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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인천 상륙 작전, 서울 탈환으로 이어져 한국 전쟁 전반의 전세를 뒤집는 계기가 되다. 인천 상륙 작전, 서울 탈환으로 이어져 한국 전쟁 전반의 전세를 뒤집는 계기가 되다. 인천 상륙 작전(仁川上陸作戰, Battle of Incheon)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9월 15일 UN군 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의 주도로 시작된 상륙작전이다. 이 작전에는 7만 5천여명의 병력과 261척의 해군 함정이 투입되었고, 대한민국의 서울 탈환으로 이어져 한국 전쟁 전반의 전세를 뒤집는 계기가 되었다. 작전 암호명은 크로마이트 작전(Operation Chromite)이었다. 배경 맥아더는 1950년 6월 29일, 전쟁이 발발한지 4일 지난 뒤에 한강 방어선을 시찰하며 조선 인민군의 후방에 상륙, 병참선을 차단하고 낙동강을 통해 반격에 들어간다는 기본 전략을 세웠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미국 해군은 인천항.. 더보기
김백일, 흥남 철수 때 에드워드 알몬드를 적극적으로 설득하여 피난민 수송을 성공시키다. 김백일, 흥남 철수 때 에드워드 알몬드를 적극적으로 설득하여 피난민 수송을 성공시키다. 김백일(金白一, 1917년 1월 30일 ~ 1951년 3월 28일)은 만주국과 대한민국의 군인이다. 만주 지린 성 옌지 출생이다. 만주군 상위로 재직 중 8.15 해방을 맞아 조선국방경비대에 입대하여 대한민국 국군 창설에 참여하였다. 창씨명은 가네자와 도시미나미(金澤俊南)이다. 초대 제병협동본부(대한민국 육군교육사령부와 대한민국 육군 보병학교의 전신)의 본부장이었으며 육군 소장 재직 중 6.25 전쟁에 참전하였다. 6.25 전쟁 중 1951년 3월 28일에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 인근의 상공에서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 만주 지린 성 옌지에서 태어났으나 선대의 고향이 함경북도 명천군이었으므로 함경북도 출신으로도 간..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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