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김준

교정도감, 무신정권의 최고 정치기구 교정도감, 무신정권의 최고 정치기구 교정도감(敎定都監)은 최충헌이 설치한 무신정권의 최고 정치 기구로 교정소(敎定所)라고도 한다. 주로 최씨 정권의 반대 세력을 제거하고 국정을 총괄하였다. 관직의 기강을 살피고, 인사행정과 그밖에 정치 문제를 다루었다. 1209년(희종 5년) 음력 4월 청교(靑郊)의 역리 3명이 최충헌을 제거하려고 거짓 공첩(公牒)을 만들어 여러 절로 돌려 승려들을 소집하였는데, 귀법사(歸法寺)의 승려가 이를 최충헌에게 고발하였다. 최충헌은 흥국사의 남쪽 영은관(迎恩館)에 임시로 교정도감을 설치하고 관련자를 색출하였다. 그러나 사건이 마무리된 뒤에도 계속 놔두어 최씨 정권의 반대 세력을 제거하는 데 이용되었고, 서정(庶政) 감시, 세정, 비위 규찰과 제반 명령 하달 등 국정을 총괄하는 .. 더보기
무신정권, 무신의 난, 정중부, 이의방이 난을 일으켜 의종을 폐위시키다. 무신정권, 무신의 난, 정중부, 이의방이 난을 일으켜 의종을 폐위시키다. 무신정권(武臣政權)은 의종 24년(1170)부터 원종 11년(1270)까지 100년간 무신들에 의해 수립된 정부를 말하며, 그 시기를 무인시대라 일컫기도 한다. 문치주의에 입각한 고려의 귀족정치는 무신의 사회적 몰락을 초래했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열세에 놓여 있던 무신들에 대한 천대는 의종 때 극에 달했다. 그 때문에 일찍이 최질(崔質)·김훈(金訓) 등의 무신이 주동이 되어 쿠데타를 일으킨 일까지 있었다. 생활상으로도 크게 곤란을 받던 무신들의 불만은 오병수박희(五兵手縛戱)를 계기로 폭발하였다. 무신의 난은 1170년 의종 24년에 정중부, 이의방, 이고등에 의하여 일어났다. 이 반란의 성공으로 무신들은 의종을 폐위시키고 명종을.. 더보기
대몽항쟁, 삼별초 항쟁, 고려가 몽골에 맞서 싸우다. 대몽항쟁, 삼별초 항쟁, 고려가 몽골에 맞서 싸우다. 고려의 대몽 항쟁은 고려가 몽골에 맞서 싸운 전쟁을 일컫는다. 좁게는 고려-몽골 전쟁을, 넓게는 삼별초의 항쟁을 비롯한 공민왕 때의 원나라와의 전쟁까지도 포함되기도 한다. 그러나 흔히 대몽 항쟁이라 하면 고려-몽골 전쟁과 삼별초의 항쟁만을 가리킨다. 고려와 몽골의 접촉 고려가 몽골과 최초의 접촉을 가지게 된 것은 몽골에게 쫓겨 오는 거란인(요나라 군)을 협공하던 때부터이다. 거란인은 금(金)이 망할 무렵 독립하였다가 다시 몽골군에게 쫓겨 고려의 강동성(江東城)에 내려와 서북 지방에서 약탈을 감행했다. 고려는 몽골과 합세하여, 조충(趙沖)·김취려(金就礪) 등을 보내어 이를 함락시켰다. 몽골은 이후 고려에 대해 매년 공물(貢物)을 요구함으로써 양국 사이는.. 더보기
무신정변, 정중부 보현원에서 구테타를 일으키다. 고려사 정중부 무신정변, 정중부 보현원에서 구테타를 일으키다. 무신정변(武臣政變)은 고려시대 의종 24년(1170년) 8월에 상장군 정중부와 이의방, 이고 등의 휘하장수들이 보현원(普賢院) 에서 일으킨 쿠데타이다. 무신들의 주도로 일어난 정변이었기 때문에 무신의 난(武臣의 亂)이라고 부르고 정변이 일어난 해가 경인년이었기 때문에 경인의 난(庚寅의 亂)이라고도 부르며 정변의 주도적인 역할을 한 정중부의 이름을 따서 정중부의 난(鄭仲夫의 亂)이라고 부 르기도 한다. 1170년 이후 계속된 무신정권은 100년 후인 1270년, 마지막 무신집권자인 임유무가 살해당하기까지 100년간 존속되었다. 반란 배경 의종의 유흥으로 문신이 무신보다 더 높은 대우를 받고 내시마저 궁궐을 좌지우지하자, 불만이 쌓인 무신들은 상.. 더보기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