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 장경판전의 가치


 

 

 

 

 

장경판전은 세계유일의 대장경판 보관용 건물입니다.

장경판전은 조선 초기의 전통적인 목조 건축양식을 보이는데 건물자체의 아름다움은 물론

건물 내 적당한 환기와 온도. 습도 조절등 보관을 위한 기능을 자연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해인사에 위치한 대규모의 대장경판 보존의 보고 - 장경판전

해인사 장경판전은 13세기에 만들어진 세계적 문화유산인 고려대장경판 8만여 장을 보존하는

보고로서 해인사의 현존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입니다.

장경판전은 정면 15칸이나 되는 큰 규모의 두 건물을 남북으로 나란히 배치하였습니다.

장경판전 남쪽의 건물을 수다라장, 북쪽의 건물을 법보전이라 하며 동쪽과 서쪽에 작은 규모의

동,서사간판전이 있습니다.

장경판전은 세계 유일의 대장경판 보관용 건물이며 해인사의 건축기법은  조선초기의 전통적인

목조건축 양식을 보이는데 건물 자체의 아름다움은 물론 건물 내 적당한 환기와 온도, 습도 조절

등의 기능을 자연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훼손이 전혀없는 완벽한 보관상태

고려대장경판은 나무로 만들어져 화재와 습기와 벌레에 약하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50년이 넘게 훼손되거나 단 한 장 뒤틀린 것도 없이 양호한 상태로 완벽하게

보존되고 있습니다.

 

고려의 국가적 기본 이념인 불교와 대장경 제작

고려를 창건한 바탕이 되는 이념은 불교입니다.

고려를 세운 태조 왕건이 남긴 훈요십조(訓要十條)의 첫 번째 항목에 ‘대업은 반드시

부처의 힘을 입어야 하므로...’로 시작하는 것을 보아도 고려가 불교의 이념 하에 세운

나라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려 역사에서 가장 큰 국난은 몽골의 침입이었습니다. 몽골의 침입으로 백성들은 불안에

떨었으며 고려 조정은 백성들의 불안함을 달래고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 대장경 불사를

기획했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불경의 내용을 집대성해야 하는 대장경 제작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당대의 지식과 기술이 총동원되어야 하는 막대한 비용이 드는

거국적인 프로젝트였습니다.

 

 

 

 

해인사 장경판전의 역사


 

 

 

 

 

일곱차례의 화재 속에서도 화마를 피해 신비감을 더해주는 장경판전

→ 장경판전의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려지지 않아

    세조, 성종, 광해군을 거치며 중건되어 지금의 규모가 완성되었습니다.

 

장경판전의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조선 세조 3년(1457) 어명으로

판전 40여 칸을 중 창하였고 성종 19년(1488) 학조대사가 왕실의 후원으로 30칸의 대장경

경각을 중건한 뒤 보안당이라 했다는 기록이 전해집니다.

광해군 14년(1622)에 수다라장, 인조 2년(1624)에는 법보전을 중수하였습니다.

경상남도 합천 가야산 중턱의 해인사에 위치한 장경판전은 1488년 이후 한 번도 화재나 전란

등의 피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임진왜란 후 숙종 21년(1695)부터 고종 8년(1871)에 이르기까지

해인사는 무려 일곱 차례나 화재를 당하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장경판전만은 화마를 모두

피하고 홀로 온전히 남아있습니다.

해인사의 화재에도 영향을 받지 않은 장경판전은 종교적 신비감을 느끼게 해줍니다.

 

대장경의 판각과 보관의 역사 - 강화도에 보관하다가 해인사 장경판전에 옮겨 보관

 

대장경판은 고려 고종 때 대장도감에서 대장경을 새겨놓은 목판을 말합니다.

대장경은 경(經)·율(律)·논(論)의 삼장(三藏)으로서 불교경전의 총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해인사 대장경판은 고려시대에 판각되었기 때문에 고려대장경이라 하며

또한 판수가 8만여 판에 이르고 8만4천 법문을 수록했다 하여 8만대장경이라고도 부릅니다.

이 팔만대장경판은 초조대장경이 불타버린 뒤 고려 고종 19년(1232)에 몽고의 침입을

불력으로 막기 위하여 강화도로 수도를 옮기고 국가적인 차원에서 대장도감을 설치하여

다시 제작한 것으로 재조대장경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대장경판은 당초 경상남도 남해에서

판각하여 강화도 대장경판당으로 옮기고 보관하였으나 고려 말 왜구의 빈번한 침범으로

조선 태조 때인 1398년 현재의 해인사 장경판전에 옮겨 보관 중입니다.

 

삼보사찰 가운데 하나인 법보 사찰을 국내 주요 사찰 중 하나인 해인사

 

해인사는 신라 제40대 애장왕 2년(802)때 창건된 이래 지금까지 한국 불교계의

주요 사찰 가운데 하나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특히 해인사는 ‘삼보사찰 가운데 하나인

법보 사찰’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부처님, 부처의 가르침,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승려를 세 가지 요체로 여겨 삼보라고 부르는데, 이 가운데 부처님의 가르침인

<고려대장경>을 봉안하고 있으므로, 해인사를 ‘법보사찰’이라 부릅니다.

 

 

 

                             해인사 장판경의 특징


 

 

 

 

지혜로운 건축 설계로 대장경판을 조금의 훼손도 없이 잘 보존하고 있습니다.

 

자연조건을 이용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설계

 

대장경을 조금의 훼손도 없이 잘 보관할 수 있었던 장경판전의 비결은 자연지형을

탁월하게 이용한 점에 있습니다. 해인사 경내에서 가장 높은 곳, 해발 1430미터인 가야산

중턱 655미터 고도에 서남향으로 앉아 있는 장경판전은 햇살을 충분히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여름에는 12시간, 봄과 가을에는 9시간, 겨울에도 7시간이나 햇빛을 받을 수 있으니 나무가

눅눅해지거나 썩는 일이 없고, 이끼나 곰팡이 곤충의 번식도 막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서남향으로 자리함으로써 햇빛이 건물 내부를 골고루 비치니 건물 내부에 습기가

차는 것을 방지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이렇게 자연조건을 완벽하게 활용했다는 점에서

조선시대 우리 조상의 지혜를 느낄 수 있습니다.

 

통풍과 환기를 극대화한 나무 창

 

장경판전은 대장경판을 보관하고 있는 판전 4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북쪽에 있는 판전은

상전인 법보전이고 남쪽에 있는 판전은 하전인 수다라장이며, 두 건물 양 끝 사이에 있는

작은 두 채의 건물은 각각 동사간전, 서사간전이라 하여, 전체가 긴 네모꼴 평면을 이루고

있습니다. 수다라장과 법보전은 50미터가 넘는 긴 건물로 앞면 15칸, 옆면 2칸으로 된

우진각지붕 집이입니다. 수직 창살로 만든 나무 창 말고는 아무런 장식도 더하지 않았습니다.

이 나무창은 장경판전의 건축적 비결을 푸는 두 번째 핵심 장치입니다. 창은 각 칸마다 아래위로

크기를 달리하였는데, 이는 햇빛의 조건은 물론이요, 공기의 순환을 원활하게 하여 통풍과

환기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합니다.

 

대장경의 의미 - 불력으로 몽고의 침입을 물리치자!

 

이규보가 지은 <대장각판군신기고문>을 보면 현종 2년(1011)에 거란 병의 침입 때 대장경을

새겨 거란 병이 물러갔음을 기억하며, 몽고의 침입으로 이 대장경판이 불타버려 다시 새기니

몽고의 침입을 불력으로 물리치게 하여 달라는 염원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대장경판은

고종24년(1237)부터 35년(1248)까지 12년 동안 판각하였는데 준비 기간을 합치면 모두

16년이란 기간이 걸려 완성 되었습니다.

 

 

 

해인사 장경판전 둘러보기


 

 

     

 

                                                                                  출처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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