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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

신문고, 형식상 조선에서 민의상달(民意上達)의 대표적인 제도 신문고, 형식상 조선에서 민의상달(民意上達)의 대표적인 제도 신문고(申聞鼓)는 1402년(태종 2년) 특수청원(特殊請願)·상소(上訴)를 위하여 대궐 밖 문루(門樓)에 달았던 북이다. 조선에서는 상소·고발의 제도는 법제화되어 있었으나 신문고는 그 최후의 항고(抗告) 시설로 임금의 직속인 의금부 당직청(當直廳)에서 주관, 북을 치는 자의 소리를 임금이 직접 듣고 처리하도록 하였다. 즉 억울함을 호소하려는 자는 서울에서 주장관(主掌官), 지방에서는 관찰사에게 신고하여 사헌부에 고소하고 여기서도 해결이 안 되는 경우에 신문고를 두드리게 하였는데, 이는 형식상 조선에서 민의상달(民意上達)의 대표적인 제도였다. 제도의 운영 그러나 신문고의 사용에는 제한이 있어서 이서(吏胥)·복예(僕隸)가 그의 상관을 고발하거나 품.. 더보기
효장세자, 진종, 숙종의 첫 손자 10세의 나이에 요절하다. 효장세자, 진종, 숙종의 첫 손자 10세의 나이에 요절하다. 진종(眞宗, 1719년 4월 4일 (음력 2월 15일) ~ 1728년 12월 16일 (음력 11월 16일))은 조선의 왕세자이자 추존왕, 대한제국 추존황제이다. 영조의 장자로 태어났으며 정빈 이씨 소생이다. 휘는 행(緈), 아명은 만복(萬福), 자는 성경(聖敬)이며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효장세자(孝章世子)로도 잘 알려져 있다. 양자 정조가 즉위하면서 진종온량예명철문효장대왕(眞宗溫良睿明哲文孝章大王)으로 추존되었다. 청나라에서 내린 시호는 각민왕(恪愍王)이며 대한제국 때 황제로 추존되어 진종소황제(眞宗昭皇帝)가 되었다. 1724년 경의군(敬義君)에 봉해지고 부왕 즉위 후 1725년 세자(世子)에 책봉되었으나 10세의 나이에 경복궁 자선당(資善堂.. 더보기
건릉 정조선황제와 효의선황후 김씨의 능 건릉 정조선황제와 효의선황후 김씨의 능 위치 : 경기 화성시 효행로 481번길 21 능의 형식 : 합장릉 능의 조성 : 1800년(순조 즉위), 1821년(순조 21) 능의 구성 건릉은 조선 22대 정조선황제와 효의선황후 김씨의 능이다. 건릉은 같은 봉분에 왕과 왕비를 같이 모신 합장릉의 형식이다. 진입 및 제향공간에는 홍살문, 판위, 향로와 어로, 수라간, 정자각, 비각이 배치되어 있다. 능침은 융릉과 비슷하지만 병풍석을 생략하고 난간석만 둘렀으며, 그 밖에 문무석인, 석마, 장명등, 혼유석, 망주석, 석양과 석호 등을 배치하였다. 능의 역사 1800년(정조 24)에 정조가 세상을 떠나자 아버지 장조의 현륭원(융릉) 동쪽 언덕에 능을 조성하였다. 그러나 순조가 왕위에 오른 후 건릉 불길론이 있었고, 1.. 더보기
숙빈 최씨, 영조의 생모, 희빈 장씨의 저주굿을 발고하다. 숙빈 최씨, 영조의 생모, 희빈 장씨의 저주굿을 발고하다. 숙빈 최씨(淑嬪 崔氏, 1670년 12월 17일(음력 11월 6일) ~ 1718년 4월 9일(음력 3월 9일))는 조선의 19대 왕 숙종(肅宗)의 총관후궁이자, 21대 왕 영조(英祖)의 생모이다. 본관은 해주(海州)이다. 생애 충무위 부사과를 지내고 후일 증 영의정으로 추증된 최효원(崔孝元)과 남양홍씨의의 딸로서 1670년 12월 17일에 태어났다. 1936년 장봉선 등이 편찬한 정읍군지에 의하면 숙빈 최씨는 정읍현 태인면에서 일찍이 부모를 잃고 고아로 자랐다 한다. 그때 인현왕후의 친정아버지 민유중이 영광군수로 임명되어 부임하는 길에 태인의 대각교에서 남루한 소녀를 발견하게 되었다. 민유중의 부인 송씨가 불쌍히 여겨 데려다 키웠고, 인현왕후가 .. 더보기
단경왕후, 7일의 왕비, 반정세력에 의해 폐위되다. 단경왕후, 7일의 왕비, 반정세력에 의해 폐위되다. 단경왕후 신씨(端敬王后 愼氏, 1487년~1557년 12월 27일(음력 12월 7일))는 조선 중종의 정비(正妃)이다. 시호는 공소순열단경왕후(恭昭順烈端敬王后)이다. 익창부원군 신도공 신수근(愼守勤)과 청원부부인 한씨(淸原府夫人 韓氏)의 딸로, 본관은 거창이다. 조선의 역대 왕비 중 제일 짧은 7일의 재위 기간을 보유하고 있으며, 역적의 딸로 연좌되어 폐출된 후 영조 때에 부모와 함께 복위되었다. 능은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일영리에 위치한 온릉이다. 1487년 2월 7일(음력 1월 14일)에 신수근(愼守勤)의 딸로 태어났다. 1499년(연산군 5년) 13살의 나이에 당시 진성대군에 봉해져 있던 중종과 결혼하여 부부인(府夫人)이 되었다. 1506년 중종반.. 더보기
화완옹주, 사도세자의 친동생, 영조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다. 화완옹주, 사도세자의 친동생, 영조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다. 화완옹주(和緩翁主, 1738년 3월 9일 (음력 1월 19일) ~ 1808년)는 조선 제 21대 임금 영조와 영빈 이씨의 딸이다. 사도세자의 친동생이자 조선 제 22대 임금 정조의 고모이기도 하다. 정후겸은 그녀의 양자이다. 1749년(영조 25) 7월 6일 소론의 거두 정휘량의 조카이자 이조 판서 정우량(鄭羽良)의 아들 정치달에게 하가하였다. 정치달과의 사이에서 딸을 낳았으나 일찍 죽었다. 남편을 일찍 여의자 시댁 일가의 아들인 정후겸을 데려다가 양자로 삼았다. 정조 즉위 후 양자 정후겸과 함께 이른바 "《명의록》의 의리"에 반한 죄인으로 취급되어 몰락하였다. 양자 정후겸은 사사당하고 그는 옹주의 호를 삭탈당해 '정치달의 처(정처)'라고 .. 더보기
사도세자의 어머니, 영빈 이씨 사도세자의 비행을 영조에게 고하다. 사도세자의 어머니, 영빈 이씨 사도세자의 비행을 영조에게 고하다. 영빈 이씨(暎嬪 李氏, 1696년 8월 15일(음력 7월 18일) ~ 1764년 8월 23일(음력 7월 26일))는 조선 제21대 임금 영조의 총관후궁이다. 본관은 전의(全義)로, 증찬성 이유번(李楡蕃)과 부인 한양김씨(김우종의 딸)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다. 보통 그의 처소를 선희궁(宣禧宮)이라 부른다. 사도세자의 어머니이자 정조의 친할머니이다. 영조와의 사이에서 1남 6녀를 두었다. 첫 시호는 의열(義烈)로 이후 의열궁(義烈宮)으로 불렸다가 다시 소유(昭裕)로 시호가 바뀌었다. 1701년에 궁녀로 입궁하였다. 1726년 11월 16일 영조의 승은을 입어 내명부 종2품 숙의(淑儀)에 책봉되었다. 1728년에 내명부 종1품 귀인(貴人)이 되.. 더보기
인원왕후, 숙종의 두 번째 계비, 영조의 방패막이 되어주다. 인원왕후, 숙종의 두 번째 계비, 영조의 방패막이 되어주다. 인원왕후 김씨(仁元王后, 1687년 11월 3일/음력 9월 29일 ~ 1757년 5월 13일/음력 3월 26일)은 조선 숙종의 두 번째 계비이다. 1687년 11월 3일(음력 9월 29일)에 태어났다. 인현왕후의 승하 이후 1702년(숙종 28) 10월 3일에 16세의 나이로 숙종의 두 번째 왕비로 책봉되었다. 경종 즉위한 이후에는 왕대비가 되었고, 영조 즉위 이후에는 대왕대비가 되었다. 소론의 딸이었지만 남편 숙종의 사후 노론으로 당색을 바꿨다. 초기에는 천연두, 홍역, 치통, 종기 등을 앓았다는 기록이 있다. 특히 숙빈 최씨 , 영빈 김씨와 가깝게 지냈으며 숙빈 최씨 소생인 연잉군을 지지해 왕세제 책봉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고 연잉군이 역모..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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