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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화

정승화, 김재규의 암살사건에 연루되어 이등병으로 예편되었다가 무죄판결을 받고 복권되다. 정승화, 김재규의 암살사건에 연루되어 이등병으로 예편되었다가 무죄판결을 받고 복권되다. 정승화(鄭昇和, 1929년 2월 27일 ~ 2002년 6월 12일)는 대한민국의 군인, 정치가이다. 한국 전쟁 무렵 백골부대의 대대장으로 활동했고 제22대 육군참모총장을 역임했다. 호(號)는 송산(松山), 벽옹(碧翁)이다. 12.12 쿠데타 이후 신군부 세력에 의해 김재규의 암살사건에 연루되어 보충역 이등병으로 예편되었다가 후에 문민정부에 와서 무죄판결을 받고 복권되었다. 그의 유해는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다. 생애 초반 정승화는 1929년 2월 27일에 경상북도 김천에서 태어났다. 그의 19대조 정종소는 성균관 사성을 역임했으나 단종 복위 운동이 실패로 돌아가자 낙향하였다. 그 뒤 18대조 정이교 사헌부 장령과.. 더보기
12.12 사태, 12.12 군사 반란, 전두환 소장 군부 권력을 장악해 정치적인 실세로 등장하다. 12.12 사태,12.12 군사 반란, 전두환 소장 군부 권력을 장악해 정치적인 실세로 등장하다. 12·12 군사 반란 또는 12·12사태는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과 노태우 등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이 최규하 대통령의 승인 없이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대한민국 육군 참모총장, 정병주 특수전사령부 사령관, 장태완 수도경비사령부 사령관 등을 체포한 사건이다. 일본에서는 숙군 쿠데타라고도 한다. 당시 보안사령관이던 전두환 소장은 12.12 군사 반란으로 군부 권력을 장악하고 정치적인 실세로 등장했다. 이후 1980년 5월 전두환을 중심으로 하는 신군부는 5·17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사실상 장악했고, 5·17 쿠데타에 항거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강경 진압했다. 전두환은 8월 22일에 육군.. 더보기
김재규, 2004년 10·26사태에 대한 재평가 시도 김재규, 2004년 10·26사태에 대한 재평가 시도 김재규(金載圭, 1926년 3월 6일 ~ 1980년 5월 24일)는 대한민국의 군인이자 정무직공무원이었다. 대한민국 건설부 장관과 중앙 정보부장을 지냈다. 1980년 5월 24일, 내란 목적 살인 및 내란 미수죄로 서울구치소(지금의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에서 사형되었다. 김재규는 1926년 3월 6일에 경상북도 구미에서 아버지 김형철과 어머니 권이금 사이에서 3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박정희의 고향 후배이자 육사 2기 동기이기도 하다. 1954년 5사단 36연대장, 제101연대장, 1956년 준장 진급, 1957년에는 육군대학 부총장을 지냈다. 1961년 5.16 군사정변 직후 반혁명 세력으로 몰려 일시 감금되었으나 박정희의 명령으로 석방된 이.. 더보기
10.26 사건, 중앙정보부 부장 김재규가 대통령 박정희를 시해하다. 10.26 사건, 중앙정보부 부장 김재규가 대통령 박정희를 시해하다. 10·26 사건(十二六事件) 또는 박정희 암살사건(朴正煕暗殺事件)은 1979년 10월 26일에 대한민국의 중앙정보부 부장 김재규 가 박선호, 박흥주 등과 함께 대통령 박정희와 경호실장 차지철을 살해한 사건이다. 십이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는 KBS 당진 송신소 개소식과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에 참석한 후 궁정동 안가(염동진의 아지트가 있 던 자리)에서 경호실장 차지철, 비서실장 김계원,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와 함께 연회를 가졌다. 연회 중에 박정희는 김재규의 총에 가슴과 머리를 맞았고 곧 수도육군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이송 중 세상을 떠났다. 당시 박정희의 나이는 만 62세였다. 김재규는 재판 과정에서 민주..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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