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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천량해전

도요토미 히데요시, 임진왜란에 반대한 다이묘들 도요토미 히데요시, 임진왜란에 반대한 다이묘들 도요토미/도요토미노/하시바 히데요시(豊臣/羽柴秀吉 (とよとみ/とよとみ の/はしば ひでよし), 1537년 3월 17일 ~ 1598년 9월 18일)는 센고쿠 시대와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에 활약했던 무장, 정치가이며 다이묘이다.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함께 전국 3영걸로 불린다. 또한 임진왜란을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는 도요토미라는 성을 하사받기 이전에 하시바 히데요시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그 자신의 가신(家臣)이기도 했던 일본의 무장 가토 기요마사의 어머니 이토는 히데요시의 6촌 여동생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오와리 국(尾張国) 아이치 군(愛知郡) 나카무라(中村)에서 빈농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를 섬겼으며 오다 가문 .. 더보기
정유재란, 임진왜란의 정전회담이 결렬됨에 따라 재차 침공하다. 정유재란, 임진왜란의 정전회담이 결렬됨에 따라 재차 침공하다. 정유재란(丁酉再亂)은 1597년 8월 도요토미 정권 일본군이 임진왜란의 정전회담이 결렬됨에 따라 재차 조선을 침공하여 이듬해인 1598년 연말까지 지속된 전쟁이다. 일본에서는 당시 고요제이 천황의 연호를 따서 게이초 전쟁(慶長 (けいちょう)の役 (えき) 게이초노에키)이라고 한다. 초기에는 일본군의 공세가 이루어지다가, 명량해전을 변곡점으로 남해안의 왜성들에 틀어박힌 일본군에 대한 조명 연합군의 공격 양상을 띠었다. 때문에 정유재란 때 조선군은 대부분 공격측, 일본군은 대부분 방어측에 서게 되었고, 명량해전과 노량해전을 제외하면 조선군이 결정적 승리를 거둔 전투는 거의 없는 교착전쟁의 모습을 나타냈다. 경과 일본군은 보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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