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율, 행주대첩, 왜군을 성공적으로 격퇴하다.(1)
권율, 행주대첩, 왜군을 성공적으로 격퇴하다. 권율(權慄, 1537년 ~ 1599년)은 조선 중기의 문신, 군인, 정치인이다. 본관은 안동, 자는 언신(彦愼), 호는 만취당(晩翠堂)·모악(暮嶽), 시호는 충장(忠莊)이다. 영의정 권철의 막내 아들이자 이항복의 장인이다. 임진왜란의 조선군 장수로, 왜란 당시 조선군 총사령관인 도원수로서 왜군의 침략을 성공적으로 막아내는데 기여했으며 임진왜란 3대 대첩 가운데 하나인 행주대첩을 이끈 장군으로 특히 잘 알려져 있다. 사후 선무공신 1등에 녹훈되었다. 임진왜란 이전 1537년 후일 영의정을 지내는 권철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가계는 상당히 유복한 가정이었다. 그는 나이가 들어도 관직에 나아갈 생각은 않고 오로지 공부에만 매진했다. 가족들의 권고에 뒤늦게 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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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숙주의 사상, 평가, 성삼문과의 비교, 일화
신숙주의 사상, 평가, 성삼문과의 비교 신숙주는 다국어에 능하였고, 탁월한 학식과 문재로써 다양한 책을 편찬하고 역사적, 학문적 소양이 깊어 학문 교육에도 업적을 남겼다. 그는 유교의 사서육경 외에도 풍수지리학과 노장 사상 등에도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세조의 문화 통치를 위해 왕들의 귀감이 될 《국조보감》을 편찬했고, 국가 질서의 기본을 적은 《국조오례의》를 교정, 간행하였으며, 사서 오경의 구결을 새로이 만들었다. 또한 《세조실록》과 《예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고 《동국통감》의 편찬을 총괄하였고, 《동국정운》, 《영모록》(永慕錄) 등을 찬수하였으며,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의 편찬에도 참여하였다. 일본에 통신사 서장관으로 다녀 온 후 몇번 일본을 왕래하면서 보고 들은 것을 그대로 기록, 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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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숙주, 변절하여 수양대군 편에 가담하다.
신숙주, 변절하여 수양대군 편에 가담하다. 신숙주(申叔舟, 1417년 8월 2일 (음력 6월 20일) ~ 1475년 7월 23일 (음력 6월 21일)는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문신·정치가이며 언어학자, 외교관이다. 훈민정음 창제자의 한사람이다. 본관은 고령(高靈), 자(字)는 범옹(泛翁), 호는 희현당(希賢堂) 또는 보한재(保閑齋)이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신장(申檣)의 아들이자 윤회의 손녀사위이기도 하다. 1438년(세종 20년) 생원, 진사시에 모두 합격하고 1439년(세종 21년) 친시문과(親試文科)에 급제하여 세종 때 집현전의 학사로서 성삼문, 박팽년, 정인지 등과 함께 훈민정음의 창제와 연구에 기여하였다.1447년(세종 29년) 문과 중시(重試)에 4등으로 합격하여 당상관이 되었으며, 이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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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삼문, 단종 복위 운동을 주관하다 김질의 밀고로 멸문 당하다.
성삼문, 단종 복위 운동을 주관하다 김질의 밀고로 멸문 당하다. 성삼문(成三問, 1418년 ~ 1456년 6월 8일)은 조선 전기의 문신·학자로서, 사육신의 한 사람이다. 세종대왕을 도와 집현전에서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하였고, 단종 복위 운동을 추진하였다. 자는 근보(謹甫)·눌옹(訥翁), 호는 매죽헌(梅竹軒), 시호는 충문(忠文), 본관은 창녕이다. 성승(成勝)의 아들이며, 성달생의 손자이다. 생원으로 1438년 과거에 급제하여 집현전 학사의 한사람으로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했고, 1447년 중시 문과에 급제하였다. 1450년 어린 세손을 부탁한다는 세종의 유지를 받들다가 세조 찬위 이후 단종 복위 운동을 주관하였으나, 신숙주, 정인지 등이 세조의 편에 서고 김질 등이 밀고함으로써 실패하고 만다.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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