출생
1570년대 과거 급제, 홍문관, 성균관 등 중앙 관직 역임
1591년경 동래부사로 부임
1592년 4월 13일 임진왜란 발발, 왜군 부산포 상륙
1592년 4월 14일 부산진성 함락
1592년 4월 15일 동래성 포위, 송상현 항복 거부
1592년 4월 15일~16일 동래성 전투, 송상현 전사
정조 대 (18세기 후반) '충장공(忠壯公)' 시호 추서
현대 동래읍성 복원, 송상현 기념관 및 제향 행사 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