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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

왕규의 난, 고려 혜종(惠宗) 때의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일어난 사건 왕규의 난, 고려 혜종(惠宗) 때의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일어난 사건 왕규의 난(王規之亂)은 고려 초기 왕실의 외척 왕규(王規)가 자신의 손자인 광주원군(廣州院君)을 왕위에 등극시키기 위해 일으킨 반란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왕권이 미약한 데에서 발생한 고려 혜종(惠宗) 때의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일어난 사건으로 고려사에서 승자에 의해 왜곡된 기록의 대표적인 사례로 여겨진다. 반란 전 왕규는 고려 초기 광주(廣州)의 대호족으로, 양근 함씨 였으나 개국공신으로 왕씨 성을 하사 받게 된다. 태조는 왕규의 두 딸을 맞아들여 하나는 제15비(妃), 하나는 제16비를 삼았다. 제16비가 아들 하나를 낳으니 광주원군이라 하였다. 945년 왕규는 야심이 있어서 혜종에게 무고하기를 요(窯)와 소(昭)가 딴 마음.. 더보기
익안대군, 이방의, 성격이 온후하고 화미한 것을 일삼지 아니하다. 익안대군, 이방의, 성격이 온후하고 화미한 것을 일삼지 아니하다. 익안대군(益安大君, 1360년 ~ 1404년 9월 26일)은 고려 말기 사람이자 조선 전기의 왕족이다. 조선 태조의 셋째 아들로 이름은 방의(芳毅), 자는 관이(太寬), 시호는 안양(安襄)이다. 마한 안양공(馬韓安襄公)에 추증(追贈)되었다. 어머니는 신의왕후(神懿王后) 한씨(韓氏)이다. 부인은 증(贈) 찬성사(贊成事) 최인두(崔仁㺶)의 딸 철원 최씨(鐵原 崔氏)이다. 후에 마한 공정공(馬韓 恭靖公)에 추봉되었다. 생애 1392년(태조 1년) 8월 25일(음력 8월 7일) 조선 개국(朝鮮 開國)이후 여러 왕자(王子)들을 군(君)으로 봉(封)할 때에 익안군(益安君)에 봉작(封爵) 되었다. 이어 개국공신 1등에 추록되었다. 1398년(태조 15.. 더보기
이방간, 회안대군, 정도전을 제거할 때 가담하여 정사공신 1등에 책록되다. 이방간, 회안대군, 정도전을 제거할 때 가담하여 정사공신 1등에 책록되다. 회안대군[懷安大君, 1364년 7월 2일 ~ 1421년 4월 10일(음력 3월 9일)]은 고려 말기의 문신이자 조선 초기의 왕자이다. 본관은 전주 이씨이며, 이름은 방간(芳幹), 시호(諡號)는 양희(良僖), 호(號)는 망우당(忘牛堂)이다. 이 력 조선 태조와 신의왕후(神懿王后) 안변 한씨(安邊韓氏) 사이의 넷째 아들로 함경도 함흥부 귀주동에서 태어났다. 첫째부인은 삼한국대부인(三韓國大夫人) 여흥 민씨(驪興 閔氏) 이고, 둘째부인은 삼한국대부인 밀양 황씨(密陽黃氏)이며, 셋째부인은 금릉부부인(金陵府夫人) 김포 금씨(金浦琴氏)이다. 고려 말 관직에 올라 군기시소윤(軍器寺少尹)을 역임했고, 1392년(고려 공양왕 4년) 7월 태조 이성.. 더보기
경혜공주, 단종의 친누이, 남편 정종의 죄에 연좌되어 순천의 관비가 되다. 경혜공주, 단종의 친누이, 남편 정종의 죄에 연좌되어 순천의 관비가 되다. 경혜공주(敬惠公主, 1436년 ~ 1473년 음력 12월 30일)는 문종과 현덕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딸로, 단종의 친누이이기도 하다. 생애 경혜공주가 태어났을 당시 아버지 문종은 즉위 전이었고, 어머니 권씨는 세자의 후궁으로 품계는 종3품 양원(良媛)이었기 때문에 '현주'로 불리게 되었다. 위로 언니가 있었으나 태어난 지 1년도 못 되어 1433년에 죽었다. 어머니 양원 권씨가 세자빈으로 승격되면서 경혜공주는 현주에서 군주로 승격되고, 세자빈의 거처인 자선당에서 살게 되었다. 경혜공주는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당시의 관습대로 재액을 피하기 위해 조유례의 집에서 그 부인 및 외가의 여종인 유모 백씨의 손에 컸다. 그녀는 미모가 굉장.. 더보기
세종대왕, 훈민정음 창제, 과학을 발전시키고 유교 정치의 기틀을 마련하다.(3) 세종대왕, 훈민정음 창제, 과학을 발전시키고 유교 정치의 기틀을 마련하다. 가정의 불행 재위 초반에 장녀 정소공주가 요절하고, 재위 후반엔 광평대군과 평원대군이 잇따라 요절을 하게되어, 세종과 소헌왕후는 비탄에 빠졌고 곧 불교 사찰을 찾아다니며 이들의 명복을 비는 등 불사를 주관하기도 했다. 이어 소헌왕후 마저 승하하면서 그는 생애 후반 불교에 귀의하게 된다. 조선의 건국 이념은 유교 성리학이었기에 유학자들의 반발이 거셌으나 세종은 이에 개의치 않고 불사 중창과 법회에 참석하였으며, 먼저 죽은 가족들의 넋을 위로하기도 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몸이 약한 데다가, 학문에만 전념하는 모습을 보여 아버지 태종에게 걱정을 샀던 세종은 젊은 시절 무리하게 국정을 돌본 탓에 집권 후반에 들어서면서 건강이 몹시 악화되.. 더보기
신의왕후, 태조의 아내, 향처로 전락하여 자식들과 여생을 보내다. 신의왕후, 태조의 아내, 향처로 전락하여 자식들과 여생을 보내다. 신의왕후 한씨(神懿王后 韓氏, 1337년 음력 9월 ~ 1391년 10월 21일(음력 9월 23일))는 조선 태조(太祖)의 첫 아내로 정종과 태종의 생모이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여 왕으로 등극하기 1년 전인 1391년에 지병인 위장병이 악화되어 사망하였다. 안천부원군 한경(安川府院君 韓卿)과 삼한국대부인 신씨(三韓國大夫人 申氏)의 딸로 본관은 안변(安邊)이다. 태조 2년(1393년)에 절비(節妃)로 추증되었다가 1398년 그녀의 소생들이 일으킨 왕자의 난으로 태조가 하야하고 그녀의 둘째 아들인 정종이 즉위하여 비로소 왕후로 승격되었다. 시호는 승인순성신의왕후(承仁順聖神懿王后)이며, 1897년 대한제국 수립 후 신의고황후(神懿高皇后..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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