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만리, 한글 창제를 반대한 대표적 인물로 세종의 노여움을 사다.
최만리, 한글 창제를 반대한 대표적 인물로 세종의 노여움을 사다. 최만리(崔萬理, ? ~ 1445년 10월 23일)는 조선시대 전기의 문신, 정치인, 유학자이자 철학자, 법학자이다. 본관은 해주, 자(字)는 자명(子明), 호는 강호산인(江湖散人)이다. 해주 최씨의 시조인 해동공자 최충(崔沖)의 12대 후손이고, 최자(崔滋)의 6대손이며 최하(崔荷)의 아들이다. 외할아버지는 지문하성사(知門下省事) 지용수(池龍壽)이다. 생원시에 합격한 뒤 1419년(세종 1년)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관직에 나갔으며, 홍문관과 집현전에서 오래 근무하였다. 1427년에는 다시 중시문과(重試文科)에 급제하였다. 그 뒤 집현전 부제학, 강원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조선 전기의 명신으로 청백리로 녹선되었으나, 세종대왕이 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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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팽년, 사육신 중 하위지와 함께 유일하게 친 후손이 존재하다.
박팽년, 사육신 중 하위지와 함께 유일하게 친 후손이 존재하다. 박팽년(朴彭年, 1417년 ~ 1456년)은 조선 전기의 문신 겸 학자로 사육신의 한 사람이다. 본관은 순천(順天). 자(字)는 인수, 호는 취금헌(醉琴軒), 시호는 충정(忠正)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의 학사로 활동했고, 관직은 형조 참판에 이르렀다. 손자 박일산이 생존하여 사육신 중 하위지가와 함께 후손이 전한다. 중종 때의 권신 박원종의 일족이기도 하다. 생애 조선 세종 때인 1434년, 문과에 급제하여 성삼문 등과 함께 집현전 학사가 되어 편찬 사업에 참가하였고 세종의 총애를 받았다. 황보인·김종서 등과 함께 문종과 단종을 보필하였다. 세종 말년에 신숙주, 성삼문, 윤기견, 윤회, 김종서 등과 고려사절요, 고려사의 편찬과 간행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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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 노산군, 숙종 때 복위되어 단종으로 묘호가 정해지다.
단종, 노산군, 숙종 때 복위되어 단종으로 묘호가 정해지다. 단종(端宗, 1441년 8월 9일 (음력 7월 23일) ~ 1457년 11월 7일 (음력 10월 21일), 재위 1452년~1455년)은 조선의 제6대 왕이다. 본관은 전주 이씨(全州 李氏)이고, 휘는 홍위(弘暐)이다. 1455년 숙부 세조의 정변으로 양위하였다가, 세조 측근들의 탄핵으로 강원도 영월군 청령포로 유배되었다가 사사 혹은 교살 되었다. 폐위되어 죽어서 시호를 받지 못한 채 노산군(魯山君)으로 불리다가 이후 중종 때에 복권 상소가 올려졌으나 거절당했고, 숙종 대에 가서야 성리학자들의 건의로 정종과 함께 복위되어, '예(禮)를 지키고 의(義)를 잡는다' 라는 뜻의 단종(端宗)으로 묘호가 정해졌으며, 정식 시호는 단종공의온문순정안장경순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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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숙주, 변절하여 수양대군 편에 가담하다.
신숙주, 변절하여 수양대군 편에 가담하다. 신숙주(申叔舟, 1417년 8월 2일 (음력 6월 20일) ~ 1475년 7월 23일 (음력 6월 21일)는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문신·정치가이며 언어학자, 외교관이다. 훈민정음 창제자의 한사람이다. 본관은 고령(高靈), 자(字)는 범옹(泛翁), 호는 희현당(希賢堂) 또는 보한재(保閑齋)이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신장(申檣)의 아들이자 윤회의 손녀사위이기도 하다. 1438년(세종 20년) 생원, 진사시에 모두 합격하고 1439년(세종 21년) 친시문과(親試文科)에 급제하여 세종 때 집현전의 학사로서 성삼문, 박팽년, 정인지 등과 함께 훈민정음의 창제와 연구에 기여하였다.1447년(세종 29년) 문과 중시(重試)에 4등으로 합격하여 당상관이 되었으며, 이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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