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길선주

기미독립선언서 기미독립선언서 기미독립선언서는 1919년 3월 1일 3·1 운동에 맞추어 민족대표 33인이 당시 일제 강점 하에 있던 조선의 독립을 국내외에 선언한 글이다. 독립선언서 낭독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에 모이기로 했던 조선의 민족대표 33인은 늦게 온 사람이 있어 오후 3시가 되어서야 길선주, 유여대, 김병조, 정춘수를 제외한 29인이 모였다. 그들은 태화관(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소재)에서 조선이 독립국임을 선언하였고, 모든 행사가 끝난 때가 오후 4시 무렵이었다. 그들은 총독부 정무총감 야마가타 이자부로에게 전화를 걸어 독립선언 사실을 알렸는데, 이는 자신들이 태화관에 모여있으니 연행해 가라는 뜻이었다. 60여 명의 헌병과 순사들이 태화관에 들어닥쳐 민족대표를 남산 경무총감부와 지금의 중부경찰서로.. 더보기
3·1운동 민족대표 33인 3·1운동 민족대표 33인 민족대표 33인(民族代表三十三人)은 1919년 3·1 운동 때 발표된 기미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명을 가리킨다. 종교별로 나누어 대표를 선정하여 천도교, 기독교, 불교에서 각 15명, 16명, 2명씩 참가했다. 이 가운데 1919년 3월 1일에 약속 장소인 태화관에 나오지 않은 사람은 길선주, 유여대, 김병조, 정춘수이다. 상하이로 망명해 체포를 피한 김병조와 나중에 무죄 판결을 받은 길선주, 그리고 체포 직후 구금 중에 사망한 양한묵을 제 외하고는 모두 이 사건으로 징역 1년 6개월에서 3년형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들중 손병희등은 복역 중 병사하였다. 민족대표 33인 중 일부는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포함되어.. 더보기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