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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 어릴때부터 검소한 생활을 하였고 형제간의 우애가 두터워 병든 동생을 정성스럽게 간호해 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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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  어릴때부터 검소한 생활을 하였고 형제간의 우애가 두터워 병든 동생을 정성스럽게 간호해 주다.

 

인종(仁宗, 1515년 3월 10일 (음력 2월 25일) ~ 1545년 8월 7일(음력 7월 1일))은 조선의 제12대 임금(재위 1544년 ~ 1545년)이다.

(李), 는 호(峼), 본관전주(全州), 는 천윤(天胤)이다. 사후 시호는 인종영정헌문의무장숙흠효대왕(仁宗榮靖獻文懿武章肅欽孝大王)이며 중종의 장남으로 어머니는 영돈녕부사 윤여필(尹汝弼)의 딸 장경왕후이며, 비는 첨지중추부사 박용(朴墉)의 딸인 인성왕후이다.

 

생애

인종은 실록에 따르면, "전하께서는 어릴때부터 검소한 생활을 하였고, 화려한 치장을 한 궁녀들을 쫓아내었고, 우애가 깊어 병든 동생을 정성스럽게 간호해주었다."라는 구절이 적혀있었고, 그리고 인종은 태어나자마자 어머니 장경왕후 윤씨를 여의었다. 1520년(중종 15년) 세자로 책봉되었다. 1522년에 성균관에 들어가 유신들과 옛 글을 강론했다. 형제간의 우애가 두터웠으며, 중종이 병이 들자 침식을 잊고 간병에 정성을 다했다.

 

대리청정과 보위 치세 배경

1543년 3월부터 부왕 중종을 보좌하여 대리청정을 하기 시작하였고 이듬해 1544년 11월 28일에 부왕의 선위를 받아 즉위했으나(중종은 그 다음날 세상을 떠남.) 병으로 인하여 정사를 제대로 살피지는 못했다. 1545년 기묘사화 때 희생된 조광조, 김정, 기준(奇遵) 등을 신원하고 현량과를 다시 설치했다. 왕위에 오른 지 9개월 만인 1545년 8월 7일에 31세를 일기로 승하한 그는 승하하기 3일 전인 1545년 8월 4일에 이복 아우 경원대군 이환에게 선위하였다.

 

문헌 관련 기록과 그의 능묘

조선왕조실록의 <<인종실록>> 에서는 '조정과 민간에서 세상을 잘 다스리는 정치를 기대하였는데... 상중(국상 기간)에 부왕 (중종) 의 죽음에 슬퍼한 탓으로 갑자기 승하하였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자신의 양어머니 문정왕후에 의한 독살설 또한 야사로부터 전해지고 있다. 생전에 그의 효행과 덕을 기린다고 하여 능의 이름을 효릉(孝陵)이라 정하였다. 경기도 고양시 원당동에 위치한다.

 

묘호와 시호

묘호는 인종(仁宗)인데, 의정(議定)하는 이유를 정하느라고 약간의 논란이 있었다. 원래는 현친(賢親)을 귀하게 여긴다고 하여 인(仁)이라 한다고 정했는데, 시법(諡法)에 맞지 않다고 하여 인(仁)을 베풀고 의(義)를 행했다고 하여 인(仁)이라 정한다고 고쳤다. 시호는 헌문의무장숙흠효대왕(獻文懿武章肅欽孝大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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