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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혁당 사건, 중앙정보부의 조작에 의해 유신반대 성향이 있는 인물들에게 사형이 집행되다. 인혁당 사건, 중앙정보부의 조작에 의해 유신반대 성향이 있는 인물들에게 사형이 집행되다. 인민혁명당 사건(人民革命黨 事件, 영어: People's Revolutionary Party Incident) 또는 인혁당 사건(人革黨 事件)은 중앙정보 부의 조작에 의해 유신반대 성향이 있는 도예종 등의 인물들이 기소되어 대법원의 사형선고 18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된 사건 이다. 한국방송 《미디어 비평》의 '오늘의 역사'에서는 인혁당 사건이 유신독재에 반대하는 민주화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중앙정보부의 조작으로 밝혀졌음을 보도했다. 인권탄압의 사례 1964년의 제1차 사건에서는 반공법위반으로 실형이 선고 되었고 , 1974년의 제2차 사건에서는 국가보안법·대통령 긴급조치 4호 위반 등.. 더보기
10.26 사건, 중앙정보부 부장 김재규가 대통령 박정희를 시해하다. 10.26 사건, 중앙정보부 부장 김재규가 대통령 박정희를 시해하다. 10·26 사건(十二六事件) 또는 박정희 암살사건(朴正煕暗殺事件)은 1979년 10월 26일에 대한민국의 중앙정보부 부장 김재규 가 박선호, 박흥주 등과 함께 대통령 박정희와 경호실장 차지철을 살해한 사건이다. 십이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는 KBS 당진 송신소 개소식과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에 참석한 후 궁정동 안가(염동진의 아지트가 있 던 자리)에서 경호실장 차지철, 비서실장 김계원,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와 함께 연회를 가졌다. 연회 중에 박정희는 김재규의 총에 가슴과 머리를 맞았고 곧 수도육군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이송 중 세상을 떠났다. 당시 박정희의 나이는 만 62세였다. 김재규는 재판 과정에서 민주.. 더보기
4·13 호헌 조치, 국민들의 실망과 분노로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지다. 4·13 호헌 조치, 국민들의 실망과 분노로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지다. 4·13 호헌 조치는 1987년 4월 13일 전두환 대한민국 대통령이 취한 조치이다. 일종의 특별 선언이기도 하다. 말 그대로 "현행 헌법을 유지한다"(보호한다, 수호한다, 지키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배경 1980년 무력으로 정권을 장악한 전두환 대통령은 제5공화국 헌법을 제정한 뒤 대통령에 취임했다. 이후 대통령의 임기 제한과 입법부의 권력 강화, 통금 해제 및 교복 자율화 등의 유화 조치를 취한다. 그리고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올림픽을 유치하여 국가적 자부심을 높이기도 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야당 탄압, 반체제 인사에 대한 인권 유린 등으로 국민들의 지탄을 받았다. 이 와중이던 1987년 박종철 고문치.. 더보기
황산벌 전투, 계백 당나라와 신라의 대군을 상대하다. 황산벌 전투, 계백 당나라와 신라의 대군을 상대하다. 황산벌 전투는 660년 8월 20일 (음력 7월 9일) 황산벌(오늘날의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신양리 및 신암리 일대)에서 백제군과 신라군 사이에 일어났던 전투이다. 삼국사기 계백 열전, 삼국유사 태종무열왕조 등에 전투 내용이 나온다. 배경 백제가 신라를 자주 공격하자, 신라는 고구려의 힘을 빌리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당에 구원을 요청한다. 김춘추는 당으로 건너가 나,당 간의 동맹을 맺었다. 660년 김유신이 이끈 신라군 5만 명과 소정방이 이끄는 당군 13만, 합하여 18만의 군사가 백제로 쳐들어갔다. 당나라는 수로를 이용해 백제의 백강 쪽으로 쳐들어갔고, 신라군은 육로를 이용하여 백제의 탄현쪽으로 쳐들어갔다. 660년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대대적으로.. 더보기
대조영, 동모산에서 발해를 건국하다. 대조영, 동모산에서 발해를 건국하다. 고왕(高王, ?~ 719년, 재위: 698년 ~ 719년)은 남북국 시대의 북국인 발해(渤海)의 초대 국왕이며, 성은 대(大)이고, 휘는 조영(祚榮)이다. 고왕은 고구려의 장수 걸걸중상의 아들로서, 고구려의 유민이자 옛 고구려의 장수이다. 고왕과 발해에 관해 중국 측 기록인 《구당서》(舊唐書)에서는 발해 말갈의 대조영은 고구려의 별종으로서술하고 있지만, 《신당서》(新唐書)에서는 본래 고구려에 복속되어 있던 속말말갈의 한 일파라고 서술 되어있어 고구려와의 종족 관계를 모호하게 기록하였다. 한국측 기록인 삼국유사에 인용된《신라고기(新羅古記)》, 《제왕운기(帝王韻紀)》에서는 고왕을 고구려 장수라고 기록하였다. 고구려 무장 당시 고구려(高句麗)는 연개소문(淵蓋蘇文)이 사망한.. 더보기
신숭겸, 공산전투에서 왕건의 갑옷을 입고 대신 전사하다. 신숭겸 장군의 묘 신숭겸, 공산전투에서 왕건의 갑옷을 입고 대신 전사하다. 신숭겸(申崇謙, 전라남도 곡성군 용산재, ? ~ 927년 9월?)은 후삼국시대 태봉 말기 및 고려 초기의 무신으로, 고려의 개국 공신으로, 궁예의 부장이었으나 918년 왕건을 추대하여 고려 건국에 기여하였으며 927년 공산 전투에서 왕건의 갑옷을 바꾸 어 입고 대신 전사하였다. 견훤의 후백제군이 그의 시신에서 수급을 베어 갔으므로 고려 태조는 순금으로 두상(頭像)을 만들어 시신과 같이 매장하였 다 한다. 원래 이름은 삼능산(三能山) 또는 능산(能山)이며, 시호는 장절(壯節), 평산 신씨의 시조이다. 몸이 장대하고 무용에 출중했다. 고려 개국 초명은 삼능산(三能山)이다. 후에 고려 태조 왕건으로부터 신씨의 성과 평산을 관향으로 하사.. 더보기
태조 왕건, 고려를 세우다. 훈요10조, 호족의 유화정책, 북진정책, 불교장려정책 태조 왕건, 고려를 세우다. 훈요10조, 호족의 유화정책, 북진정책, 불교장려정책 태조(太祖, 877년 1월 31일 (음력 1월 14일) ~ 943년 7월 4일 (음력 5월 29일))는 후삼국 시대 후고구려의 장군이자 고려의 초대 왕(재위기간 : 918년 7월 25일 - 943년 7월 4일)이다. 성은 왕(王), 휘는 건(建), 본관은 개성(開城), 자는 약천(若天), 이다. 연호는 천수(天授)이다. 송악의 호족 왕륭(王隆)과 그 부인 한씨(韓氏) 사이에서 877년에 태어났으며, 896년에 궁예(弓裔)의 휘하에 들어가 그의 장수 가 되었다. 후백제와의 교전에서 거듭 승리하여 전라도와 경상도 서부 지역에서 견훤의 군사를 여러 번 격파하고 906년 상주의 사화진, 909년 진도 부근의 도서와 나주를 공략하였.. 더보기
궁예, 철원에 도읍을 정하고 후고구려을 건국하다. 궁예 미륵 궁예, 철원에 도읍을 정하고 후고구려을 건국하다. 궁예(弓裔, 869년? 음력 5월 5일? ~ 918년 7월 24일, 재위: 901년 7월 ~ 918년 7월 24일(음력 6월 14일))는 신라의 왕가 서족 (王家 庶族) 출신이며 태봉(후고구려, 마진)의 군주이다. 그는 신라 헌안왕 또는 경문왕과 후궁 사이에 태어난 유복자였다. 장보고의 외손이라는 설도 존재 한다. 그의 본래 속세 성은 김(金)씨, 본관은 경주(慶州), 불교 승려로서의 법명은 선종(善宗)이고, 별명은 미륵(彌勒), 일목대왕 (一目大王)이다. 918년 왕건에게 축출되었으므로 시호는 없다. 신라 왕실의 서자(庶子)로 왕위계승권에서 밀려난 뒤, 유모에 의해 피신되어 죽음을 모면하였고 이후 세달사로 피신하였다 가 신라 말기의 혼란기에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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