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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왕후, 조선 최초의 수렴청정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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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왕후, 조선 최초의 수렴청정을 하다.

 

정희왕후 윤씨(貞熹王后 尹氏, 1418년 12월 8일 (음력 11월 11일) ~ 1483년 5월 6일 (음력 3월 30일))는 조선 세조의 왕비이다. 시호자성흠인경덕선열명순원숙휘신혜의신헌정희왕후(慈聖欽仁景德宣烈明順元淑徽愼惠懿神憲貞熹王后)이다. 1469년부터 1476년까지 손자 성종 대신 섭정을 하였다. 충청남도 출신으로 파평부원군 정정공 윤번(坡平府院君 貞靖公 尹璠)의 딸로, 본관은 파평(坡平)이다. 조선 최초로 대왕대비의 칭호를 받았고, 또한 조선 최초로 수렴청정을 한 왕후이면서, 후에 문정왕, 정순왕후, 순원왕후, 신정왕후와 더불어서 수렴청정을 하는 동안 가장 강력한 정치를 한 인물이기도 하다. 또한 증손자인 중종의 계비 장경왕후는 그의 오빠 윤사분의 증손녀로 종증손녀였으며, 문정왕후인종의 후궁 숙빈 윤씨는 남동생 윤사흔의 후손들이었다.

 

군부인과 왕비

정희왕후는 판중추부사 윤번의 딸로 1418년 충청남도 홍주군에서 태어났으며, 1428년 세종의 적차남 진평대군(세조)과 혼인한 뒤 삼한국대부인(三韓國大夫人)에 봉해졌다. 소생으로는 훗날 덕종에 추존된 의경세자, 예종, 의숙공주, 세희공주 가 있다. 세희공주는 금계필담의 존재하는 인물로 김종서의 손자와 혼인했다고 한다. 세조가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조카의 자리를 빼앗고 유배보내자 공주의 자리를 박차고 연을 끊어 나왔다고도 전해내려왔다. 1453년 계유정난 당시 정보 누설로 수양대군이 거사를 망설이자 손수 갑옷을 입혀 그에게 용병을 결행하게 하였다고 한다.

세조가 즉위하면서 왕비에 책봉되었다.

 

최초의 수렴청정

정희왕후는 여장부 기질을 가진 여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세조가 승하하고 예종이 즉위한 뒤 왕대비가 되었고, 예종이 즉위 1년 만에 갑작스레 병으로 승하하자 당일 바로 한명회와 결탁하여 둘째 손자 자을산군을 왕위에 올린 뒤 자신은 왕실 최고 어른인 대왕대비로서 조선 최초의 수렴첨정을 하였다. 여기서 수렴청정은 역사드라마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어린 왕의 뒤에서 발을 치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왕이 신하들과 토론한 내용을 말하면 정희왕후가 적절한 조언을 주는 방식의 정치를 말한다.

 

생애 후반

예종이 갑자기 죽었을 때 그의 아들 원자가(제안대군) 있었으나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그녀는 왕위를 넘겨주지 않았으며, 의경세자에게도 큰아들인 월산대군이 있었으나 자을산군을 즉위시킨 것은 정희왕후 개인의 결단에 의한 것이었다. 섭정 당시에 그녀의 과단성이 있는 성격과 훌륭한 정치적 감각 덕분에 조정은 평화로워 안정기를 구가하였다고 한다. 사극에서 손주며느리인 폐비 윤씨를 옹호하는 모습과는 달리, 실제로는 윤씨가 불순한 행실로 정희왕후의 눈 밖에도 나 이후 성종, 인수대비와 폐출, 사사를 적극 주도했다. 1483년(성종 14년) 음력 3월 30일 온양 행궁에서 승하하였다. 능은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에 위치한 광릉(光陵)으로, 남편 세조의 능과는 동원이강(同原異岡)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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