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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모산

문왕의 업적, 무왕의 아들, 당나라의 문화를 수용하고 수도를 이전해 발해의 여러곳을 개발하는 효과를 얻다. 문왕의 업적, 무왕의 아들, 당나라의 문화를 수용하고 수도를 이전해 발해의 여러곳을 개발하는 효과를 얻다. 문왕(文王, ? ~ 793년, 재위: 737년 ~ 793년)는 발해의 제3대 국왕으로, 휘는 흠무(欽茂), 연호는 대흥(大興)이다. 황후는 효의황후(孝懿皇后)로 룽터우산 고분군 M12 묘지의 비문에 기록되어 있다. 존호는 대흥보력효감금륜성법대왕(大興寶曆孝感金輪聖法大王)이다. 생애 737년, 대당(對唐) 강경책을 구사하던 아버지 무왕이 붕어한 뒤 보위를 승계하였다. 문왕은 전반적으로 대당 평화기조를 견지하였다. 그러나 당나라의 필요이상의 요구에는 일절 응하지 않았다. 758년 당나라는 발해에 사신을 보내, 755년 반란을 일으킨 안녹산 무리의 진압을 위해 기병 4만의 출병을 요청해왔지만 문왕은 이를 .. 더보기
발해 무왕, 처음으로 일본에 사절을 파견하고 고구려 영토를 회복하다. 발해 무왕, 처음으로 일본에 사절을 파견하고 고구려 영토를 회복하다. 무왕(武王, ? ~ 737년, 재위 : 719년 6월 ~ 737년)은 발해의 제2대 국왕으로 휘는 무예(武藝)이다. 연호는 인안(仁安)이다. 발해의 시조 고왕 대조영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당시 아버지 고왕은 몰락한 고구려의 장군으로, 고구려가 멸망한 뒤 당나라의 영주(營州)로 이주된 형편이었다. 즉위 고왕은 천문령 전투에서 당군과 격돌, 크게 격파하고 동모산(東牟山)에서 발해를 건국하였다. 고왕이 719년 붕어하자 보위를 승계하고, 연호를 고쳐 인안(仁安)으로 하였다. 무왕은 즉위 직후부터 지속적인 영토확장을 꾀했고 726년 부여의 후계 국가인 두막루와 여러 말갈 부족을 발해로 병합하였다. 무왕은 727년 발해에서는 처음으로 일본에 사.. 더보기
대조영, 동모산에서 발해를 건국하다. 대조영, 동모산에서 발해를 건국하다. 고왕(高王, ?~ 719년, 재위: 698년 ~ 719년)은 남북국 시대의 북국인 발해(渤海)의 초대 국왕이며, 성은 대(大)이고, 휘는 조영(祚榮)이다. 고왕은 고구려의 장수 걸걸중상의 아들로서, 고구려의 유민이자 옛 고구려의 장수이다. 고왕과 발해에 관해 중국 측 기록인 《구당서》(舊唐書)에서는 발해 말갈의 대조영은 고구려의 별종으로서술하고 있지만, 《신당서》(新唐書)에서는 본래 고구려에 복속되어 있던 속말말갈의 한 일파라고 서술 되어있어 고구려와의 종족 관계를 모호하게 기록하였다. 한국측 기록인 삼국유사에 인용된《신라고기(新羅古記)》, 《제왕운기(帝王韻紀)》에서는 고왕을 고구려 장수라고 기록하였다. 고구려 무장 당시 고구려(高句麗)는 연개소문(淵蓋蘇文)이 사망한..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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