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 명릉, 신통한 지관 갈처가가 택한 입지이다.

 

능의 구성

명릉은 19대 숙종과 그의 첫 번째 계비인 인현왕후, 두 번째 계비인 인원왕후 세 사람을 모신 능이다. 숙종과 인현왕후의 능이 쌍릉으로 나란히 조영되고, 인원왕후의 능은 다른편 언덕에 단릉 형식으로 모셔져 동원이강의 배치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보통 우상좌하의 원칙에 따라 동원이강릉의 오른쪽 언덕을 왕이 차지하는 일반적인 왕릉과 달리 명릉에서 가장 낮은 서열의 인원왕후의 능이 가장 높은 자리인 오른쪽 언덕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명릉은 숙종의 명에 의해 능역에 드는 인력과 경비를 절감하여 부장품을 줄이고 석물 치수도 실물 크기에 가깝게 하는 등 간소한 제도로 조영하였는데, 이는 조선 능제의 분수령을 이루게 되었다. 8각 장명등도 4각으로 바뀌었으며, 능침에는 병풍석을 두르지 않았다.

 

능의 역사

숙종의 계비였던 인현왕후가 1701년(숙종 27) 승하하자 숙종은 능호를 명릉이라 하여 현재의 위치에 능을 조영하였다. 조영 당시 능의 오른쪽을 비워두라는 우허제(右虛制)를 전교하였다. 1720년(숙종 46) 60세의 나이로 승하한 숙종은 생전에 바라던 대로 인현왕후의 오른쪽 빈자리에 잠들게 되었다. 한편 인현왕후 승하 후 두 번째 계비로 들어왔던 인원왕후는 사후 부군인 숙종의 곁에 묻히기를 소원하여 인현왕후와 숙종이 잠든 명릉에서 약 400보 떨어진 언덕에 자신의 능지를 미리 잡아두었다. 그러나 인원왕후가 1757년(영조 33) 71세로 승하하였을 때, 영조는 미리 정해둔 자리를 두고 지금의 자리에 그녀를 모셨다. 인원왕후가 정해둔 자리에 능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넓은 소나무 숲을 벌채하는 등 막대한 인력과 국고가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연으로 인원왕후는 생전에 소원했던 것보다 숙종과 더 가까운 곳에 묻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숙종의 능보다 높은 자리인 오른쪽 언덕에 잠들게 되었다.

 

생애 이야기

숙종은 1661년 8월 15일 경덕궁 회상전에서 현종과 명성왕후의 원자로 태어났다. 1667년(현종 8) 세자로 책봉되었고, 현종이 승하한 1674년(현종 15)에 즉위하였다. 재위 기간은 46년이었다. 숙종 시대에는 당파 간의 정쟁이 극에 달하여, 붕당정치가 파경을 맞을 위기에 처했다. 숙종 즉위 당시 정권을 장악하고 있던 남인은 1680년(숙종 6) 경신환국을 통해 대거 실각하였고, 남인을 물리치고 실세를 얻은 서인은 다시 노론과 소론으로 나뉘어 대립하였다. 이 때 숙종과 중전인 인현왕후 사이에는 아들이 없었는데, 숙종의 총애를 받던 소의 장씨가 아들을 낳았다. 남인은 이를 기회로 삼고자 소의 장씨의 아들을 원자로 추대하였고, 이에 반대하는 노론의 무리들을 처결, 다시 정권을 잡게 되었으니 이것이 기사환국이다. 숙종은 이러한 소용돌이 속에서 대동법을 전국에 확대 실시하여 백성들의 부담을 덜고, 상평통보를 주조하였으며, 군사제도를 정비하는 등의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1720년(숙종 46) 6월 8일 경덕궁의 융복전에서 60세의 나이로 승하하였다.

 

일화

사료가 밝히는 사실과는 거리가 있지만, 숙종과 인원왕후의 능이 이곳으로 정해진 연유와 관련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숙종이 하루는 평상복을 입고 민심을 살피기 위해 궐을 벗어나 어느 냇가를 지나가고 있었다. 그 때 냇가에서 한 젊은이가 울고 있는 것이 보여 연유를 물으니, 갈처사라는 유명한 지관이 이곳에 무덤을 쓰면 좋다고 해서 땅을 파는데, 아무리 파도 물이 고이니 어쩔 줄을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숙종은 그 지관이 장난을 쳤다고 여기고, 젊은이를 불쌍히 여겨 관청에 가서 쌀 300석을 받아올 수 있도록 적은 서신을 쥐어주었다. 그리고는 지관이 살고 있는 허름한 오두막집을 찾아가 청년의 일을 따져 물었다. 그러자 지관은 “모르면 잠자코 계시오. 저 땅은 무덤자리로 들어가기도 전에 쌀 300석을 받고 명당자리로

들어가는 자리라오!”라며 따져 묻는 숙종에게 오히려 핀잔을 주었다. 그의 신통함에 놀라 자신이 국왕인 것을 밝히고, 훗날 숙종이 묻힐 묘자리를 골라달라고 부탁하였다. 전해지는 일화에 따르면, 지금의 명릉 자리가 바로 신통한 지관 갈처사가 택한 입지라고 한다.

 

출처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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