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여자 없는 남자들>,

여자를 떠나 보낸 상실한 남자들의 이야기

 

 

 

<여자 없는 남자들>은 여자들의 부재로 상실한 남자들을 모티프로

삼은 단편 소설집입니다.

대학 시절을 회상하는 구성의 「예스터데이」와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의 오마주 <사랑하는 잠자>를 제외하면

여섯 편 모두 중년 남성이 주인공입니다.

여자를 제외한 남자들의 이야기가 아닌 여자를 떠나보내거나,

이별한 남자들의 이야기입니다.

병으로 인해 사별하거나(「드라이브 마이 카」),

외도 사실을 알게 되어 이혼하고(「기노」),

본인의 뜻으로 일부러 깊은 관계를 피하는 경우도 있으며(「독립기관」),

혹은 이유도 모르는 채 타의로 외부와 단절되기도 합니다.(「셰에라자드」).

<여자 없는 남자들>은 보편적이고 현실적인 주제로 남녀의 관계,

인간의 관계를 깊이 있게 드러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자 없는 남자들>을 읽으며

베어내면 붉은 피를 흘릴 숨겨놓았던 감정들을

책 속 주인공들의 아프고 슬픈 감정들로 포개어 덮어봅니다.

 


 

책 속으로

 

나는 자주 똑같은 꿈을 꿔. 나와 아키가 배에 타고 있어. 기나긴 항해를 하는 커다란 배야.

우리는 단둘이 작은 선실에 있고, 밤늦은 시간이라 둥근 창 밖으로 보름달이 보여.

그런데 그 달은 투명하고 깨끗한 얼음으로 만들어졌어. 아래 절반은 바다에 잠겨 있고.

‘저건 달처럼 보이지만 실은 얼음으로 되어 있고, 두께는 한 이십 센티미터쯤이야.’

아키가 내게 알려줘. ‘그래서 아침이 와서 해가 뜨면 녹아버려.

이렇게 바라볼 수 있는 동안 잘 봐두는 게 좋아.’ _「예스터데이」, 96~97쪽

그녀의 마음이 움직이면 내 마음도 따라서 당겨집니다. 로프로 이어진 두 척의 보트처럼.

줄을 끊으려 해도 그걸 끊어낼 칼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어요.

이런 건 지금까지 한 번도 맛본 적 없는 감정입니다. 그게 나를 불안하게 만들어요.

이대로 점점 그리움이 깊어지면 나는 대체 어떻게 될까 하고. _「독립기관」, 145~146쪽

 

열일곱 살의 내가 그의 어떤 점에 그토록 깊이 빠졌었는지, 그것조차 잘 생각나지 않아.

인생이란 묘한 거야.

한때는 엄청나게 찬란하고 절대적으로 여겨지던 것이,

그걸 얻기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내버려도 좋다고까지 생각했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 혹은 바라보는 각도를 약간 달리하면 놀랄 만큼 빛이 바래 보이는 거야.

내 눈이 대체 뭘 보고 있었나 싶어서 어이가 없어져. _「셰에라자드」, 211~212쪽

 

아무리 텅 비었을지라도 그것은 아직까지는 나의 마음이다.

어렴풋하게나마 거기에는 사람들의 온기가 남아 있다.

몇 가지 개인적인 기억이 바닷가 말뚝에 엉킨 해초처럼 말없이 만조를 기다리고 있다.

몇 가지 감정은 베어내면 필시 붉은 피를 흘리리라.

아직은 그 마음을 영문 모를 곳으로 떠나보내 헤매게 할 수는 없다. _「기노」, 2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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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zorbanoverman.tistory.com BlogIcon 카이사르&키케로 2014.10.01 13:01 신고

    하루키의 단편을 이 책으로 처음 접했습니다.
    아직 하루키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지만 단편 속에서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이 대단하네요.
    특히 <독립기관>은 인상적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상사병으로 죽어가는 모습을 그려낸 것이 기억이 나네요.

    • Favicon of http://blognara11.tistory.com BlogIcon 아쫑 아쫑 2014.10.01 18:02 신고

      평범한 소재로 평범하지 않게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 같아요.
      저도 <독립기관> 인상적이었습니다.
      <셰에라자드>는 드러내지 않는 감정으로 알수없는 끌림이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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