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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국대전

성종, 조선의 태평성대와 그 이면, 평가와 비판 성종, 백성들은 건국 이후 가장 태평성대한 세월을 맞이하다. 즉위 이후 수렴 청정 기간 반발세력을 무마하고자 왕위계승권에서 밀려난 월산대군과 제안대군을 군에서 대군으로 책봉하고 이들을 좌리공신에 임명하였다. 13살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즉위 초반에는 할머니인 자성대왕대비 윤씨의 수렴청정을 받았다. 당시 유력한 국왕 후보들을 모두 제치고 한명회와 정희왕후의 뜻에 따라 왕위에 올랐던 만큼 섭정을 받은 7년 동안 국정의 모든 결정권은 신숙주, 한명회 등의 원로대신들에게 있었다. 그러나 수렴청정을 끝낸 1476년(성종 7년)부터는 원로대신들이 국정의 중요한 결정에 참여하는 원상 제도를 폐지하여 결재권을 되찾았다. 친정을 시작한 이후 그는 할아버지 세조가 권신들을 견제할 목적으로 길재-김숙자 등의.. 더보기
승정원일기 승정원 일기 - 국가기록 관리체계의 모범, 2001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 는 국정 전반에 걸친 매일매일의 일기를 날짜 순으로 총 망라해 기록한 것입니다. 따라서 가장 자세하고도 기본적인 사료가 됩니다. 조선시대 당시에도 정책에 참고할 일이 있으면 반드시 에서 전례를 찾았습니다. 국왕의 비서실 승정원 조선 태조 원년(1392) 7월에 반포된 관제에 의하면 원래 왕명출납의 일은 고려의 제도를 이어받아 중추원의 중요 업무 중 하나였는데 이때 그 속아문으로 승지방을 설치하였습니다. 승지방은 왕명출납의 실무를 맡았고 그 장관으로 도승지를 두어 정3품으로 하였습니다. 물론 이때의 관제에 의하면 중추원은 왕명출납 이외에 군기도 관장하는 강력한 기구였습니다. 그러나 왕자의 난 이후 태종이 정권을 장악하자 사병을 폐지..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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