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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근, 연산군의 처남, 중종의 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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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근, 연산군의 처남, 중종의 장인

 

신수근(愼守勤, 1450년 ~ 1506년)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외척이다. 신승선중모현주의 아들로, 세종의 4남 임영대군의 외손이자 연산군의 처남이며, 중종의 장인이다. 따라서 왕실과는 이중 인척관계를 형성하였으며, 그 외에도 그의 부인은 권람의 여섯째 딸로 남이의 처제가 된다. 1506년 중종반정 때 도의상 반정에 참여하기를 거절했다가 살해되었다. 본관은 거창(居昌), 자는 근중(勤仲), 호는 소한당(所閒堂)이며, 시호는 신도(信度)이다.

신승선의 아들로 어머니 중모현주임영대군의 딸이자 세종대왕의 손녀딸이었다. 성종음서를 통해 장령이 되어 조정에 입문하였고, 누이동생이 연산군의 비가 된 뒤로 우승지, 도승지, 이조 판서, 우찬성, 우의정, 좌의정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또한 진성대군(중종)이 그의 사위가 되었다. 박원종, 성희안 등은 그에게 꾸준히 사람을 보내 연산군을 폐위시키고 진성대군을 추대할 것을 권고했으나 신수근은 자신의 사위를 위해 누이를 배신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 1506년 음력 9월 2일 성희안, 박원종 등이 일으킨 중종반정 때 박원종 일파가 보낸 이심, 신윤무 등에게 수각교에서 격살(擊殺)되었다.1739년(영조 15년) 음력 3월 28일에야 김태남 등의 건의로 익창부원군으로 추증되었다.

중종실록》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신수근은 폐비 신씨(愼氏)의 오빠로 연산군의 총애를 얻어 세력과 지위가 극히 융성하니, 권세가 한때를 휩쓸었다. 오랫동안 이조(吏曹)를 맡아 거리낌없이 방자하였으며, 뇌물이 폭주(輻湊)하여 문정(門庭)이 저자와 같았고, 조그만 원수도 남기지 않고 꼭 갚았다. 주인을 배반한 노비(奴婢)들이 다투어 와서 그에게 투탁(投托)하였으며, 호사(豪奢)를 한없이 부려 참람됨이 궁금(宮禁)에 비길 만했다. 그러나 <영조실록>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임금이 ‘고금 동충(古今同忠)’이라는 4자를 써서 내려 주고 이르기를, "신수근(愼守勤) 은 포은(圃隱)과 함께 충의(忠義)가 같다."하고, 호조에 명하여 사우(祠宇)를 만들어 주고 그 곁에 각(閣)을 세워서 이것을 새기어 걸게 하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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