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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원인과 문제점, 각국의 합계 출산률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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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원인과 문제점, 각국의 합계 출산률 비교

 

저출산(低出産)은 출생률이 저하되는 현상을 말한다. 일본중국에서는 소자화(少子化)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초창기에는 남성의 경제력 부족, 경제적인 문제만으로 인식되었으나 점차 개인주의, 가치관의 다원화, 성격문제, 인간관계 스트레스 등 다양한 원인이 존재하는 것이 확인되었다. 특정 종교와 사상에 입각한 결혼 강요, 가부장제가 사라지면서 수면위로 등장하게 되었다.

 

대한민국의 저출산 현황

1955년부터 1963년까지 대한민국(남한)의 여성 1인당 합계출산율은 6.1명이었다. 이승만 및 윤보선 정부에서는 출산을 장려했지만 5·16 군사 정변 이후 박정희에 의해 1960년대 초반부터 지속적인 가족계획이 실시되면서 1964년부터 1967년까지는 5.2명, 1968년부터 1971년까지는 4.7명이었으나 1970년대 초반부터 가족계획을 매우 강화시켜서1984년에는 2명 미만인 1.74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다음해인 1985년 1.66명 수준으로 약간 떨어졌고 그 이후에도 계속된 정책으로 마침내 1987년 출산율이 1.53명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후 1996년 8월 김영삼 정부가 출산정책을 산아제한정책에서 산아자율정책으로 전환했으나 출산율은 빠른 속도로 엄청나게 하락하였다. 대한민국의 IMF 구제금융 요청에 따른 여파로 출산율은 계속 떨어졌다. 김대중 정부에서 2000년에 즈문둥이 출산을 장려하여 일시적으로 출생아 수가 증가했지만 2001년에는 1.30명의 초저출산사회로 접어들었다. 이에 따라 기존의 산아자율정책에서 더욱 앞서나가 출산장려정책을 펴기 시작했지만 2005년에는 역대 최저치인 1.08명으로 떨어졌다. 이후 황금돼지해 홍보 등 정부의 많은 노력에 힘입어 2007년 1.26명으로 급증했지만 곧 경제 위기 등으로 인해 2009년 1.15명으로 감소했다. 2010년부터는 다시 증가하기 시작하여 2012년 1.3명으로 초저출산 국가에서 탈출하려는 기미를 보였으나 그 후 이어진 불경기 등의 여파로 출산율은 감소하여 2013년 1.18명, 2014년 1.21명에 이르렀다. 이러한 출산율 변화는 아래 인용문에서 잘 드러난다.

 

1950년대: 3남 2녀로 5명은 낳아야죠.
1960년대: 3·3·35운동 - 3자녀를 3년 터울로 35세 이전에 단산하자.
1970년대: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1980년대: 잘 기른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1990년대: 아들 바람 부모 세대 짝꿍 없는 우리 세대
2000년대: 아빠, 혼자는 싫어요. 엄마, 저도 동생을 갖고 싶어요.
2010년대: 하나는 외롭습니다. 자녀에게 가장 좋은 선물은 동생입니다.           --- 보건복지가족부, 인구보건복지협회(구 대한가족계획협회)발췌

 

저출산의 원인

경제 사정의 악화와 고용률 감소

독신으로 생활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과 환경 증가(1인가구 증가, 인스턴트 식품 생산, 세탁소, 빨래방, 의류가게 등 각종 서비스업의 확산 등)

사교육비 등 육아 양육비 부담 증가

여권신장과 더불어 여성의 사회진출 증가와 직장인 여성의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의 부족

여권 신장에 반해, 남성들에게는 기독교, 유교 등 기존 사회에서 요구하는 남성상이 계속 강요됨

학력과 경제력으로 인한 결혼 포기(집값 상승, 땅값 상승도 이 원인에 포함됨)

결혼과 육아를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보는 시각의 확산

성격 문제와 인간관계 스트레스

대인관계에 미숙한 사람의 증가

독신을 선호하는 사람 수 증가

만혼(晩婚)으로 인해 여성이 평생 낳는 아기 수의 감소

자녀 양육에 대한 가치관 변화

신체적, 체력적 결함을 지닌 사람의 증가(산업혁명 이전, 개발도상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의료시설의 부족으로 영유아 사망률이 증가)

 

각국의 합계 출산률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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