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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창의 난

헌덕왕, 당에 정기적으로 조공을 행하다. 헌덕왕, 당에 정기적으로 조공을 행하다. 헌덕왕(憲德王, ? ~ 826년, 재위: 809년 ~ 826년)은 신라의 제41대 왕이다. 성은 김씨(金氏)이고 이름은 언승(彦昇)이고, 신라 원성왕의 장남인 김인겸의 차남으로 소성왕의 동생이다. 즉위 전 원성왕 6년(790년)에 사자로서 당나라로 갔고, 귀국후에 대아찬이 되었다. 다음 791년 전 시중 제공(悌恭)의 반란 진압에 공적을 세었고, 794년에는 당시 시중 김숭빈(金崇斌)이 물러나고 언승이 시중에 발탁 되었다. 795년에는 이찬, 796년에는 병부령(兵部令)을 거치고, 800년에 애장왕이 즉위 하면서 그 섭정이 되었다. 게다가 801년에는 왕의 행차를 총괄하는 책임자가 되어, 그 다음에는 상대등이 되었다. 809년 7월 동생과 함께 애장왕을 죽이고, .. 더보기
김헌창의 난, 부친 김주원이 왕이 되지 못하자 반란을 일으키다. 김헌창의 난, 부친 김주원이 왕이 되지 못하자 반란을 일으키다. 김헌창의 난(金憲昌-亂, 822년)은 신라 제41대 헌덕왕 때 김헌창이 자기의 부친 김주원(周元)이 왕이 되지 못한 것에 원한을 갖고 일으킨 반란이다. 신라 말기는 정치적인 혼란기를 겪으며 왕위 쟁탈을 중심으로 음모, 반역, 골육상잔의 난이 그치지 아니하였다. 800년 제40대 애장왕이 즉위하자, 섭정이 되어 상대등에 오른 원성왕계 자손인 김언승(이후 41대 헌덕왕)은 세력을 쌓아 조카인 애장왕을 살해하고 809년 제41대 헌덕왕에 오른다. 이때 태종 무열왕계 자손으로 왕위 경쟁을 벌이던 김주원은 명주(강릉)로 물러나게 된다. 그러나 그의 아들 김헌창은 계속 중앙정계에 남아 807년에는 시중으로 임명되었고, 당시 상대등 김언승에 버금가는 권..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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