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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제 2차 세계대전 후의 연합군 최고사령부에 의한 독도 처분의 해석은 어떠한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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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제 2차 세계대전 후의 연합군 최고사령부에 의한 독도 처분의 해석은 어떠한가?

국제법상, 일시적인 점령은 주권의 이전을 의미하지 않으며, 점령 등에 의해 주권이 현저히 훼손되었다고 해도, 원래 보유국의 동의가 없다면 주권의 이전은 발생하지 않는다. 이렇기 때문에, 전후의 처치에 관련해 연합국이 독도의 방폐를 요구했다는 것뿐만이 아니라, 일본이 독도의 주권을 방폐하는 동의가 있었는가가 중요하다. GHQ에서 나온「연합국군최고사령관총사령부각서(連合国軍最高司令官総司令部覚書)」677호 SCAPIN677(Supreme Command for Allied Powers Instruction Note No.677)「약간의 외부지역을 정치상 행정상으로 일본으로부터 분리하는 것에 대한 각서」라는 문서에서, 일본의 영토는 홋카이도, 혼슈, 큐슈, 시코쿠 및 인접하는 섬들로 하고, 울릉도나 제주도 등을 제외하기로 했다. 그 제외된 섬의 리스트에 그들이 리앙쿠르 락이라고 불렀던 독도가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연합국군최고사령관총사령부각서」1033호 SCAPIN1033「일본의 어업 및 포경업에 인가된 구역에 대한 각서」에 의해 결정된 일본어선의 활동가능영역(이것을 “맥아더 라인”이라고 한다)에서도 독도는 제외되어 있다. 대한민국은 이를 근거로, 당시 대한민국의 이승만 대통령이 평화선을 제정하여 일본어선을 배제하는 선을 긋고, 라인 안으로 들어가는 일본 어선에 대하여 나포, 총격을 실시하였다. SCAPIN677및 SCAPIN1033에 의해 행해진 처치의 해석, 즉 그것이 영유권을 확정시킨 것인지 아닌지가 쟁점이 되고 있다. 또, 일본과의 평화 조약(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의 제2조(a) 항의 해석을 둘러싸도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1947년 3월 19일의 대일강화조약의 초안에서는 "일본이 포기하는 영토"에 독도가 명기되고 있었다. 그러나, 1949년 12월 29일의 대일강화조약의 초안에서는 "일본이 보유하는 영토"에 독도가 명기되고 있어서, "포기하는 영토"에 독도는 기재되지 않았다. 1951년 6월 14일의 초안에도 "포기하는 영토"에 독도는 기재되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동북아역사재단의 주장과 일본 외무성의 주장 

2008년 2월, 일본 외무성은 〈다케시마 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10의 포인트〉라는 제목의 문서를 인터넷에 게시하였으며, 대한민국의 동북아역사재단은 이에 대하여 〈일본 외무성의 독도 홍보 팜플렛에 대한 반박문〉이라는 글을 게시하였다. 양측의 주장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육안관측 불가론

《세종실록》〈지리지〉의 '二島相去不遠 風日淸明則可望見'(두 섬이 서로 거리가 멀지 아니하여, 날씨가 맑으면 가히 바라볼 수 있다)이라는 부분과 관련, 여기서 두 섬은 울릉도와 독도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논거의 하나로 1966년가와카미 겐조의 계산값을 토대로 "독도 육안관측 불가론"이 주장되었다. 이에 대해 국제법학자인 이한기 전 서울대교수는 이 주장이 오류라고 주장했고, 2008년 7월에는 국제한국연구원이 울릉도에서 독도를 육안관측과 동일한 조건으로 촬영한 사진을 공개하였다. 이에 대해 국제법학자인 이한기 전 서울대교수는 이 주장이 오류라고 주장했고,  2008년 7월에는 국제한국연구원이 울릉도에서 독도를 육안관측과 동일한 조건으로 촬영한 사진을 공개하였다.


 "가와카미의 계산은 키 1.5m인 사람이 수평면에 서서 관찰하는 것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독도의 해발고도가 174m이고 울릉도와 독도의 거리가 47.4 해리이므로, 이 값을 이용할 경우 키가 1.7m 이상인 사람이 울릉도의 해발고도 100m 이상의 높이에서 독도를 쳐다 본다면 얼마든지 볼 수 있다."     - 이한기 교수

 

총리 부령 24호와 대장성령 4호 

2009년 1월 2일,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대한민국 국무총리의 감독을 받는 정부 출연 연구기관인 한국수산해양개발원은 1951년 6월 6일 공포된 일본의 '총리 부령(府令) 24호'와 1951년 2월 13일 공포된 '대장성령(大藏省令) 4호' 등 두 개의 일본 법령을 찾아냈다고 2일 밝혔다. 이 두 개의 영(令)은 모두 일본의 독도에의 자국 주권을 부인하는 내용이다. '총리 부령 24호' 는 일본이 옛 조선총독부의 소유 재산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과거 식민지였던 섬'과 '현재 일본의 섬'을 구분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 부령의 제2조는 '정령(政令) 291호2조1항2호의 규정을 준용하는 경우에는 아래 열거한 도서 이의 도서를 말한다'고 쓴 뒤 제외하는 섬에서 '울릉도, 독도 및 제주도'를 명기했다.

여기서 언급된 '정령 291호'는 1949년 일본 내각이 제정한 것으로 '구일본 점령지역에 본점을 둔 회사가 소유한 일본 안에 있재산 정리에 관한 정령'이다. 용어의 정의(定義)를 다룬 2조의 1항2호에는 '본방(本邦·일본 땅)은 혼슈(本州), 홋카이도(北海道), 시코쿠(四國), 규슈(九州)주무성령(主務省令)이 정한 부속 도서를 말한다'고 했다. '총리 부령 24호'보다 앞서 공포된 '대장성령 4호'는 '공제조합 등에서 연금을 받는 자를 위한 특별조치법 4조 3항 규정에 기초부속 도서는 아래 열거한 도서 이외의 섬을 말한다'며 '울릉도, 독도 및 제주도'를 부속 도서에서 제외되는 섬들로 명기했다.


"연금을 지급해야 하는 자는 호적법 규정의 적용을 받는 자로서 본방(혼슈, 시코쿠, 규슈와 홋카이도 및 재무성령로 정한 부속 도서, 이오토리섬과 이헤야섬 및 북위 27도 14초 이남의 난세이 제도를 포함한다.) 안에 주소나 거주지가 있는 자에 한한다."         

                                                                                                                                                            - 1950년, 특별조치법 4조 3항


2008년 7월, 한일회담 관련 정보 공개 청구 소송에서 승소한 최봉태는 6만 쪽에 달하는 한일회담 관련 일본 측 문서를 건네받았다. 그런데 문서에 검은 줄로 삭제된 부분이 있었고,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과정에서 '총리 부령'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이 사실을 찾아낸 한국수산해양개발원은 2008년 12월 31일,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일본 외무성은 이 법령이 미국의 일본 점령 당시 일본 정부의 행정권이 미치는 범위가 표시된 것일 뿐, 일본의 영토 범위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며 반박했다. 또한 현재 일본의 영토인 오가사와라 제도, 다이토 제도, 미나미토리 섬, 오키노토리 섬도 총리 부령 24호에서는 일본의 부속섬이 아니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 외무성의 반박이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대한민국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는 주장이 있다.

 

대장성령 37호와 43호 

2009년 1월 11일, 법적으로 유효한 일본의 현행 법령 두 건에 독도를 일본 영토에서 제외하는 규정(대장성령 37호, 43호)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대한민국은 '총리부령 24호'와 '대장성령 4호'에 대한 일본 외무성의 반박은 '대장성령 37호'와 '대장성령 43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주장한다.

 

행정권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구 일본 점령지역'과 '본방(본래의 일본 영토)' 등의 범주를 구분하여 영토를 정의하고 있다.미군정이 끝난 후에 공포되었고, 지금도 현행 법령으로서 유효하다. 미군정 이후의 개정 과정에서도 독도를 영토에서 배제하는 규정이 유지되었다.

 

대장성 고시654호 

1946년 8월 15일, 대장성은 전후 일본 기업의 채무 해결을 위해 '회사경리응급조치법' 시행령을 제정하여 일본이 점령했던 영토 중 외국으로 분류한 지역을 규정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고시에 따르면 조선과 대만, 사할린 섬, 쿠릴 열도, 남양 군도는 외국으로 분류됐고, 독도도 별개항목으로 외국으로 규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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