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태종

심온, 세종대왕의 장인, 태종에 대한 불경죄를 이유로 사사되다. 심온, 세종대왕의 장인, 태종에 대한 불경죄를 이유로 사사되다. 심온(沈溫, 1375년 ~ 1419년 1월 18일 (1418년 음력 12월 23일))은 고려 시대 말기와 조선 시대 초기의 문신이자, 세종의 국구이다. 자는 중옥(仲玉), 시호는 안효(安孝)이고, 봉군호(封君號)는 청천부원군(靑川府院君), 본관은 청송(靑松), 청송 심씨(靑松 沈氏) 안효공파(安孝公派)의 파조(派祖)이다. 조선 왕실의 이중 인척으로 세종대왕의 장인이자, 세종대왕의 외삼촌 민무휼의 사돈이다. 또한 명종때의 형제 정승인 심연원, 심통원 및 명종비 인순왕후의 친정아버지 심강의 직계 조상이기도 하다. 성종과 연산군때의 정승 노사신은 그의 외손자였다. 가계 세종대왕의 국구(장인)이고, 소헌왕후의 아버지이며, 정소공주, 문종, 세조의 .. 더보기
성녕대군, 39세의 늦은 나이로 막내아들 성녕대군을 본 태종과 원경왕후의 각별한 총애를 받고 자라다. 성녕대군, 39세의 늦은 나이로 막내아들 성녕대군을 본 태종과 원경왕후의 각별한 총애를 받고 자라다. 성녕대군 이종(誠寧大君 李褈, 1405년 8월 3일(음력 7월 9일) ~ 1418년 3월 11일(음력 2월 4일))은 조선 태종 임금의 제4적자로 이름은 이종(李褈), 본관은 전주이다 생애 태종과 원경왕후의 넷째이자 막내아들(적자)로, 39세의 늦은 나이로 막내아들 성녕대군을 본 태종과 원경왕후의 각별한 총애를 받고 자랐다. 1411년 성녕군(誠寧君)에 책봉되었고 1414년 성녕대군(誠寧大君)으로 진봉되었다. 우애가 깊고, 학문에도 뜻이 있었으나, 1418년(태종 18) 음력 2월 4일에 홍역에 걸려 14살의 어린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부인은 성억의 딸이다. 후에 셋째형인 세종(충녕대군)이 즉위한후,.. 더보기
하륜, 이방원의 장자방,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변통과 권모술수도 불사하다. 하륜, 이방원의 장자방,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변통과 권모술수도 불사하다. 하륜(河崙, 1348년 1월 22일(1347년 음력 12월 22일) ~ 1416년 11월 24일(음력 11월 6일))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다.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대림(大臨) 또는 중림(仲臨), 호는 호정(浩亭)이다. 아버지는 부사 하윤린(河允麟)이며, 권문세족인 이인임의 조카 사위이다. 이인복, 이색의 문인이다. 고려 말 정몽주, 남은, 권근 등과 함께 신진사대부를 형성했고, 처음에는 역성혁명에 반대하다가 1392년 이성계의 조선 건국에 참여했다. 정도전과 함께 한양 천도를 적극 주장했고, 1393년 정도전이 쓴 표전문이 불손하다는 이유로 홍무제가 문책하자 직접 명나라에 가서 사태를 해결하였다. 1398년 충청도 .. 더보기
신덕왕후, 조선의 첫 왕비, 뛰어난 지략으로 조선 건국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다. 신덕왕후, 조선의 첫 왕비, 뛰어난 지략으로 조선 건국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다. 신덕왕후 강씨(神德王后 康氏, 1356년 7월 12일(음력 6월 14일) ~ 1396년 9월 15일(음력 8월 13일))는 조선 태조(太祖)의 계비이다. 별호는 현비(顯妃), 시호는 순원현경신덕왕후(順元顯敬神德王后)이다. 상산부원군 강윤성(象山府院君 康允成)과 진산부부인 강씨(晉山府夫人 姜氏)의 딸로 본관은 곡산(谷山)이다. 조선 태조의 정치적 조언자였으며, 그의 뛰어난 지략은 조선 건국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출생과 가계 신덕왕후는 황해도 곡산에서 고려 충혜왕 때 세도를 떨친 권문세가의 규수로 태어났다. 신덕왕후의 조상은 호경과 강충으로 이들은 고려 태조 왕건의 외가 쪽 선조였다. 강충의 셋째 아들 강보전의 후손으로 그.. 더보기
이방간, 회안대군, 정도전을 제거할 때 가담하여 정사공신 1등에 책록되다. 이방간, 회안대군, 정도전을 제거할 때 가담하여 정사공신 1등에 책록되다. 회안대군[懷安大君, 1364년 7월 2일 ~ 1421년 4월 10일(음력 3월 9일)]은 고려 말기의 문신이자 조선 초기의 왕자이다. 본관은 전주 이씨이며, 이름은 방간(芳幹), 시호(諡號)는 양희(良僖), 호(號)는 망우당(忘牛堂)이다. 이 력 조선 태조와 신의왕후(神懿王后) 안변 한씨(安邊韓氏) 사이의 넷째 아들로 함경도 함흥부 귀주동에서 태어났다. 첫째부인은 삼한국대부인(三韓國大夫人) 여흥 민씨(驪興 閔氏) 이고, 둘째부인은 삼한국대부인 밀양 황씨(密陽黃氏)이며, 셋째부인은 금릉부부인(金陵府夫人) 김포 금씨(金浦琴氏)이다. 고려 말 관직에 올라 군기시소윤(軍器寺少尹)을 역임했고, 1392년(고려 공양왕 4년) 7월 태조 이성.. 더보기
세종대왕, 훈민정음 창제, 과학을 발전시키고 유교 정치의 기틀을 마련하다.(3) 세종대왕, 훈민정음 창제, 과학을 발전시키고 유교 정치의 기틀을 마련하다. 가정의 불행 재위 초반에 장녀 정소공주가 요절하고, 재위 후반엔 광평대군과 평원대군이 잇따라 요절을 하게되어, 세종과 소헌왕후는 비탄에 빠졌고 곧 불교 사찰을 찾아다니며 이들의 명복을 비는 등 불사를 주관하기도 했다. 이어 소헌왕후 마저 승하하면서 그는 생애 후반 불교에 귀의하게 된다. 조선의 건국 이념은 유교 성리학이었기에 유학자들의 반발이 거셌으나 세종은 이에 개의치 않고 불사 중창과 법회에 참석하였으며, 먼저 죽은 가족들의 넋을 위로하기도 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몸이 약한 데다가, 학문에만 전념하는 모습을 보여 아버지 태종에게 걱정을 샀던 세종은 젊은 시절 무리하게 국정을 돌본 탓에 집권 후반에 들어서면서 건강이 몹시 악화되.. 더보기
정도전, 역성혁명으로 민본정치를 꿈꾸다.(4) 정도전, 역성혁명으로 민본정치를 꿈꾸다.(4) 세자 책봉 문제 세자를 누구로 임명하느냐는 문제에 관해서 당초의 의론은 "시절이 태평하면 적장자를 세우고, 난세에는 공이 많은 왕자를 세워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신덕왕후 강씨는 자신의 아들을 왕세자로 책봉하기를 간절히 소원하였고 태조 이성계 역시 방석을 총애하여서 배극렴을 비롯한 대소신료들은 태조의 의중에 따라 여덟째 아들 방석을 세자로 책봉하였다. 태조의 전처 한씨 소생 아들 중 다섯째 인 이방원은 정치적 야심이 가장 컸던 탓에 이 일로 격분하였다. 또한 다른 전처 한씨 소생의 왕자들도 자신들을 배제하고 후처인 강씨의 아들막내 방석이 왕세자가 된 것에 대해 모두 분개하였다. 이것이 훗날 제1차 왕자의 난의 원인이 되었다. 태조가 방석을 세.. 더보기
정종, 왕자의 난이 일어나자 상왕으로 물러나다. 정종, 왕자의 난이 일어나자 상왕으로 물러나다. 정종(定宗, 1357년 7월 18일 (음력 7월 1일) ~ 1419년 10월 15일 (음력 9월 26일), 재위: 1398년 ~ 1400년)은 고려 말기의 문신이자 조선의 제2대 임금이다. 성은 이(李), 초명은 방과(芳果), 휘는 경(曔),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광원(光遠)이다. 1398년부터 1400년까지 재위하는 동안 아우인 정안군(훗날 태종)이 왕세자 신분으로 대리청정을 하였다. 선양한 뒤에는 아우 태종이 인문공예 상왕(仁文恭睿 上王)으로 존호(尊號)를 올렸고, 사후 조선 중후기까지 시호인 공정대왕(恭靖大王)으로 불리다가 숙종 때 정식으로 묘호와 시호를 올려 정종공정의문장무온인순효대왕(定宗恭靖懿文莊武溫仁順孝大王)이다. 생애 정종은 공민왕 6년(.. 더보기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