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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전쟁, 팔레스티나의 성지를 둘러싼 정교회와 가톨릭교회의 권한 다툼

크림전쟁, 팔레스티나의 성지를 둘러싼 정교회와 가톨릭교회의 권한 다툼 크림 전쟁은 1853년 10월부터 1856년 2월까지 지속된 러시아 제국과 연합국과의 전쟁이다. 연합에는 영국, 프랑스, 사르데냐 왕국, 오스만 제국이 참가하였다. 전쟁의 발단은 러시아 제국이 오스만 제국 내 정교도들에 대한 보호권을 주장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으나, 팔레스티나의 성지를 둘러싼 정교회와 가톨릭교회의 권한 다툼을 배경으로 프랑스와 영국이 참전하는 등 중동을 둘러싼 열강들의 이권 다툼으로 일어났다. 사르데냐 왕국은 크림 반도에 아무런 이권이 없고, 러시아 제국과 특별히 대립 관계도 아니었지만, 이탈리아 통일을 위해 영국과 프랑스의 지원 받을 계산으로 참전했다. 전쟁 대부분은 흑해에 위치한 크림 반도에서 일어났으며, 1..

역사보기 2017.12.10

예루살렘,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의 중심지

예루살렘,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의 중심지 예루살렘은 예로부터 종교 분쟁에서 불씨가 되어온 중동에 있는 도시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중심부의 지중해 연안 평야와 요르단 강에서 이어지는 그레이트 리프트 밸리 사리에 자리하고 있으며 세계 3대 유일신 종교인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중심지이며 전세계 16억 기독교도, 9억 이슬람교도, 1600만 유대인들에게 신앙의 고향이다.국제법상으로는 어느 나라에도 속해 있지 않는 도시로, 현재는 이스라엘이 동예루살렘을 인위적으로 점령 중이며, 예루살렘 전체를 "분리될 수 없는 이스라엘의 영원한 수도"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대외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2011년 기준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분쟁에서 적지 않은 문제점을 낳고 있으며 도시가 행정상 동과 서로 ..

역사보기 2017.12.09

이구, 영친왕과 이방자의 둘째 아들

이구, 영친왕과 이방자의 둘째 아들 이구(李玖, 1931년 12월 29일~2005년 7월 16일)는 대한민국의 건축가, 공학자, 교육자, 사업가이다. 구 대한제국의 황족으로 대한제국 황실 제3대 수장인 영친왕 이은과 이방자의 둘째 아들이다. 일제 강점기의 이왕가의 이왕세자(李王世子)이기도 했으며, 신적강하로 이왕세자직을 상실하고 일본에 체류하였다. 한때 미국 유학을 다녀오기도 했고, 대한민국에 귀국,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에 출강하기도 했다. 생전에 건축사와 대학강사 등으로 활동했고, 전주이씨대동종약원 총재, 종묘제례 봉행위원회 총재로도 활동하였다. 한때 귀국하려 하였으나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자 먼 일족인 이승만의 반대로 무산되었고, 군사 정권 박정희 때에 일시적으로 귀국하였으나 사..

역사보기 2017.12.08

줄리아 리, 이구의 첫번째 부인 줄리아 멀록

줄리아 리, 이구의 첫번째 부인 줄리아 멀록 줄리아 멀록(Julia Mullock, 1923년? 1928년? 3월 18일 ~ 2017년 11월 26일)은 대한민국의 황족 이구(李玖)의 첫 번째 부인이다. 한국 이름은 이주아(李珠亞)이다. 생애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의 우크라이나계/독일계 미국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뉴욕 시 맨해튼에 있던 I. M. 페이가 운영하던 건축 회사에서 근무하던 중 한국의 황세손 이구를 만났고, 1959년 10월 25일에 뉴욕의 세인트 조지 성당에서 황세손 이구와 결혼식을 올렸다. 황세손 이구와의 결혼 후 남편의 부임지였던 하와이 등지에서 머물다가 1963년에 한국에 와 서울 창덕궁 낙선재에서 지내며 시모(媤母) 의민황태자비 이방자(李方子)의 복지 사업을 도왔다. 1979년, 한국에..

역사보기 2017.12.07

한상률, 박연차 회장의 태광실업을 세무조사하다.

한상률, 박연차 회장의 태광실업을 세무조사하다. 한상률(韓相律, 1953년 11월 25일 ~ , 충남 서산(현 태안))은 국세청장을 역임한 세무공무원이다. 학력 태안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농업교육학 학사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석사 경력 제21회 행정고등고시 삼성세무서장 중부지방국세청 조사2국장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장 국세청 조사국장 서울지방국세청장 국세청 차장 국세청장 논란 국세청장 재직 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오랜 후원자인 박연차 회장의 태광실업을 세무조사한 후 노 전 대통령의 가족 간 돈거래 내용을 청와대에 보고했다. 이 후 해당 내용을 검찰에 신고해 박연차 게이트를 기획했다는 의혹이 있다. 그림 로비 의혹과 부적절한 골프 회동으로 국세청장직을 사퇴한 뒤 국세청 차장 시절 당시 상관이였던 전군표 전 국..

역사보기 2017.12.05

후진타오, 양극화 문제와 개인주의의 확산 문제를 해결하고자 애국심과 단결을 강조하다.

후진타오, 양극화 문제와 개인주의의 확산 문제를 해결하고자 애국심과 단결을 강조하다. 후진타오( 1942년 12월 21일 ~ )는 전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이자 중화인민공화국의 주석이다. 출생 후진타오는 장쑤성 타이저우에서 태어났다. 대대로 차(茶)를 판매하는 상점의 집안이였던 아버지 후쩡위 교사는 일본의 침략전쟁인 중일전쟁으로 가문의 재산을 모두 잃고, 초등학교 교사로 상하이에서 일하던 중 어머니 리원뤠이를 만나게 되었다. 후진타오는 그 부부의 아들로 1942년 12월 21일 전쟁 중에 태어났다. 1947년 아버지가 장쑤성에서 사업을 다시 시작하고 1947년 8월 후진타오는 따푸 소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그 해 어머니의 별세와 교사출신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렸을 때부터 공부에 매진하였다. 중학..

역사보기 2017.12.02

화랑세기, 김대문 풍월주의 역사를 기록하다.

화랑세기, 김대문 풍월주의 역사를 기록하다. 《화랑세기》(花郞世記)는 김대문에 의해 저술된 신라시대 화랑도의 우두머리인 풍월주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신라 성덕왕의 재위기간 (702년 - 737년) 사이에 쓰였다. 《화랑세기》는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서술할 때까지 남아 있었으나, 이후 소실된 것으로 추정되어 왔다. 필사본 발견 1989년 2월에 남당 박창화가 일본 천황가의 보물창고인 일본 궁내청 서릉부에서 필사했다고 주장하는 《화랑세기》 한문 필사본이 김해에서 발견되었다. 1995년에는 162쪽 분량의 또 다른 필사본(모본‧母本)이 발견되었다. 이 필사본에는 서기 540년부터 681년까지의 풍월주 32명의 전기가 담겨 있다. 필사되었다고 주장되는 《화랑세기》는 유교적 가치관과 사뭇 다른 신라인에 대한 기..

역사보기 2017.11.29

충혜왕, 사치와 향락, 사냥을 일삼았으며, 흉흉한 민심과 소문이 돌다.

충혜왕, 사치와 향락, 사냥을 일삼았으며, 흉흉한 민심과 소문이 돌다. 충혜왕(忠惠王, 1315년 2월 22일 (음력 1월 18일) ~ 1344년 1월 30일 (음력 1월 15일))은 고려 제28대 국왕(재위: 1330년 ~ 1332년, 복위 1339년 ~ 1344년)이다. 휘는 정(禎), 몽골 이름은 부다시리( 한국 한자: 寶塔實里 보탑실리). 원에서 내린 시호는 충혜왕(忠惠王)이며, 공민왕이 올린 시호는 헌효대왕(獻孝大王)이다. 충숙왕과 명덕태후(明德太后) 홍씨(洪氏)의 아들이다. 생애 충숙왕 17년(1330), 충숙왕이 원나라에게 폐위되자 즉위했지만, 충혜왕 2년(1332) 원나라에 의해 폐위되고 충숙왕이 복위되어 다시 원나라로 갔다. 충숙왕 복위 7년(1339) 충숙왕이 죽자 충숙왕의 사촌 심양왕..

역사보기 2017.11.28

흥안군 이제, 이괄의 난 당시 추대되지만 일주일 만에 사형당하다.

흥안군 이제, 이괄의 난 당시 추대되지만 일주일 만에 사형당하다. 흥안군 이제(興安君 李瑅, 1598년 ~ 1624년 음력 2월 21일)는 조선 중기의 왕자이자 왕족 종실이다. 선조의 열번째 아들이자 온빈 한씨의 첫째아들이다. 이괄의 난 당시 추대되어 임시 군주가 되었으나, 반란이 일주일만에 진압되면서 사형당하였다. 일생 휘는 제(瑅),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선조와 온빈 한씨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덕흥대원군의 손자이자, 임해군, 광해군, 정원군의 이복 동생이다. 이괄의 난 당시 부원수 이괄의 추대로 1624년 음력 2월 11일부터 7일간 임시로 왕위에 올랐으나 3일만에 이괄군이 패배하면서 붙잡혀 처형되었다. 고종 때 복권되었다. 부인으로는 청주군부인 한씨(淸州郡夫人 韓氏)와 파평군부인 윤씨(坡平..

역사보기 2017.11.27

김만덕,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

김만덕,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 김만덕(金萬德, 1739년 ~ 1812년)은 조선의 여자 상인이다. 제주도에 대기근이 닥치자 전 재산을 풀어 육지에서 사온 쌀을 모두 진휼미로 기부하여 빈사상태의 제주도 백성들을 구제하였다. 이 때문에 제주에서는 의녀(義女) 김만덕으로 불린다. 유년시절과 상업 활동 김만덕은 중개상인 김응열의 딸로 태어났으며 어려서 부모를 잃고 12세 고아가 되었다. 친척 집에서 겨우 목숨을 이어가던 만덕은 나이든 기녀의 집에 의탁하였다. 어른이 된 후, 만덕은 기녀가 천시받는 직업임을 알게 되어, 제주목사 신광익에게 탄원하여 양인(良人)으로 환원되었다. 양인이 된 만덕은 객주(客主)를 차려 제주 특산물인 귤, 미역, 말총, 양태(갓의 재료)를 육지의 옷감, 장신구, 화장품과 교환하여 판..

역사보기 2017.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