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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검

견훤, 금성전투, 공산전투, 고창전투, 운주성 전투, 신검의 정변 견훤, 금성전투, 공산전투, 고창전투, 운주성 전투, 신검의 정변 금성 전투 견훤은 지금의 전라남도 지역을 석권하고 후백제를 선포한 이듬해에 진출방향을 지금의 경상남도 서부 지역으로 돌려 대야성(大耶城)을 공격하였으나 실패하였다. 한편 견훤으로부터 비장의 지위를 받기도 했던 양길은 899년 7월에 궁예를 치기 위해 국원경 등 10여 성의 성주들을 끌어들여 궁예를 쳤으나 거꾸로 비뇌성 아래에서 패하고, 901년 궁예는 후고구려(後高句麗)를 선포하였다. 903년에는 수군 기습에 의해 금성(錦城, 나주) 일대의 10여 군현을 빼앗겼다. 906년에는 상주 사화진 일대에서 패전하였다. 907년 견훤은 일선군 이남의 10여 성을 장악하였다. 금성을 후고구려에게 빼앗겼다는 것은 후방이 고려에 노출됨과 동시에 바다를 .. 더보기
견훤, 백제 부흥운동으로 무진주를 점령하고 후백제의 군주가 되다. 견훤, 백제 부흥운동으로 무진주를 점령하고 후백제의 군주가 되다. 견훤(甄萱, 867년 ~ 936년 9월 27일(음력 9월 9일) 재위:892년?/900년? ~ 935년 음력 3월)은 신라 말기의 장군이자 후백제의 시조이다. 892년부터 935년 음력 3월까지 후백제(後百濟)의 국왕으로 재위한 그는 본래 통일신라(新羅)의 장군이었으나 889년을 전후한 시기부터 백제(百濟) 부흥 운동을 전개하여 892년에 무진주를 점령하였고 900년에 비로소 후백제의 군주가 되었으며 935년 음력 3월에 첫째아들이자 적장자(嫡長子)인 신검(神劍)이 일으킨 정변으로 보위에서 축출되었고 대리 집정을 하던 신검은 같은 해 935년 음력 10월 17일에 비로소 후백제의 제2대 군주로 등극하였으나 이듬해 936년 음력 9월 8일에..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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