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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적

숙종의 성격,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2) 숙종의 성격,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2) 긍정적 평가 숙종은 크고 작은 당파 싸움으로 약해진 왕권을 회복하고 세력이 강한 붕당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 집권 정당을 수시로 교체시키는 환국을 실행하였고, 그로써 왕권을 강화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숙종의 왕권 강화 정책은 정치 세력을 철저히 이용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기에 그가 죽은 후 절대 왕권은 숙종의 치세에서만 끝나게 된다. 조선왕조 중 가장 당쟁이 격심했던 시기로 대외적인 전쟁이 없어 태평안일했으며, 그의 애증의 감정 노출이 심한 것을 당인들이 교묘히 조종하였다는 평가도 있다. 부정적 평가 이덕일은 그가 윤증이 제시한 세가지 타협안을 거절한 것을 두고 패도정치 라며 비판하였다. 이덕일에 의하면 윤증이 '서인과 남인의 원한을 풀 수가 없고, 삼척.. 더보기
경신환국, 삼복의 변, 남인 일파가 정치적으로 대거 실각하다. 경신환국, 삼복의 변, 남인 일파가 정치적으로 대거 실각하다. 경신환국(庚申換局)은 1680년(숙종 6년) 남인 일파가 정치적으로 대거 실각한 일이다. 경신사화(庚申士禍), 경신출척 ​(庚申黜陟)이라고도 한다. 개요 1674년(현종 15년)의 복상 문제에서 승리하여 정권을 잡은 남인은 전횡이 심하였고, 숙종으로부터도 그다지 신임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또한 당시의 영의정 허적(許積)의 유악(油幄, 비가 새지 않도록 기름을 칠한 천막) 사건은 왕으로 하여금 더욱 남인을 꺼리게 하였다. 허견의 아버지 허적 유악 사건이란, 허적의 조부 허잠의 시호를 맞이하는 잔치를 연 날에 숙종의 허락도 없이 군사 용품인 유악을 빌려가자, ​숙종이 분노하여 군권을 남인에서 서인으로 대거 교체한 것이다.(허견의 옥사) 허적의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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