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인종

효릉 인종의 묘, 조선 역대 국왕 중 재위기간이 가장 짧은 9개월의 기간을 재위하다. 효릉 인종의 묘, 조선 역대 국왕 중 재위기간이 가장 짧은 9개월의 기간을 재위하다. 위치 : 경기 고양시 덕양구 서삼릉길 233-126 능의 형식 : 쌍릉 능의 조성 : 1545년(명종 즉위), 1578년(선조 11) 능의 구성 효릉은 조선 12대 인종과 인성왕후 박씨의 능이다. 효릉은 같은 언덕에 왕과 왕비의 봉분을 나란히 조성한 쌍릉의 형식으로 정자각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이 인종, 오른쪽이 인성왕후의 능이다. 진입 및 제향공간에는 홍살문, 판위, 향로와 어로, 정자각, 비각이 배치되어 있다. 인종의 능침은 『국조오례의』의 형식에 따라 병풍석과 난간석을 둘렀다. 효릉 조성 당시에는 병풍석이 없었으나 1578년(선조 11)에 인성왕후의 능을 조성할 때 병풍석을 추가로 설치하였다. 인성왕후의 능침은.. 더보기
충선왕, 폐위된 후 다시 복귀한 군주, 만권당을 세워 학문연구에 전념하다. 충선왕, 폐위된 후 다시 복귀한 군주, 만권당을 세워 학문연구에 전념하다. 충선왕(忠宣王, 1275년 10월 20일 (음력 9월 30일) ~ 1325년 6월 23일 (음력 5월 13일)은 고려 제26대 국왕(재위: 1298년, 복위: 1308년~1313년)이다. 초휘는 원(願), 휘는 장(璋), 자는 중앙(仲昻), 원에서 내린 시호는 충선왕(忠宣王)이며, 공민왕이 올린 시호는 선효대왕(宣孝大王)이다. 몽골식 이름은 이지르부카( 한국 한자: 益知禮普花 익지예보화)이며, 정비(正妃)는 계국대장공주이다. 고려에서 처음으로 즉위하였다가 폐위된 후 다시 복귀한 군주이기도 하다. 생애 후반에는 귀국을 기피하고 원나라에 체류하며 만권당을 세워 독서와 학문 연구, 서화 그리기 등에 전념하기도 했다. 즉위 이전 1277.. 더보기
명종, 자신의 세력기반을 지니지 못한 채 문정왕후와 윤원형의 전횡 속에서 왕위를 지키다. 명종, 자신의 세력기반을 지니지 못한 채 문정왕후와 윤원형의 전횡 속에서 왕위를 지키다. 명종(明宗, 1534년 7월 3일 (음력 5월 22일)~ 1567년 8월 2일 (음력 6월 28일))은 조선의 제13대 임금이다. 성은 이(李), 휘는 환(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대양(對陽). 사후 시호는 명종공헌헌의소문광숙경효대왕(明宗恭憲獻毅昭文光肅敬孝大王)이며 중종의 차남으로 문정왕후의 유일한 친아들이다. 이복 형 인종(부왕 중종의 적장자)이 후사 없이 붕어하기 3일 전 인종의 선위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이후로 모후인 문정왕후의 섭정, 친정 이후에는 외척인 윤원형, 윤원로, 윤춘년, 윤백원, 이량, 심연원, 심통원 등에 의해 정사가 좌지우지되면서 혼란을 겪었다. 아들 순회세자를 일찍 잃고 이복.. 더보기
효혜공주, 중종의 장녀, 산후병으로 향년 21세로 사망하다. 효혜공주, 중종의 장녀, 산후병으로 향년 21세로 사망하다. 효혜공주(孝惠公主, 1511년 6월 13일(음력 5월 18일) ~ 1531년 5월 6일(음력 4월 20일))는 조선 중기의 공주이다. 제11대 왕 중종의 장녀로, 중종의 계비 장경왕후 윤씨(章敬王后 尹氏) 소생이다. 제12대 왕 인종의 친누나이자 김안로의 며느리이다. 본관은 전주, 이름은 옥하(玉荷)이다. 생전 부친인 중종의 총애를 받았다고 전해지며, 김안로가 복관하는 데에 구실을 만들어준 존재이다. 생애 1511년(중종 6) 6월 13일(음력 5월 18일) 탄생하였다. 1515년(중종 10) 3월 16일(음력 3월 2일) 5세 때 모후인 장경왕후를 여의었다. 어머니를 잃은 후 성종의 후궁인 남씨와 이모 윤씨에 의해 양육되었다. 1520년(중종.. 더보기
김안로, 시비걸기를 좋아하여 여러차례 옥사를 일으키다 김안로, 시비걸기를 좋아하여 여러차례 옥사를 일으키다. 김안로(金安老, 1481년 ~ 1537년 10월 27일)은 조선 중기의 문신, 외척이다. 자는 이숙(頤叔), 호는 희락당(希樂堂), 용천(龍泉), 퇴재(退齋), 본관은 연안(延安)이다. 김전의 형 김흔의 셋째 아들이다. 김제남의 종증조부이다. 중종의 딸 효혜공주(孝惠公主)의 남편인 연성위(延城尉) 김희(金禧)는 그의 아들이다. 1501년(연산군 7) 진사가 되고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고 홍문관과 사간원 등의 요직을 거쳐 대사간을 지냈다. 언관으로 있으면서 여러 시정의 폐단을 해소할 것을 건의하였으나 시비걸기 좋아하는 인물로 몰리기도 했다. 1519년 기묘사화로 조광조 일파와 함께 유배되었다가 아들 김희가 중종의 장녀 효혜공.. 더보기
윤임, 인종의 삼촌, 명종조 권신들의 권력농단에 대한 책임 논란에 휩싸이다. 윤임, 인종의 삼촌, 명종조 권신들의 권력농단에 대한 책임 논란에 휩싸이다. 윤임(尹任, 1487년 ~ 1545년 8월 30일) 조선시대 중기의 무신이자 인척. 자는 임지(任之), 본관은 파평이다. 영돈녕부사 파원부원군(坡原府院君) 윤여필의 아들이자 중종의 비인 장경왕후의 오빠로, 1506년 중종반정에 참여하여 중종을 옹립하는데 기여하였다. 1512년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은 숭정대부의정부좌찬성 겸 판의금부사, 판돈녕부사 겸 오위도총부 도총관에 이르렀다. 누이 장경왕후 사후에 자신의 집안인 파평 윤씨에서 문정왕후를 새 왕비로 추천하였는데, 이후 윤원형 일가와는 앙숙이 됐다. 이후 대윤(大尹)의 거두로 윤원형, 윤원로 등 소윤(小尹) 일파와 대립하였다. 윤임은 인종의 외삼촌이었고 윤원형은 명종의 외삼촌이었는.. 더보기
문정왕후, 경원대군이 즉위하자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며 섭정하다. 문정왕후, 경원대군이 즉위하자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며 섭정하다. 문정왕후 윤씨(文定王后 尹氏, 1501년 12월 2일(음력 10월 22일) ~ 1565년 5월 5일(음력 4월 6일))는 조선 중기의 왕후이자 섭정으로 중종(中宗)의 제2계비이다. 시호는 성렬인명문정왕후(聖烈仁明文定王后)이다. 1515년(중종 10년) 장경왕후가 승하하여 1517년(중종 12년)에 왕비로 간택, 책봉되었다. 1544년 대비가 되고, 1545년 아들 경원대군이 12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섭정이 되어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였으며, 국왕의 고유 권한인 인사문제에까지 개입한 그녀는 아들 명종(明宗)이 12세로 즉위한 1545년부터 1553년까지 8년간 수렴청정으로 섭정하였다. 파산부원군 정평공 윤지임(坡山府院君 靖平公 尹之任)과 .. 더보기
단경왕후, 7일의 왕비, 반정세력에 의해 폐위되다. 단경왕후, 7일의 왕비, 반정세력에 의해 폐위되다. 단경왕후 신씨(端敬王后 愼氏, 1487년~1557년 12월 27일(음력 12월 7일))는 조선 중종의 정비(正妃)이다. 시호는 공소순열단경왕후(恭昭順烈端敬王后)이다. 익창부원군 신도공 신수근(愼守勤)과 청원부부인 한씨(淸原府夫人 韓氏)의 딸로, 본관은 거창이다. 조선의 역대 왕비 중 제일 짧은 7일의 재위 기간을 보유하고 있으며, 역적의 딸로 연좌되어 폐출된 후 영조 때에 부모와 함께 복위되었다. 능은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일영리에 위치한 온릉이다. 1487년 2월 7일(음력 1월 14일)에 신수근(愼守勤)의 딸로 태어났다. 1499년(연산군 5년) 13살의 나이에 당시 진성대군에 봉해져 있던 중종과 결혼하여 부부인(府夫人)이 되었다. 1506년 중종반.. 더보기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