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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국공주, 고국을 배척하고 공민왕의 반원정책을 지지하다. 노국대장공주, 고국을 배척하고 공민왕의 반원정책을 지지하다. 노국대장공주 패아지근씨(魯國大長公主 孛兒只斤氏, ? ~ 1365년 3월 8일(음력 2월 16일))는 고려 공민왕의 적후(嫡后)이다. 원 순종(元 順宗·추존)의 손자인 위왕(魏王) 베이르 테무르(孛羅 帖木兒)의 딸로, 본명은 보르지긴 보타슈리이다. 공민왕이 지어준 고려식 이름은 왕가진(王佳珍)이다. 1365년(공민왕 19년)에 난산으로 사망했다. 시호는 처음 인덕공명자예선안왕태후(仁德恭明慈睿宣安王太后)를 내렸다가 차후 원에서 내린 휘의노국대장공주(徽懿魯國大長公主)로 교체토록 하고, 결국 이를 합성해 인덕공명자예선안휘의노국대장공주(仁德恭明慈睿宣安徽懿魯國大長公主)로 했다. 우왕 때는 인덕태후(仁德太后)라 했다. 올바른 호칭은 아니지만 이 때문에 인덕.. 더보기
신해통공, 정조, 육의전 이외에는 난전을 금할 수 없게 하다. 신해통공, 정조, 육의전 이외에는 난전을 금할 수 없게 하다. 신해통공(辛亥通共)은 조선 후기인 1791년(정조 15년) 시전의 국역은 존속하되 그들의 도고 상업(금난전권)은 금지시킨 조처이다. 통공정책 가운데 하나이다. 18세기에 접어들면서 서울에는 많은 새로운 시전이 설립되어 6의전 및 기성의 일반 시전과 같이 모두 금난전권을 행사하고 도 고 활동을 전개하였다. 도시 상업의 발달로 인한 시전 수의 증가는 지극히 자연적인 현상이었지만, 시전의 도고권이 육의전과 같은 몇몇 관수품 조달상에 한정되지 않고 도회지인의 생필품 상인 전부에게 주어짐으로써 생기는 폐단은 대단히 컸다. 이에 대해 영세 사상(私商)층이 부단히 공세를 펼쳤으며, 또한 도회지 세궁민이 크게 반발하게 되자 조선 정부도 절정에 달한 도고 상.. 더보기
광해군의 어머니, 공빈 김씨, 광해군 폐위 후 시호와 능호 모두 삭탈되다. 광해군의 어머니, 공빈 김씨, 광해군 폐위 후 시호와 능호 모두 삭탈되다. 공빈 김씨(恭嬪 金氏, 1553년 11월 16일 ~ 1577년 6월 13일) 또는 공성왕후(恭聖王后)는 조선의 제 14대 왕 선조의 후궁이자 추존왕후이며 임해군, 광해군 형제의 생모이다. 광해군이 왕으로 즉위하면서 왕후로 추존되어 자숙단인공성왕후(慈淑端仁恭聖王后)의 시호와 성릉(成陵)의 능호가 올려졌으나 광해군 폐위 후 시호 및 능호는 모두 삭탈되었다. 존호는 명헌(明獻)이다. 본관은 김해이다. 생애 사포(司圃)를 지내고 사후 증 의정부 영의정 해령 부원군(海寧府院君)에 추증된 김희철의 딸로 1553년 11월 16일 (음력 10월 11일)에 태어났다. 궁인으로 입궐하여 선조의 승은을 입은 뒤 내명부 정3품 소용(昭容)이 되었다. .. 더보기
폐가입진, 이성계가 창왕을 내쫓고 공양왕을 옹립하다. 폐가입진, 이성계가 창왕을 내쫓고 공양왕을 옹립하다. 폐가입진(廢假立眞, 폐가립진)은 1389년에 고려(高麗)의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이자 섭정(攝政)이었던 이성계(李成桂)가 창왕(昌王)을 보위에서 내쫓아 몰아 내고 공양왕(恭讓王)을 보위에 추대하여 옹립한 사건이다. 고려(高麗) 시대 말기인 1389년 11월 당시 고려(高麗)의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이었던 이성계(李成桂)가 우왕(禑王)의 아들 창왕(昌王)을 보위에서 내쫓아 몰아 내고 고려 왕족 종실 출신의 공양왕(恭讓王)을 허수아비 군주로 추대하여 옹립였다. 그리고 1개월 후 1389년 12월 31일 우왕(禑王)과 그의 아들 창왕(昌王) 두 폐주를 모두 공민왕(恭愍王) 치세 말기인 1371년에 사형 집행된 고려의 불교 승려 겸 정치가 신돈(辛旽, 본관은.. 더보기
초계문신, 정약용 초계문신제의 문제점을 비판하다. 초계문신, 정약용 초계문신제의 문제점을 비판하다. 초계문신(抄啓文臣)은 조선 후기 규장각에서 특별교육과 연구과정을 밟던 문신(文臣)들을 칭하는 용어이다. 이 제도는 세종때부터 시행되었던 사가독서제(賜暇讀書制)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이며 그 운영 방식은 1781년 편찬된 문신강제절목(文臣講製節目)에 규정되어 있다. 초계문신은 37세 이하의 당하관 중에서 선발하여 본래의 직무를 면제하고 연구에 전념하게 하며 1개월에 2회의 구술고사와 1회의 필답고사로 성과를 평가하게 하였는데 규장각을 설립한 정조가 직접 강론에 참여하거나 직접 시험을 보며 채점하기도 하였다. 교육과 연구의 내용은 유학을 중심으로 하였으나 문장 형식이나 공론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고 경전의 참뜻을 익히도록 하였으며 40세가 되면 초계문신에서 졸업.. 더보기
암행어사, 임지에 도달할 때까지의 생존율은 30% 미만이었다. 암행어사, 임지에 도달할 때까지의 생존율은 30% 미만이었다. 암행어사(暗行御史)는 조선 시대에 몰래 지방에 파견되어 지방관의 감찰과 백성의 사정을 조사하는 일을 비밀리에 수행했던 국왕 직속의 임시 관리이다. 일명 수의·직지라고도 한다. 전국 지방행정의 감찰은 본래 사헌부의 임무이지만 교통과 통신수단의 불편으로 지방관의 악정을 철저히 적발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따라서 국왕이 비밀리에 어사를 임명하여 각 지방에 파견하여 변복을 하고 비밀감찰의 임무를 맡게 하였다. 암행어사는 각종 어사 중의 하나로 다른 어사와는 달리 임명과 임무가 일체 비밀인 것이 특징이다. 성종 때 지방 수령의 비리가 크게 문제가 되면서 성립했는데, 조선 후기 삼정문란이 심해지면서 더욱 활발히 시행되었다. 암행어사라는 말이 처음 쓰인 .. 더보기
섭정, 국왕을 대신해 통치권을 받아 국가를 다스리다. 섭정, 국왕을 대신해 통치권을 받아 국가를 다스리다. 섭정(攝政)은 군주가 통치하는 국가에서 군주가 어려서 정무를 수행할 능력이 없을 때 또한 군주가 병으로 정사를 돌보지 못 할 때 국왕을 대신해서 통치권을 받아 국가를 다스리던 사람이나 그 일을 가리킨다. 동양에서는 황태자나 왕세자가 다스리는 것과 대리청정, 황태후나 대왕대비 등 여자들이 다스리는 것은 수렴청정 그리고 신 하 중 고명대신인 대신이 다스리는 것 또는 그 대신을 섭정승(攝政丞)이라 한다. 조선에서는 섭정이라는 용어가 거의 쓰이지 않고, 수렴청정과 대리청정이라는 말이 주로 쓰였다. 동양에서는 다음과 같은 때에 섭정이 이루어졌다. 조선 : 종의 대왕대비인 정희왕후 윤씨, 고종의 대왕대비인 신정황후 조씨 (그러나 실제 정사는 흥선대원군이 돌보았다.. 더보기
광해군, 조선의 사정에 맞추어 실리를 취하는 중립외교를 하다. 광해군, 조선의 사정에 맞추어 실리를 취하는 중립외교를 하다. 광해군은 즉위한 뒤 명나라와 후금 사이에서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지 않고, 조선의 사정에 맞추어 실리를 취하는 외교 정책을 취하게 되는데, 이를 광해군의 중립외교(光海君-中立外交)라고 한다. 뒤에 인조반정의 빌미가 된다. 선조는 왜란이 끝나고도 9년이나 더 집권한 다음 타계했으며, 1608년에 세자 광해군(光海君, 1608~1623)이 그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광해군은 유능한 왕자로서 왜란 때에는 항일의 공로도 매우 컸으나, 혈통상으로는 이복동생인 영창대군(永昌大君)에 비해 불리한 조건에서 왕위에 올랐다. 이것이 광해군시대를 어렵게 만든 요인이 되었다. 광해군을 추종한 북인은 원래 동인 중에서 이황 문인을 제외한 여러 파벌이 연합한 붕..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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