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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훤

경명왕, 경주를 중심으로 그 주변 지역을 다스리는 데 불과하다 경명왕, 경주를 중심으로 그 주변 지역을 다스리는 데 불과하다. 경명왕(景明王, ? ~ 924년, 재위: 917년 ~ 924년)은 신라의 제54대 왕이다. 성은 박(朴)씨, 이름은 승영(昇英)이다. 신덕왕(神德王)과 의성왕후(義成王后)의 첫째아들이며 경애왕(景哀王)의 형이다. 왕비는 신라 금입택(금을 입힌 집) 중 하나인 장사택(長沙宅)을 소유한 가문인 각간(角干) 김대존(大尊)의 딸이다. 생애 경명왕 때에는 신라의 국운이 기울어가고 있었다. 실제 신라왕실은 왕경(王京)인 경주를 중심으로 한 그 주변 지역을 다스리는 데 불과하였고, 나머지는 궁예(弓裔)와 견훤(甄萱) 등 지방세력에게 빼앗겼다. 특히, 918년(경명왕 2)에 일어난 현승(玄昇)의 반란으로 신라는 그 운명을 더욱 재촉하게 되었다. 같은해 궁.. 더보기
정강왕 김요의 난을 평정하다. 효공왕 견훤과 궁예에게 영토를 를 빼앗겨 멸망의 길을 가게 되다. 정강왕 김요의 난을 평정하다. 효공왕 견훤과 궁예에게 영토를 를 빼앗겨 멸망의 길을 가게 되다. 정강왕 신라 정강왕(新羅 定康王, ? ~ 887년, 재위: 886년 ~ 887년)은 신라의 제50대 왕이다. 성은 김(金)씨이고 이름은 황(晃)이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아버지는 경문왕이고, 어머니는 문의왕후(文懿王后)이다. 생애 김황의 형 헌강왕이 재위 12년째인 886년 7월 5일에 사망한 후 헌강왕의 태자 김요(金嶢)가 아직 돌이 안된 어린 나이였으므로, 김황이 신라 제50대 왕에 즉위하였다. 887년 1월에 황룡사에서 백고좌를 마련해 왕 스스로도 행차하고 강의를 들었다. 같은 달, 한주(漢州)의 이찬 김요(金蕘)가 반란을 일으키자 파병하여 김요를 죽였다. 김요의 난을 평정한 후, 5월에 병을 얻어.. 더보기
경애왕, 견훤의 신라 침공 때 포석정에서 암살되다. 경애왕, 견훤의 신라 침공 때 포석정에서 암살되다. 경애왕(景哀王, ? ~ 927년, 재위: 924년 ~ 927년)은 신라의 제55대 왕이다. 성은 박(朴)씨, 이름은 위응(魏膺)이며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신덕왕(神德王)의 둘째 아들이며 경명왕(景明王)의 아우이다. 927년 후백제 군주 견훤의 신라 침공 때 포석정에서 암살되었다. 그의 아들 계림대군 박순현(鷄林大君 朴舜玄)은 경주 박씨의 정식 시조가 되었다. 생애 경애왕은 신덕왕의 아들이며 경명왕의 동생이다. 경명왕이 죽은 뒤, 경명왕의 아들들이 나이가 어렸기에 대신 왕위를 이어받아 924년에 즉위했다. 경애왕이 왕이 될 무렵, 신라는 재정적으로 몹시 가난한 상태였으며, 고려, 후백제의 압박으로 영토는 계속 줄어들었다. 경애왕은 고려와 동맹을 맺어 .. 더보기
최승로, 시무28조는 고려 국정운영의 중요한 기조가 되다. 최승로, 시무28조는 고려 국정운영의 중요한 기조가 되다. 최승로(崔承老, 927년 ~ 989년)는 고려 초의 유학자, 문신이다. 본관은 경주(慶州),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아버지는 신라 6두품 출신 최은함(崔殷含)이다. 성종(成宗)에게 시무 28조를 바친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바친 시무 28조는 대부분 수용되어 고려의 정치제도와 지방통치 등 국정 운영의 중요한 기조가 되었다. 생애 최승로는 신라 조정의 관인 최은함(崔殷含)의 아들로 태어났다. 태조 18년(935년)에 경순왕이 고려에 투항할 때 최은함은 아들과 함께 귀순하였다. 《고려사》에는 최은함의 벼슬을 원보(元甫),《삼국유사》에는 정보(正甫)로 적고 있다. 《고려사》 최승로열전에는 "오랫동안 자식이 없어 기도하여 승로를 낳았다(久無嗣禱而生承老.. 더보기
공산전투, 왕건 후백제군에게 포위당해 일생일대의 위기에 처하다. 공산전투, 왕건 후백제군에게 포위당해 일생일대의 위기에 처하다. 공산 동수 전투(公山棟藪戰鬪)는 후삼국 시대인 927년 신라 공산(公山, 현 팔공산) 동수(棟藪, 현 지묘동)에서 고려의 왕건과 후백제의 견훤이 치른 전투로 견훤이 왕건군을 기습 공격해 대승을 거두었고 이곳에서 신숭겸 등 8명의 장수가 전사해 지명이 공산에서 팔공산으로 바뀌었다는 설화도 있고 반야월 등 대구의 대표 지명들이 이 전투에서 생겼다. 배경 후삼국 시대 당시 고려와 후백제는 처음에는 별다른 충돌 없이 평화롭게 지냈으나 926년 9월에 후백제 왕 견훤이 고려 근품성을 공격하면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후로 고려와 후백제는 수차례에 걸쳐 충돌하였다. 이 과정에서 신라는 대체로 고려를 지지하였는데, 이는 견훤이 신라의 무관 출신임에도 불구.. 더보기
마의태자,금부대왕, 어떻게 천 년의 사직(社稷)을 하루아침에 가볍게 남에게 줄 수 있단 말입니까? 마의태자,금부대왕 어떻게 천 년의 사직(社稷)을 하루아침에 가볍게 남에게 줄 수 있단 말입니까? 마의태자(麻衣太子, 912년~?)는 신라 마지막(제56대) 왕 경순왕의 왕자이다. 성은 김(金)씨, 휘는 일(鎰 또는 溢)이라 전하며, 일명 금부대왕 또는 김부대왕(金傅大王)으로도 불린다. 신라왕후의 적자임과 동시에 화랑 효종랑의 손자이다. 5남인 김분과 함께 고려에 귀순하려는 아버지 경순왕을 만류하다 받아들여지지 않자 나라를 떠나 금부리에서 충신 지사 일민들과 함께 조국 광복의 숭념을 발의하였다. 후에 개골산(皆骨山)에서 대절을 지켰으므로 그 증손에 이르러서야 대의를 실행한다는 명분으로 나라에 출사하게 되었다. 이찬을 지낸 효종랑의 적자인 경순왕은 사직이 불안정한 때에 대기에 올라 방국 수호의 책무를 지게된.. 더보기
태조 왕건, 고려를 세우다. 훈요10조, 호족의 유화정책, 북진정책, 불교장려정책 태조 왕건, 고려를 세우다. 훈요10조, 호족의 유화정책, 북진정책, 불교장려정책 태조(太祖, 877년 1월 31일 (음력 1월 14일) ~ 943년 7월 4일 (음력 5월 29일))는 후삼국 시대 후고구려의 장군이자 고려의 초대 왕(재위기간 : 918년 7월 25일 - 943년 7월 4일)이다. 성은 왕(王), 휘는 건(建), 본관은 개성(開城), 자는 약천(若天), 이다. 연호는 천수(天授)이다. 송악의 호족 왕륭(王隆)과 그 부인 한씨(韓氏) 사이에서 877년에 태어났으며, 896년에 궁예(弓裔)의 휘하에 들어가 그의 장수 가 되었다. 후백제와의 교전에서 거듭 승리하여 전라도와 경상도 서부 지역에서 견훤의 군사를 여러 번 격파하고 906년 상주의 사화진, 909년 진도 부근의 도서와 나주를 공략하였..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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