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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온

심온, 세종대왕의 장인, 태종에 대한 불경죄를 이유로 사사되다. 심온, 세종대왕의 장인, 태종에 대한 불경죄를 이유로 사사되다. 심온(沈溫, 1375년 ~ 1419년 1월 18일 (1418년 음력 12월 23일))은 고려 시대 말기와 조선 시대 초기의 문신이자, 세종의 국구이다. 자는 중옥(仲玉), 시호는 안효(安孝)이고, 봉군호(封君號)는 청천부원군(靑川府院君), 본관은 청송(靑松), 청송 심씨(靑松 沈氏) 안효공파(安孝公派)의 파조(派祖)이다. 조선 왕실의 이중 인척으로 세종대왕의 장인이자, 세종대왕의 외삼촌 민무휼의 사돈이다. 또한 명종때의 형제 정승인 심연원, 심통원 및 명종비 인순왕후의 친정아버지 심강의 직계 조상이기도 하다. 성종과 연산군때의 정승 노사신은 그의 외손자였다. 가계 세종대왕의 국구(장인)이고, 소헌왕후의 아버지이며, 정소공주, 문종, 세조의 .. 더보기
소헌왕후, 세종의 왕비, 조선 최고의 국모이자 왕비 소헌왕후, 세종의 왕비, 조선 최고의 국모이자 왕비 소헌왕후 심씨(昭憲王后 沈氏, 1395년 10월 12일 (음력 9월 28일) ~ 1446년 4월 19일 (음력 3월 24일))는 조선 세종의 왕비이다. 별호는 공비(恭妃), 시호는 선인제성소헌왕후(宣仁齊聖昭憲王后)이다. 청천부원군 안효공 심온(靑川府院君 安孝公 沈溫)의 장녀이며, 본관은 청송(靑松)이다. 외척의 발호를 경계한 태종에 의해 집안이 멸문당한 시어머니 원경왕후와 마찬가지로, 소헌왕후 또한 시아버지 태종에 의해 아버지 심온을 잃는다. 특히 남편 세종대왕을 이해하고 내조를 했다. 소헌왕후는 조선역사상 내명부를 가장 안정적으로 다스렸고 이는 세종의 업적에 좋은 영향력을 끼쳤다고 평가받는 조선 최고의 국모이자 왕비이다. 일생 1395년 문하시중 심덕.. 더보기
세종대왕, 훈민정음 창제, 과학을 발전시키고 유교 정치의 기틀을 마련하다.(3) 세종대왕, 훈민정음 창제, 과학을 발전시키고 유교 정치의 기틀을 마련하다. 가정의 불행 재위 초반에 장녀 정소공주가 요절하고, 재위 후반엔 광평대군과 평원대군이 잇따라 요절을 하게되어, 세종과 소헌왕후는 비탄에 빠졌고 곧 불교 사찰을 찾아다니며 이들의 명복을 비는 등 불사를 주관하기도 했다. 이어 소헌왕후 마저 승하하면서 그는 생애 후반 불교에 귀의하게 된다. 조선의 건국 이념은 유교 성리학이었기에 유학자들의 반발이 거셌으나 세종은 이에 개의치 않고 불사 중창과 법회에 참석하였으며, 먼저 죽은 가족들의 넋을 위로하기도 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몸이 약한 데다가, 학문에만 전념하는 모습을 보여 아버지 태종에게 걱정을 샀던 세종은 젊은 시절 무리하게 국정을 돌본 탓에 집권 후반에 들어서면서 건강이 몹시 악화되.. 더보기
세종, 훈민정음 창제, 과학을 발전시키고 유교 정치의 기틀을 마련하다.(1) 세종, 훈민정음 창제, 과학을 발전시키고 유교 정치의 기틀을 마련하다. 세종(世宗, 1397년 5월 7일(음력 4월 10일) ~ 1450년 3월 30일 (음력 2월 17일), 재위 1418년 ~ 1450년)은 조선의 제4대 왕이다. 성(姓)은 이(李), 휘(諱)는 도(祹), 본관(本貫)은 전주(全州), 자(字)는 원정(元正)이다. 사후 묘호(廟號)는 세종(世宗), 시호(諡號)는 장헌대왕(莊憲大王)으로, 정식 시호는 세종장헌영문예무인성명효대왕(世宗莊憲英文睿武仁聖明孝大王)이다. 태종(太宗)과 원경왕후(元敬王后)의 셋째 아들이며, 비는 청천부원군(靑川府院君) 심온(沈溫)의 딸 소헌왕후 심씨(昭憲王后 沈氏)이다. 한성 준수방(지금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통인동) 고을에서 아버지 정안군 이방원(靖安君 李芳遠)과 어머..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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