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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사화

정여창, 연산군의 스승이었으나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유배지 종성에서 사망하다. 정여창, 연산군의 스승이었으나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유배지 종성에서 사망하다. 정여창(鄭汝昌, 1450년 음력 5월 5일 ∼ 1504년)은 조선전기의 문신, 성리학자, 작가이다. 율정(栗亭) 이관의(李寬義)의 문하에서 수학하다 1456년(세조 11년) 이시애의 난 으로 아버지 정육을이 전사하자 세조의 특명으로 의주판관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였다. 그 뒤 점필재 김종직(佔畢齋 金宗直)의 문하에서 수학하며 1490년(성종 20년) 학행으로 관직에 나갔으나 그해의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연산군의 스승이었으나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배소에서 사망한다. 그 뒤 갑자사화로 부관참시된다. 사후 복권되고, 중종조에 이르러 동국도학(東國道學)의 종(宗)으로 숭상됨에 이르러 문묘에 종사되었다. 자는 백욱(伯勗), 호는 일두(一蠹),.. 더보기
유자광, 중종반정에 참여하여 정국공신이 되다. 유자광, 중종반정에 참여하여 정국공신이 되다. 류자광(柳子光, 1439년 ~ 1512년 6월)은 조선의 초기의 무신, 군인, 교육자, 유학자, 작가이다. 본관은 영광(靈光), 자(字)는 우복(于復), 우천(宇天)이다. 1467년 이시애의 난의 토벌에 참여하여 공신이 되었다. 이후 이시애의 난, 남이의 옥 등으로 익대공신에 책록되었고 1506년에는 중종반정에 참여하여 정국공신이 되었다. 서얼(庶孼) 출신으로서 무사가 되었다가 이시애의 난의 진압 때 세운 공로로 세조의 총애를 얻어 1468년(세조 13년) 병조정랑으로 온양별시문과(溫陽別試文科)에 장원으로 급제하였으며, 관직은 병조판서, 판한성부사, 황해도와 경상도의 관찰사 등을 지냈다. 그 뒤 의정부 좌찬성 등을 거쳐 대광보국숭록대부 행의정부좌찬성, 겸 영.. 더보기
임사홍, 연산군에게 장흥군부인 신씨와의 상봉을 주선하다 임사홍, 연산군에게 장흥군부인 신씨와의 상봉을 주선하다. 임사홍(任士洪, 1445년 ~ 1506년 음력 9월 2일)은 조선시대 전기의 문신이자 외척, 사상가, 성리학자이다. 본관은 풍천으로 그의 6대조 임자송은 친원파이다. 초명은 사의(士毅), 자는 이의(而毅)이다. 신수근 등과 함께 폐비 윤씨 사사 사건을 연산군 에게 알려 갑자사화의 빌미를 제공한다. 음서로 출사한 뒤 사재감사정과 사직을 거쳐 1465년 조선 왕실의 인척이자 겹사돈으로 효령대군의 손녀이며 보성군의 딸인 전주 이씨와 결혼하여 왕실의 인척이 되었으며, 그 아들 임광재는 예종의 딸 현숙공주와 혼인하고, 다른 아들 임숭재는 성종의 딸 휘숙옹주와 혼인하여 두 임금의 사돈이기도 했다. 다른 아들 임희재는 사림파 정치인이었다. 관료생활 초반 한명회.. 더보기
남곤, 조광조 일파를 숙청하는데 가담, 사림으로 부터 변절자로 몰리다. 남곤, 조광조 일파를 숙청하는데 가담, 사림으로 부터 변절자로 몰리다. 남곤(南袞, 1471년 ~ 1527년 3월 10일)은 조선시대 전기의 문신, 유학자이며 정치인, 교육자, 작가, 시인이다. 초기 사림파 정치인이었으며 성리학의 지식에 해박하였으며, 사장학과 경서 해석에도 재주가 있었다. 자(字)는 사화(士華), 호는 지정(止亭)·지족당(知足堂)·지족(知足), 시호는 문경(文敬), 본관은 의령(宜寧)이다. 사림파 출신 인사 중 김전 등과 함께 심정·홍경주 등이 기묘사화를 일으키는 것을 묵인, 동조하였다. 1494년(성종 25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부제학, 이조참판, 사헌부대사헌, 이조판서, 홍문관대제학, 의정부좌찬성과 우찬성, 예조판서를 거쳐 기묘사화 이후 대광보국숭록대부로 승진하여 의정부좌의.. 더보기
중종반정, 신하들이 주체가 되어 왕위를 교체하다. 중종반정, 신하들이 주체가 되어 왕위를 교체하다. 중종반정(中宗反正)은 1506년 9월 18일(음력 9월 2일) 연산군이 폐위되고 진성대군 이역(李懌)이 옹립된 사건을 말한다. 연산군은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일으켜 많은 선비들을 제거하였다. 또한 경연(經筵) 폐지·신언패(愼言牌) 실시·성균관(成均館)의 연락(宴樂) 장소화·도성 밖 30리 내의 민가 철거·언문 도서의 폐기 등 폭정을 일삼았다. 그리고 원각사를 폐하여 연방원(聯芳院)으로 고치고, 흥청(興淸)들과 기거를 함께하며, 채청사(採靑使)를 각 지방에 보내 미녀를 끌어들이고, 유희와 안락으로 세월을 보내며 국정을 도외시하자, 이에 훈구 세력을 중심으로 반정의 움직임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전 이조참판(吏曹參判) 성희안은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박원종, .. 더보기
연산군, 정사를 독단적으로 처리하다. 중종 반정으로 폐위되다. 연산군, 정사를 독단적으로 처리하다. 중종 반정으로 폐위되다. 연산군(燕山君, 1476년 11월 23일 (음력 11월 7일) ~ 1506년 11월 20일 (음력 11월 6일), 재위 1494년 ~ 1506년)은 조선의 제10대 임금이다. 성은 이(李), 휘는 융(㦕), 본관은 전주(全州) . 성종의 장남으로 폐비 윤씨의 소생이며, 비는 영의정 신승선(愼承善)의 딸이다. 모후 폐비 윤씨의 폐출 이후 정현왕후의 손에 자랐으나, 자신의 생모가 폐비 윤씨임을 알았다. 그 뒤 어머니 폐비 윤씨를 왕비로 추숭하려 하자, 성종의 유명을 내세워 왕비 추숭을 반대한 사림파 문인들과 충돌하다가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빌미로 사림파를 제거했다. 또한 폐비 윤씨 사사 사건을 빌미로 발생한 갑자사화에서는 사림파와 양대 파벌을 이..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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