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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복

의자왕, 낙화암과 3천 궁녀, 마지막까지 군대를 보내어 싸우다. 의자왕, 낙화암과 3천 궁녀, 마지막까지 군대를 보내어 싸우다. 의자왕(義慈王, ? ~ 660년, 재위 : 641년 ~ 660년)은 백제의 마지막 국왕(혹은 31대 국왕)이다. 이름은 부여의자(扶餘義慈)며 망국의 군주이기 때문에 시호를 받지 못했다. 태자 시절부터 아우들과 우애가 깊고 사려가 깊어 중국의 사상가 증자에 견주어 해동증자(海東曾子)라 일컬어졌다. 말년의 실정으로 나·당연합군의 공격을 받음으로써 초대 온조왕으로 부터 이어진 백제는 멸망하고 의자왕을 비롯한 왕족들과 수많은 백성들이 낙양으로 끌려갔다. 즉위와 정변설(說) 무왕의 첫째 아들로 태어나 632년(무왕 33년) 정월에 왕태자로 책봉되었다. 641년에 아버지 무왕이 승하하자 그 뒤를 이었고, 당으로부터 주국(柱國) 대방군왕(帶方郡王) 백제.. 더보기
기자조선, 시대에 따른 관점 기자조선, 시대에 따른 관점 기자조선(箕子朝鮮)은 고조선의 왕조 중 하나인 고대 국가이다. 조선시대에는 일반적으로 고조선을 셋으로 구분하였는데 기자가 세웠다고 하는 기자조선은 이 중 두 번째 시기에 해당된다. 명칭은 단군조선과 같은 ‘조선’이지만, 구분을 위해 후조선(後朝鮮) 또는 기씨조선(箕氏朝鮮)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기자조선은 실재 여부를 비롯하여 건국 과정, 성격에 대한 인식이 시대에 따라 논란이 있다. 현재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사학계 중 다수는 일반적으로 기자조선에 대한 고전적인 인식(기자동래설, 단군조선-기자조선-위만조선의 승계 등)을 부정하는 편이며, 그 유래와 실체에 대한 여러 주장이 있다. 기원전 1122년부터 기원전 195년 경까지 존속하였다고 한다. 개요 근대 역사학이 .. 더보기
동사강목, 안정복, 고조선 부터 고려가 멸망하게 되는 1392년에 이르기까지 2,514년의 역사를 수록하다. 동사강목, 안정복, 고조선 부터 고려가 멸망하게 되는 1392년에 이르기까지 2,514년의 역사를 수록하다. 《동사강목》(東史綱目)은, 조선의 학자 안정복(安鼎福)이 저술한 강목체(綱目體) · 편년체(編年體) 역사서이다. 중국 남송(南宋) 주자(朱子)의 《강목》(綱目)의 체제를 따라 중국 은(殷) 왕조의 기자(箕子)가 주(周)에서 고조선(古朝鮮)으로 망명한 시점으로 알려진 기원전 1122년(주 무왕 13년, 기묘년)부터 고려(高麗) 34대(마지막) 군주 공양왕(恭讓王)이 이성계(李成桂)에 의해 강제로 양위하고 고려가 멸망하게 되는 1392년(고려 공양왕 4년, 임신년)에 이르기까지의 2,514년에 걸치는 역사를 수록하였다. 전체 17권 34책(각권이 상·하로 분류되어 있다)에 서론과 부록 3권이 덧붙여져.. 더보기
개로왕, 비유왕의 아들, 무리한 토목공사로 백성들의 원망을 사다. 개로왕, 비유왕의 아들, 무리한 토목공사로 백성들의 원망을 사다. 개로왕(蓋鹵王, ? ~ 475년 9월)은, 백제의 제21대 국왕(재위: 455년~475년)이다. 근개루왕(近蓋婁王), 개도왕(蓋圖王)으로도 불린다. 이름은 경사(慶司) 또는 여경(餘慶)이며,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가수리군(加須利君)이라는 칭호도 있다. 비유왕의 아들로 부왕 사후 즉위하였다. 《삼국사기》는 455년에 즉위하였다고 했고, 《일본서기》는 《백제신찬》의 기사를 인용하여 기사년(429년)에 즉위하였다고 기록해 양자가 차이를 보이는데, 단순히 《일본서기》 기록의 오류로 보기도 하지만, 왕의 즉위가 다소 불안정한 것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여겨진다. 아울러 《일본서기》는 429년에 왜에서 백제의 왕녀를 구하자 모니부인(慕尼夫人)의 딸..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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