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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천교

세계유산 , 조선왕릉 세계유산 , 조선왕릉 한국의 조선시대(1392~1910) 왕실과 관련되는 무덤은 ‘능(陵)’과 ‘원(園)’으로 구분된다. 왕릉으로 불리는 능(陵)은 ‘왕과 왕비, 추존된 왕과 왕비의 무덤’을 말하며, 원(園)은 ‘왕세자와 왕세자비, 왕의 사친(私親)의 무덤’을 말한다. 조선시대의 왕릉과 원은 강원도 영월의 장릉, 경기도 여주의 영릉과 녕릉 3기를 제외하고는 당시의 도읍지인 한양에서 40km 이내에 입지하고 있으며, 왕릉이 40기, 원이 13기, 총 53기가 있다. 조선시대의 왕릉은 조선시대의 국가통치 이념인 유교와 그 예법에 근거하여 시대에 따라 다양한 공간의 크기, 문인과 무인 공간의 구분, 석물의 배치, 기타 시설물의 배치 등이 특색을 띠고 있다. 특히 왕릉의 석물 중 문석인, 무석인의 규모와 조각양.. 더보기
창덕궁 금천교, 진선문, 인정전, 인정문 주변의 궐내각사 창덕궁 금천교 금천교는 1411년 (태종11년)에 만들어진 돌다리입니다. 조선의 궁궐에는 들어가는 입구에 풍수지리상 길한 명당수를 흐르게 하고 궁궐 안과 밖을 구분하기 위해 돌다리를 놓습니다. 경복궁에는 영제교가 있고 창덕궁에는 금천교가 있습니다. 다리 아래에는 남쪽의 해태상, 북쪽에는 거북상을 배치하여 궁궐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삼았어요. 다리 중간에는 잡귀를 쫓는 귀면이 조각되어 있고 돌출부에는 천록이 있어 들어오는 사람의 마음을 착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진선문 진선문은 남북축의 돈화문이나 인정문과 다르게 동서축으로 세워져 있어 돈화문에서 북쪽을 가다가 동쪽으로 꺽어서 금천교와 진선문을 지나 다시 북쪽으로 꺽여 인정문에 들어가게 됩니다. 태종대와 영조대에 진선문에 북을 설치하여 억울한 일이 있는 백성이..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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