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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비

왕소군, "봄은 왔으나 봄같지 않구나(春來不似春)" 왕소군, "봄은 왔으나 봄같지 않구나(春來不似春)" 왕소군(王昭君, 기원전 1세기)은 흉노의 호한야 선우(呼韓邪單于), 복주누약제 선우(復株累若鞮單于)의 연지(선우의 처)로, 본래 한나라 원제의 궁녀였다. 이름은 장(嬙, 출전은 한서)이다. 성을 왕, 자를 소군이라고 하여 보통 왕소군이라고 불리며 후일 사마소(司馬昭)의 휘(諱)를 피하여 명비(明妃), 왕명군(王明君) 등으로도 일컬어졌다. 형주 남군(현재의 호북성 사시) 출신으로 서시, 양귀비, 우희과 함께 고대 중국 4대 미녀들 중 1명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생애 전한의 원제 시대, 흉노의 호한야 선우가 한나라의 여성을 연지로 달라고 해, 왕소군이 선택되어 그의 장남을 낳았다. (당시의 상황으로 보아 변방의 세력을 달래기 위해 보냈다는 설도 있다.) .. 더보기
안사의 난, 율령제의 변질, 균전제와 조용조의 변화, 부병제의 붕괴 등이 원인이 되다. 안사의 난, 율령제의 변질, 균전제와 조용조의 변화, 부병제의 붕괴 등이 원인이 되다. 안·사의 난(安史之亂, An Shi Rebellion)은 755년 12월 16일부터 763년 2월 17일에 걸쳐 당나라의 절도사인 안녹사와 그 부하인 사사명과 그 자녀들에 의해 일어난 대규모 반란이다. 안·사의 난이란 안녹산과 사사명의 첫글자를 따서 지은 이름으로 〈안녹사의 난〉 또는 〈천보의 난〉(天寶之亂)이라고도 한다. 안녹산은 나라 이름을 연(燕)이라고 하여 칭제를 했으며, 9년간 지속했다. 그러나 이 기간동안 중국의 인구는 3600만명이 줄어들었으며, 이것은 전란으로 소실된 호적 체계 때문이기도 하였다. 원인 당나라 말기 율령제의 변질, 균전제와 조용조의 변화, 부병제의 붕괴 등이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개원.. 더보기
양귀비, 서시, 왕소군, 우희와 아울러 중국의 4대 미인 중 한 사람이라 일컬어진다. 양귀비, 서시, 왕소군, 우희와 아울러 중국의 4대 미인 중 한 사람이라 일컬어진다. 양귀비(楊貴妃, 719년 6월 26일 ~ 756년 7월 15일)는 당 현종의 후궁이자 며느리이다. 서시, 왕소군, 우희와 함께 고대 중국 4대 미녀들 중 1명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이력 그녀의 성은 양(楊)이고 이름은 옥환(玉環)이며, 귀비는 황비(후궁)로 순위를 나타내는 칭호이다. 당 현종 이융기에게 총애를 받았지만, 그것이 과도하여 끝끝내 안녹산과 사사명이라는 두 호족 세력 무장 대표가 공동 주도하여 반란을 획책한 이른바 안사의 난이 발발하는 원인이 되었고 이 역사적 사건의 배경을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고도 부른다. 서시, 왕소군, 우희와 아울러 중국의 4대 미인 중 한 사람이라 일컬어진다. 출생 양옥환(楊玉環)은..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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