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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호

기자조선, 시대에 따른 관점 기자조선, 시대에 따른 관점 기자조선(箕子朝鮮)은 고조선의 왕조 중 하나인 고대 국가이다. 조선시대에는 일반적으로 고조선을 셋으로 구분하였는데 기자가 세웠다고 하는 기자조선은 이 중 두 번째 시기에 해당된다. 명칭은 단군조선과 같은 ‘조선’이지만, 구분을 위해 후조선(後朝鮮) 또는 기씨조선(箕氏朝鮮)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기자조선은 실재 여부를 비롯하여 건국 과정, 성격에 대한 인식이 시대에 따라 논란이 있다. 현재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사학계 중 다수는 일반적으로 기자조선에 대한 고전적인 인식(기자동래설, 단군조선-기자조선-위만조선의 승계 등)을 부정하는 편이며, 그 유래와 실체에 대한 여러 주장이 있다. 기원전 1122년부터 기원전 195년 경까지 존속하였다고 한다. 개요 근대 역사학이 .. 더보기
박혁거세, 신라 초대 국왕, 세상을 밝히다. 박혁거세, 신라 초대 국왕, 세상을 밝히다. 혁거세 거서간(赫(爀)居世 居西干, 기원전 69년 ~ 기원후 4년, 재위: 기원전 57년 ~ 기원후 4년)은 신라의 초대 국왕이다. 거서간은 진한의 말로 왕 혹은 귀인의 칭호라 한다. 《삼국유사》에서 일연은 혁거세 거서간이 백마가 낳은 알에서 태어났다고 하였으나, 사소부인(娑蘇夫人)이 혁거세 거서간을 낳았다는 전설도 함께 전하고 있다. 혁거세(赫(爀)居世)란 표기는 한자 음과 뜻을 합친 표기로서, 赫(爀)은 뜻인 "밝"에 가까운 음으로 읽으며, 世는 세상을 뜻하는 고유어 "누리", "뉘"에 가깝게 읽는다. 비슷한 음을 딴 다른 표기로 弗矩內(불구내)가 있으며, 결국 본디 이름은 밝아누리(세상을 밝히다)에 가깝다. 박씨라는 성씨 또한 왕건이 건국한 고려시대 때부.. 더보기
준왕, 위만이 모반을 일으키자 남쪽으로 피신하다. 준왕, 고조선과 한의 왕 준왕(準王, ? ~ ?, 재위: 기원전 3세기 후반 ~ 기원전 194년 ~ 기원전 2세기)는 고조선과 한(韓)의 왕이다. 성(姓)은 한(韓)이며, 명(名)은 준(準)이다. 기원전 194년에 위만(衛滿)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남쪽으로 망명하였으며, 한(韓)을 세웠다고 한다. 이후의 행적에 관해서는 명확히 기록된 바가 없다. 생애 고조선의 왕인 부왕(否王)의 아들이다. 이덕무의 《앙엽기》(盎葉記), 이만운의 《기년아람》(紀年兒覽), 안정복의 《동사강목》(東史綱目)에 따르면 기자조선의 제41대 군주인 준왕(準王, ? ~ ?)은 기자조선의 제40대 군주인 종통왕(宗統王, 부왕(否王))의 아들이며 기원전 220년부터 기원전 195년까지 재위했다고 한다. 또한 그의 휘는 준(準)이었고 시호는.. 더보기
연개소문, 독립자주의 정신과 대외경쟁의 담략을 지니다. 연개소문, 독립자주의 정신과 대외경쟁의 담략을 지니다. 연개소문(淵蓋蘇文, 603년 ~ 666년?)은 고구려 말기의 장군이자 정치가이다. 일명 개금(蓋金)으로도 불린다. 중국의 《구당서(舊唐書)》, 《신당서(新唐書)》 및 《자치통감(資治通鑑)》 등의 사서와, 이를 토대로 재편집한 《삼국사기 (三國史記)》 열전에는 중국 당나라 고조(高祖)의 휘(諱) 이연(李淵)의 '연(淵)'자를 피하기 위해 천개소문(泉蓋蘇文)으로 기록하였다. 일본의 사서인 《일본서기》에는 이리가수미(伊梨柯須彌 이리카스미[*])라고도 표기되어 있어, 한국의 고대 인명의 유추에 단서가 된다. 생애 연개소문의 아들로서 고구려가 멸망할 때 당에 투항하여 당의 관직을 받은 연남생(淵男生)의 묘지명 『천남생묘지명(泉男生 墓誌銘)』에 보면, 남생의 .. 더보기
신채호, 국사연구와 교육을 중시하다. 신채호, 국사연구와 교육을 중시하다. 신채호(申采浩, 1880년 12월 8일 ~ 1936년 2월 21일)는 한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주의적 아나키스트, 사학자이다. 구한 말부터 언론 계몽운동을 하다 망명,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하였으나 견해차이로 임정을 탈퇴, 국민대표자회의 소집과 무정부주의 단체에 가담하여 활동했으며 사서 연구에 몰두하기도 했다. 본관은 고령, 호는 단재(丹齋)·일편단생(一片丹生)·단생(丹生)이다. 필명은 금협산인·무애생·열혈생·한놈·검심·적심·연시몽인 등이 있고, 유맹원·박철·옥조숭·윤인원 등을 가명으로 사용하였다. 출생과 성장 신채호는 1880년 12월 8일(음력 11월 7일) 충청도 신광식과 밀양 박씨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세조 때의 재상 범옹 신숙주의 18.. 더보기
김유신, 삼한일통을 이루는데 중추적 역할을 하다. 김유신, 삼한일통을 이루는데 중추적 역할을 하다. 김유신(金庾信, 595년 ~ 673년 음력 7월 1일(양력 8월 18일))은 신라의 군인 겸 정치가이자 외척이었다. 신라에 귀순한 가야 왕족의 후손으로서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무너뜨리고 삼한일통을 이루는 데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 신라의 장군이며 정치가이다.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과 문무왕(文武王)을 도와 신라의 삼국 통일 전쟁을 보좌하였으며, 진평왕(眞平王)부터 문무왕에 이르는 다섯 명의 왕을 섬겨 신라 정권의 중추적 인물로 성장하였으며, 신하로서 왕으로 추봉된 유일한 인물이며, 무열왕 의 즉위 및 삼국 통일 전쟁 등에 기여한 공적을 인정받아 왕족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순충장렬흥무대왕(純忠壯烈興武大 王)으로 추존되었다. 신라의 역사에서뿐 아니라 후대 고려.. 더보기
김춘추, 태종 무열왕 삼국통일의 기틀을 다지다. 태종 무열왕릉 김춘추, 태종 무열왕 삼국통일의 기틀을 다지다.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 604년 ~ 661년 음력 6월)은 신라(新羅)의 제29대 임금(재위 654년 ~ 661년)이다. 무열왕(武烈王)으로 불리기도 한다. 성은 김(金), 휘는 춘추(春秋)이다. 진골(眞骨) 출신으로 이찬(伊飡)에 이르기도 했던 김용춘(金龍春)과 진평왕의 차녀 천명공주(天明公主)의 아들이다. 선덕(善德) · 진덕(眞德) 두 조정에 걸쳐 국정 전반, 특히 외교 문제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특히 진덕여왕 때는 이찬(伊飡)에 이르게 되고 진덕여왕 사후 대리청정으로써 국인의 추대를 받은 알천의 사양으로 진골 출신 최초의 신라 국왕으로 즉위하였으며 백제를 멸망시키고 삼국통일의 기틀을 다졌다. 그렇게 신라 중대왕실(中代王室)의 .. 더보기
묘청의 난, '조선역사상 일천년래 제일대 사건' 묘청의 난, '조선역사상 일천년래 제일대 사건' 묘청의 난(1135년 1월 19일(음력 1월 4일) ~ 1136년)은 승려 묘청 등이 금국정벌론과 서경천도론이 개경 귀족들의 방해로 무 산되자 서경(西京)에서 국호를 대위(大爲), 연호를 천개(天開), 군호(軍號)를 천견충의군(天遣忠義軍)이라 하여 대위국(大爲 國)을 선언하고 일으킨 반란이다. 대위국이라는 새로운 국가이념 차원의 반란은 김부식이 지휘하는 진압군의 공격을 받고 내부 분열을 일으키기도 했으나, 1년간 치열하게 지속되었다. 일제시대의 독립운동가이자 민족주의 사학의 선구자인 단재 신채호는 묘청의 난을 두고 '조선역사상 1천년래 제1대 사건' 이라 했다. 묘청의 난을 가리키는 요즘 이름으로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이 있다. 배경 서경천도론을 처음 내세운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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