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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류

고이왕, 왕권 강화로 백제의 기반을 다져놓다. 고이왕, 왕권 강화로 백제의 기반을 다져놓다. 고이왕(古尒王, ? ~ 286년, 재위: 234년 ~ 286년)은 백제의 제8대 국왕이다. 구이왕(久爾王)·고모왕(古慕王)이라고도 한다. 성은 부여(扶餘) 일본의 사서 《신찬성씨록》, 《일본서기》등 에는 구이(久爾) 또는 구이(仇爾), 고모(古慕) 등의 이름으로 표기되어 있다. 고이왕은 즉위 후 국가체제의 정비와 왕권 강화에 주력하여 고대국가로서의 백제의 기반을 다져놓은 인물이었다. 백제의 실질적인 건국자로 보는데, 집권력의 강화를 위하여 좌장(左將)을 설치하여 내외 병마권을 관장하게 함으로써 족장들의 독자적인 군사력을 약화시켰다. 초고왕, 구수왕과의 가족관계 여부 연대차이로 이견이 존재한다. 생애 고이왕의 가계는 불확실한데 고이왕은 보통 《삼국사기》의 기록.. 더보기
유리명왕, 주몽이 서거하자 왕위를 이어받다. 유리명왕, 주몽이 서거하자 왕위를 이어받다. 유리명왕(瑠璃明王, 기원전 38년 ~ 기원후 18년)은 고구려의 제2대 국왕(재위 : 기원전 19년 나이 20세 - 기원후 18년 나이 56세)으로 휘는 유리(榴璃 또는 類利) 또는 유류(孺留)이다. 동명성왕과 왕후 예씨의 맏아들이다. 기원후 3년에 졸본에서 수도를 위나암 국내성으로 옮겼고, 계비 치희를 그리워해서 지었다는 황조가가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재위 33년인 서기 14년에 무휼을 태자로 삼았고, 2만 명의 군대와 오이와 마리장군을 보내 서쪽의 양맥(梁貊)을 치고, 또 현도군의 고구려현(高句麗縣 또는 高句驪縣)을 쳐서 복속시켰다.다른 이름은 여달(閭達), 여해(閭諧), 시여해(始閭諧)이며, 삼국지의 위서 고구려전에는 그의 이름을 원래 여달이었다가 아버.. 더보기
소서노, 비류와 온조 두 아들과 남하하여 백제를 건국하다. 소서노, 비류와 온조 두 아들과 남하하여 백제를 건국하다. 소서노(召西奴, 기원전 66년 ~ 기원전 6년)는 비류를 시조로 하는 백제 건국 설화에서 나오는 비류와 온조의 어머니이자 고구려 동명성왕 추모왕의 두 번째 부인이다. 졸본부여 왕의 둘째 딸이라는 설과 졸본부여 사람인 연타발의 딸이라는 설, 비류국 왕인 송양의 딸이라는 설 등 다양한 설이 있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 의하면 비류국 왕 송양의 딸은 추모왕의 아들인 유리왕의 부인이 되었으므로 소서노는 송양의 딸이 아니다. 설화 현재 정설로 받아 들여지는 설화는 다음과 같다. 《삼국사기》 고구려 건국 설화에 나오는 내용으로 '동명성왕이 졸본에 정착하여 졸본 부여왕(이름 미상)의 둘째 딸(이름 미상)과 결혼하여 두 아들을 낳았는데 비류와 온조다.' 라고.. 더보기
백제 건국 설화, 온조설화, 비류설화, 구태설화 백제 건국 설화, 온조설화, 비류설화, 구태설화 백제 건국 설화란, 삼국 시대의 고대 국가 백제의 건국에 관해 전해내려오는 설화를 말한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백제 건국 이야기는 모두 3가지로서, 그 중 2가지는 《삼국사기》에 전하며 나머지 한 가지는 《수서》와 《북사》에 전해진다. 《삼국사기》에 전하는 설화가 각각 온조 설화와 비류 설화이고, 《수서》에 전하는 설화는 구태설화로 불린다. 《삼국사기》의 저자들은 두 설화 중에 무엇이 옳은지 모르겠다고 밝힌 뒤 두 설화를 모두 언급했다. '백제 건국 설화'라고 할 때, 보통은 현재 가장 많이 알려지고 유력하게 인정받고 있는 온조 설화만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온조 설화 온조 설화는 백제의 시조가 온조라고 전하고 있으며, 현재 가장 많이 알려진 백제 건국 .. 더보기
온조왕, 남하하여 위례성에 자리잡다. 온조왕, 남하하여 위례성에 자리잡다. 온조왕(溫祚王, ? ~ 28년, 재위: 기원전 18년 ~ 28년 음력 2월)은 백제의 건국자이다. 아버지는 고구려의 동명성왕이다. 형으로는 유리명왕와 미추홀의 창업자 비류가 있다. 동명성왕의 부인 예씨 소생 유리명왕이 졸본으로 오자 어머니 소서노와 형 비류와 함께 남하하여 위례성에 자리잡고 백제를 건국하였다. 일본에서는 음태귀수왕(陰太貴首王)이라 부른다. 온조왕의 출생에 대해서 삼국사기의 백제본기에서는 여러 내용을 전하고 있다. 초기 활동 고구려의 왕자였으나, 동명성왕의 적자 유리명왕이 부여에서 고구려로 와, 태자가 되자 형인 비류와 함께 한반도로 남하했다. 비류는 미추홀(彌鄒忽)에 자리를 잡았고, 온조왕은 하남위례성에 수도를 정하고 나라의 이름을 ‘십제(十濟)’라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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