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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종

신유박해, 박해의 진짜 이유는 남인 시파의 숙청이었다. 신유박해, 박해의 진짜 이유는 남인 시파의 숙청이었다. 신유박해(辛酉迫害)는 1801년(순조 1년)에 발생한 조선의 로마 가톨릭교회 박해 사건이다. 시파·벽파의 정치 투쟁에서 시파의 제거를 오랜 숙원으로 한 벽파가 천주교 탄압을 명분으로 일으킨 사건이다. 원인 1800년 8월 18일(음력 6월 28일) 신해박해(1791년, 정조 15년) 이래 “정도(正道)인 유학은 ‘사학’(邪學)인 천주교를 소멸시킬 것” 이라면서, 로마 가톨릭교회에 대해서 온화한 정책을 써 오던 정조가 승하하였다. 1800년 8월 23일(음력 7월 4일) 순조가 11세로 왕위에 오르면서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하여 벽파가 정권을 장악하였다. 이후 벽파가 정순왕후를 움직이면서 조선 천주교회에 대한 박해가 일어나게 되었는데, 박해의 진짜 이.. 더보기
정약용, 실학사상을 한 몸으로 집대성하다. 정약용, 실학사상을 한 몸으로 집대성하다. 정약용(丁若鏞, 1762년 8월 5일(음력 6월 16일), 경기도 광주 ~ 1836년 4월 7일(음력 2월 22일)) 조선 정조 때의 문신이며, 실학자·저술가·시인·철학자·과학자·공학자이다. 본관은 나주, 자는 미용(美庸), 호는 사암(俟菴)·탁옹(籜翁)·태수(苔叟)·자하도인(紫霞道人)· 철마산인(鐵馬山人)·다산(茶山), 당호는 여유당(與猶堂)이며, 시호는 문도(文度)이다. 정약용 중농주의 실학자로 전제 개혁을 주장하며 조선 실학을 집대성하였고, 수원 화성 건축 당시 기중가설(起重架說)에 따른 활차녹로(滑車轆轤 : 도르래)를 만들고 그를 이용하여 거중기를 고안하여 건축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또한, 유교 경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통해 당대 조선을 지배한 주자학..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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